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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 뒤 쾨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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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스토 뒤 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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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겨울이 되면 마음마저 얼어붙는 사람들이 있다. 비싼 전기세를 감당할 수 없어 난방기를 켤 수 없는 사람들, 같은 이유로 마음 놓고 음식을 해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무서운 계절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도 있다.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SDF(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이들)에게 겨울 날씨는 가히 위협적이다.

프랑스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겨울마다 문을 여는 무료 식당이 있다. '레스토 뒤 쾨르(Restos du Coeur, 마음의 식당)'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올해도 겨울이 되자 어김없이 문을 열었다.

지난 11월 29일 문을 열어 내년 3월 19일까지 운영될 이 무료 식당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85년에 유명한 코미디언이며 배우였던 콜리슈에 의해 창설되었다. 프랑스에서 유일한 비종교적 구호단체인 이 식당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첫해에 4500명이었던 자원봉사자는 작년에 5만 8000명으로 증가했다. 작년에 이 무료 식당을 이용한 사람은 83만 명 이상으로 이는 지난 2년 동안(2007~2009) 20%가 증가한 수치다. 무료 식당을 찾는 이가 늘어난 것은 빈곤층이 늘고 있는 프랑스 사회의 변화와 관련 있다.

줄어드는 중간층, 늘어나는 빈곤층... 빈곤층의 절반 이상이 40대 미만

11월 중순 여론조사 기관인 '인세(INSEE)'는 '프랑스의 사회적 얼굴'이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들의 경제적 상황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높은 실업률(올해 2분기 15~24세의 실업률은 23.3%로 전체 실업률 9.3%의 배가 넘는다), 각 가정의 방세 지출 및 임시직 증가 등 때문에 2004년에서 2007년 사이에 5명 중 1명은 생활의 어려움을 실제로 겪은 경험이 있다고 이 조사는 밝혔다. 이는 이전에 두터웠던 프랑스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빈곤층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회학자들은 월 수입이 프랑스 국민의 중간 수입인 약 1500유로(국민의 반이 매월 1500유로 이상을 벌고 나머지 절반의 수입이 그 미만이라는 뜻으로 평균 수입과는 다른 개념)의 60% 이하인 사람들을 빈곤층으로 본다. 빈곤층의 월 평균 수입은 908유로 정도이고, 프랑스 인구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800만 명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인세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인구의 절반인 3200만 명이 월수입 1500유로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인구의 10%만이 월 평균 수입 2765유로로 유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빈곤과 가장 거리가 먼 것으로 조사됐다(자식이 없는 부부 중 빈곤층은 6.4%뿐이다).

이렇게 빈곤층이 늘면서 25세 미만의 젊은이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기업들이 기존 직원을 해고하고 신규 채용도 줄여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젊은이들의 미래는 불확실하기만 하다. 무직이거나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빈곤층 중 25세 이하가 11%, 25~39세가 41.2%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생들에게도 빈곤은 낯선 게 아니어서 하루에 한 끼씩 거르는 이들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어린이들도 신빈곤화 현상의 예외가 아니어서, 200만 명의 프랑스 어린이들이 궁핍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다.

학업을 마쳤으나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청년 구직자들이나 임시직을 전전해야 하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장년층과 노인층도 빈곤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규직이긴 해도 급여가 적어 생계유지가 어려운 중년들, 평생 일했건만 박한 퇴직연금으로 어렵게 사는 노인들도 빈곤층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특히 여자 혼자 변변치 않은 직업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경우에는 빈곤을 뿌리치기가 더욱 쉽지 않다(이들 중 30%가 빈곤층에 속한다). 빈곤 문제를 악화시킨 글로벌 경제 위기가 프랑스에서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을 더욱 심하게 후려치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빈곤층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다. 1990년대까지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빈곤을 사회의 불공정함에서 비롯된 문제로 인식했다. 프랑스 국민 열 명 중 아홉 명이 1988년에 생긴 최저생계비에 찬성한 것도 자신들이 빈곤층에게 일종의 빚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기부터 상황이 바뀌어 빈곤이 게으름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종일 일하고 최저생계비보다 조금 많은 월급을 받느니 차라리 일을 하지 않고 최저생계비를 받으려는 층이 생겨나면서 빈곤이 늘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를 염두에 두고 "일찍 일어나는 프랑스", "일을 더 많이 해서 더 많은 돈을 벌자"라는 구호를 내세운 바 있다.

빈곤 문제를 다룬 프랑스 잡지 <텔레라마>(11월 27일~12월 3일자). 표지 제목은 '살아남기 위해 산다'이다. 집이 없어서 파리 동남쪽에 있는 벵센느 숲 속에 텐트를 치고 살고 있는 텐트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빈곤 문제를 다룬 프랑스 잡지 <텔레라마>(11월 27일~12월 3일자). 표지 제목은 '살아남기 위해 산다'이다. 집이 없어서 파리 동남쪽에 있는 벵센느 숲 속에 텐트를 치고 살고 있는 텐트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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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늘면서 활동 영역 넓어진 '레스토 뒤 쾨르'

이렇게 빈곤층이 늘면서 '레스토 뒤 쾨르'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식당은 세 가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첫 번째는 '식료품 보조'라는 시설이다. 생필품이 갖추어져 있는 장소에서 마치 장을 보듯이 자신이 필요한 물건들을 집어가게 하는 것으로 모두 무료다. 파리의 각 구마다 일정한 장소에서 일주일에 서너 번 문을 여는 이 시설을 이용하려면 매년 등록을 해서 소득이 충분치 않음을 증명하면 되는데, 보통은 월 소득이 600유로 이하면 가능하다. '레스토 뒤 쾨르' 사업에서 98%의 비중을 차지하는 이 시설의 목적은 일정한 주거지도 있고 직업도 있으나 벌이가 변변치 않아 방세와 전기세, 전화료,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어 매달 먹고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프랑스인들은 웬만하면 가족이나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나가려는 의지가 강한 편이다. 그래서 이 시설 이용자 중 상당수는 자존심을 내던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시설을 이용하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고 한다.

두 번째는 추운 겨울에 따뜻한 음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더운 음식점'이다. 주로 트럭이나 간이시설을 이용하는 이런 식당이 프랑스 전체에 98개가 있고 그중 파리에는 5개가 있다. 일정한 주거지가 없거나 호텔(프랑스에는 관광객이 이용하는 호텔 외에도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단기간 머무를 수 있도록 해주는 호텔이 따로 있다)에서 단기간 거주하는 관계로 취사시설이 없어 음식을 해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식당을 이용하는데, 대부분 외국인들이다. 운영진은 단 1유로 이하로 균형 잡힌 풀코스 식사를 만들고 있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다량의 식품을 도매가격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12개월 이하의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젊은 엄마들을 돕기 위한 '레스토 베베 뒤 쾨르(Restos Bebe du Coeur, 어린이를 위한 마음의 식당)'이다. 주로 공식 체류 서류가 없는 젊은 외국인 엄마들(대부분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 출신이다)이 이 시설을 이용한다. 이들은 2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들러 아이에게 필요한 기저귀나 우유, 이유식 등을 타갈 수 있다. 이들은 직업이 없어 소득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 이곳 담당자들은 이들과 상담해 이들이 처한 제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있다. 주거 문제 상담,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입원시켜 주기, 에이즈에 걸린 엄마를 치료하기, 불어를 전혀 몰라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불어 강습 등 다방면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레스토 베베 뒤 쾨르'는 지방에 처음 생겼고, 파리에는 5년 전에 파리 1구의 레알 쪽에 생긴 단 한 곳만 있다. 파리에 있는 '레스토 베베 뒤 쾨르'의 책임자 다니엘씨는 그동안 이곳에서 태어난 아기가 2만 7000명이나 되며 이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피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곳을 방문한 12월 초에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 둘을 간단히 인터뷰했다.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디코(28세)는 다음 달에 출산할 예정으로, 이곳을 처음 찾았다. 그녀는 이미 세 살, 두 살이 된 아들 둘을 두고 있고 파리 동쪽 근교인 몽트뢰이에서 같은 국적의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둘 다 직업이 없어서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모로코 출신의 아이다(30세)는 남편인 모하메드(32세)와 같이 이곳에 들렀는데, 11개월 된 아들을 위해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2년 전에 프랑스에 도착했고 현재 둘 다 직업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다행히 이미 프랑스에 정착한 부모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레스토 베베 뒤 쾨르' 등의 지원 덕분에 이들은 그럭저럭 생계를 연명해 가고 있다. 전부 체류증이 없는 불법 체류자 신세이기에 이들은 사진 촬영을 거부하였다.

젊은 엄마들에게 나누어줄 물건을 보관하는 곳.
 젊은 엄마들에게 나누어줄 물건을 보관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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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서 받는 물품들.
 2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서 받는 물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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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운영하려다 어느새 26년째... 무덤 속 콜리슈는 이걸 보고 뭐라 할까?

'레스토 뒤 쾨르'는 어떤 자금으로 운영되는 것일까? '레스토 뒤 쾨르'는 개인, 단체, 기업들의 기증과 증여로 예산의 40%를 확보하고(작년 한 해 동안 53만 명이 6500만 유로를 기증했다), 매년 말 가수들이 하는 자선쇼(les enfoires)의 이익금으로 20%, 프랑스 내 공공기관의 보조로 20%, 유럽연합의 보조로 13%를 충당하고 있다. 이외에 개인들은 자신들이 입거나 쓰던 옷이나 장난감, 책, 가구 등도 기증할 수 있다.

'레스토 뒤 쾨르'의 창시자인 콜리슈는 사회 비판 성격이 강한 내용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원맨쇼 맨이었으며, 이 인기를 바탕으로 나중에는 배우로도 활약하였다. 그는 '레스토 뒤 쾨르'를 만든 이듬해인 1986년 6월에 오토바이 사고로 4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이 식당은 원래 1년 동안만 유지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빈곤층을 위한 활동의 필요성이 늘어나면서 '레스토 뒤 쾨르'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히려 영역을 넓히며 운영되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콜리슈의 심정이 어떨까?

'레스토 베베 뒤 쾨르' 입구에서 젊은 엄마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레스토 베베 뒤 쾨르' 입구에서 젊은 엄마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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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레스토 뒤 쾨르, #콜리슈, #빈곤, #무료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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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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