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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형님 예산'· '실세 예산'에 이어 '여사님 예산' 논란까지….

까면 깔수록 점입가경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8일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새해 예산안의 부실·졸속 심사 이야기다.

12일 새로 불거진 '여사님 예산'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미국 뉴욕에 고급 한식당 설립하겠다며 확보한 50억 원이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가 주도하는 '한식 세계화' 사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예산 책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뉴욕 한국식당 설립 예산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은 물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반대하고 나서면서 벽에 부딪혔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정부가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관료적인 발상을 넘어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다"(전병헌 의원), "모 대기업에도 뉴욕에 한식당을 냈다가 철수했는데 정부가 기업들을 능가할 수 있겠느냐"(서갑원 의원)고 따졌고 여당에서도 "고급 식당까지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느냐"(서상기 의원)는 지적이 뒤따랐다.

결국 뉴욕 한식당 설립 예산 50억 원의 처리는 보류됐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주인공은 한나라당 소속 이주영 예결위원장이었다.

한나라당 졸속 처리로 '여사님 예산' 50억 횡재한 정부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1년 예산안을 재석의원 166인 가운데 찬성 165인 반대 1인으로 가결을 선포하자 야당 의원들이 이에 항의하며 '졸속심사 예산파행 국민 앞에 사죄하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정 부의장에게 던지고 있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1년 예산안을 재석의원 166인 가운데 찬성 165인 반대 1인으로 가결을 선포하자 야당 의원들이 이에 항의하며 '졸속심사 예산파행 국민 앞에 사죄하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정 부의장에게 던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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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나라당 스스로 약속한 템플스테이와 양육 수당 확대 예산까지 챙기지 못할 정도로 앞뒤 가릴 새가 없었던 날치기 법안처리 과정에서 이 같은 예결위 결정은 깨끗이 무시됐다. 덕분에 정부는 사실상 물건 너 갔던 예산 50억 원을 확보하는 횡재를 했다.

결식 아동의 방학 중 급식비 218억 원을 전액 삭감한 한나라당이 아이들 배는 곯리면서 '여사님'의 허울 좋은 한식 세계화에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굳이 한식당을 세우려면 한식당이 없는 불모지에 세워야지 훌륭한 한식당이 많은 뉴욕에 왜 정부가 나서느냐"(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뉴욕 자본주의 시장 한 복판에 국가가 운영하는 한식당을 세우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이라는 야당 비난은 덤이다.

하지만 이처럼 날치기에도 무능함을 보인 한나라당은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다.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급기야 사찰에 '한나라당 의원 출입 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필수 민생 예산 삭감에 따른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자리를 내놓는 선에서 파문을 덮으려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그나마 고흥길 의장 사퇴는 그 진정성도 의심 받고 있다. 국회 기능을 완벽히 무력화 시킨 '의회 쿠데타'로 평가 받는 이번 예산안 날치기에 대해 반성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사퇴는 이번 예산안 졸속 처리로 '좌파 주지' 발언 때문에 척을 진 불교계와 관계 개선이 물거품이 됐고, 또 소득 하위층 70% 복지를 외쳤지만 예산은 확보하지 못해 망신을 당한 안상수 대표의 심기를 거스른 '죄 값'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고 의장과 러닝메이트인 김무성 원내대표는 "(예산안 단독 처리가) 국가를 위한 정의"라는 말 한마디 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

형님·실세 예산에 당당한 고흥길, 진정성 없는 사퇴

고 의장 자신도 사퇴 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비난 여론이 높은 형님, 실세 예산에 대해서는 당당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금년 뿐 아니라 의원들이 지역구 사업을 챙기는 것은 관례"라며 "지역 출신 의원이 자기 지역 사업을 (예산에) 반영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고 의장의 '소신'대로 한나라당이 예산을 심사한 결과가 지역 편중에 실세와 대통령 측근 챙기기가 돼버린 것은 '안바도 비디오'였다.

실제 한나라당의 요청으로 증액된 151개 사업 4613억 원의 예산 배분을 살펴보면 경남 700억 원(38건), 부산 293억 원(12건), 울산 29억 원(4건) 등 'PK 예산'은 1012억 원, 대구 277억 원(11건), 경북 1795억 원(13건) 등 'TK 예산'은 2072억 원에 달하는 등 영남지역 예산이 전체 예산 증액분의 66.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호남은 2건 55억 원이 증액됐고 충청 지역은 1건, 5억 원이 증액되는 데 그쳤다.

특히 한나라당의 예산 증액 자료에는 예결위원 이름 밑에 '강만수 위원장'이라고 적힌 항목(고현·하동IC 확장·포장 사업 등 경남 예산 5건 82억 원)도 포함돼 있었다.(11일자 <경향신문> 보도)

그럼에도 고 의장의 사퇴의 변에는 날치기 와중에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의 민원성 예산까지 챙겨준 것에 대한 일말의 문제 의식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직권상정 이랬다 저랬다, 이재오의 좌충우돌

이재오 특임장관이 12일 오후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광장 농성장을 방문했으나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대로 손대표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고 있다.
예산안 강행처리 때 이재오 장관이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보인 것에 대한 반응인 듯, 한 민주당 관계자가 이재오 장관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보이고 있다.
▲ 예고없이 야당 농성장 찾은 이재오 장관 이재오 특임장관이 12일 오후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광장 농성장을 방문했으나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대로 손대표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고 있다. 예산안 강행처리 때 이재오 장관이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보인 것에 대한 반응인 듯, 한 민주당 관계자가 이재오 장관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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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날치기의 총기획자로 의심받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도 반성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예산안 강행처리 직후 뜬금없이 개헌 문제를 거론하고 12일에는 예산안 강행처리에 항의의 뜻으로 서울광장에서 농성 중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만나겠다며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문전 박대를 당하자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냐"고 오히려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국회의장 직권 상정에 의한 법안 처리에 대한 이 장관의 태도도 이중적이다. 그는 지난 2006년 한나라당의 원내대표 시절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3.30 부동산대책 후속법과 주민소환제법을 의장 직권상정으로 처리하자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맹비난 했었다. 그러면서 "여야 원내대표 합의가 있어야 직권상정을 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예산안은 물론 상임위에서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는 법안까지 의장 직권 상정으로 처리한 이번 사태에 대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진통",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며 미화에 열심이다. 

불교계 등 종교계와 시민사회 등 각계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날치기에 오히려 당당한 적반하장 격의 태도 때문이라는 것은 그날의 날치기 주역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태그:#예산안 처리, #날치기,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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