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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정상 영봉에 올라 일행들과 함께 단체 기념 사진을 찍어둔다.
 월악산 정상 영봉에 올라 일행들과 함께 단체 기념 사진을 찍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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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악산 영봉 정상에 오르니 내가 마치 신선이 된 듯 일행들과 함께 월악산 정상에 오르니 사통팔달 어느한곳 막힘없이 조망이 창창하다. 이날 월악산 산행길에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편집하여 한 눈에 볼 수 있게 자료를 남기고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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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 주말을 이용하여 지리산 반야봉 뱀사골 코스 산행을 다녀오고 20여 일이 지나도록 산행을 못하고 시월을 맞이하여 "조상님 추향제" 참여하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느라 잠시 산행을 못했더니 마치 때 되어 식사 못하면 배고픔처럼 "산(山) 고픔 허기 증으로 말미암아 매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뒤척거리게 된다.

그러던 차 매주 수요일이면 나와 함께 산행을 떠나는 "우리산내음"카페 회원들이  충북 제천시 한 수면, 덕산면에 있는 (월악산 영봉 1,097m)을로 산행을 떠난다는 공지글을 보고 얼씨구 잘됐다 "감지덕지"하며 산행 신청 (2010.11.24.07: 30)을 해놓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손꼽아 산행 일을 기다려 화요일 밤 새벽 2시 퇴근하여 자는 둥 마는 둥 2시간여 토끼잠을 자다.

자명종 소리에 벌떡 일어나 가족들 수면 방해할세라 까치발 들고 아내가 준비하여 놓은 보온 도시락을 챙겨 걸망을 메고 부평에서 전철을 갈아타며 일행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사당역 10번 출구에 도착하여 07:40분 우리 일행 16명을 실은 버스는 중간 여주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덕주사 입구 "월악산" 들머리에 도착하니 10시 5분이다.

덕주사 은은한 불경 소리가 퍼지고 예로부터 학이 서식하고 있다하여 "학소대" 불린다 전해지는곳
▲ 학소대 덕주사 은은한 불경 소리가 퍼지고 예로부터 학이 서식하고 있다하여 "학소대" 불린다 전해지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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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절. 법주사의 관리를 받는 절이다.
▲ 덕주사 대웅전 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절. 법주사의 관리를 받는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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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주사 유래


덕주사의 창건 연대는 587년(진평왕 9년)으로 처음 월형산 월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후 신라가 멸망후 경순왕의 장녀 덕주공주가 불교에 입문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커다란 바위에 마애불을 조성한 후 덕주사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덕주사에 관한 문헌상의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찾을 수 있는데, '덕주사는 월악산 밑에 있다. 속설에 전하기를 덕주부인(德周夫人)이 절을 창건했으므로 덕주사로 이름 지었다.'는 기록에 따라 10세기 중엽을 절의 창건연대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 뒤의 연혁은 전하는 바가 없어 잘 알 수 없다. 한편 덕주사의 역사를 살피는데 있어서 상덕주사와 하덕주사의 존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의 충주 산수조에 의하면'동으로 45리에 있어 청풍 경계를 이룬다. 상, 하덕주사가 있다.' 고 하여 지금의 마애불이 있는 절터를 상덕주사라 하고, 이곳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지금의 덕주사를 예전에는 하덕주사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상덕주사와 하덕주사는 창건 이래 꾸준히 법등을 이어오다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1963년에 지암 권정철스님이 지금의 덕주사를 중창했고, 이어서 1970년에는 박해찬 스님이 법당을 중수하였는데 이때 1206년(희종 2)에 조성된 고려시대의 금고가 출토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85년 성주스님이 절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의 모습을 보인다. 1985년의 중창 당시에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한수면 역리에 있던 고려시대 석조약사여래입상을 덕주사로 옮겨 봉안했다.

최근 1998년 청하 성일스님이 주석하면서 건물 오른쪽에 새 부지를 마련하여 대웅보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2007년 현 주지스님이신 원경스님이 부임하셔서 도량을 일신하고 계신다.<덕주사 홈페이지 발췌>


우리는 잠시 준비 운동을 한 후 곧바로 월악산 등반길에 올라 덕주사 탐방지원센터 지나 "송계팔경의 하나인 수 경대"를 돌아보고 덕주사 채 못미처에 "덕주사 은은한 불경 소리가 퍼지고 예로부터 학이 서식하고 있다." 하여 "학소대"라 불리는 기암 절경을 만나게 되는데 마치 사람이 돌담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조각 바위로 이루어진 "학소대"를 보고,

다시 "덕주산성"(이 산성은 신라 경순왕의 큰딸 덕주공주가 피난하였던 곳이라 전해지며, 1256년(고종 43)에 몽고병이 충주를 공략하자 관리들과 노약자들이 이 산성으로 피신하였는데 갑자기 구름·바람·우레. 비·우박이 쏟아져 적병들이 혼비백산하여 피신)했다는 전설이 담긴 "덕주산성"을 돌아보고 곧바로 "덕주사"에 도착한다.

덕주사 지나 본격적인 월악산 정상을 향한 등반길은 낙엽 쌓인 한산한 등로에 곳곳에 "월악산에는 산양이 살고 있어요."라는 입 간판을 보며 지나노라면 중간에 "덕주산성" 일부 끊어진 산성 길을 지나 기암괴석과 고풍스러운 고목들을 만나며 잠시 월악산 정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빠져 자연석 계단 길을 오르면 이곳에 "덕주사 마애불 보물 406호"에 도착하게 된다.

덕주사 마애불은 (높이 약 20여 미터 넓이 25미터) 정도의 둥근 삼각형에 “마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덕주 공주가 오빠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 경순왕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담겨있다 전해오고 있다.
▲ 덕주사 마애불 보물 406호 덕주사 마애불은 (높이 약 20여 미터 넓이 25미터) 정도의 둥근 삼각형에 “마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덕주 공주가 오빠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 경순왕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담겨있다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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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 마애불은 (높이 약 20여 미터 넓이 25미터) 정도의 둥근 삼각형에 "마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덕주 공주가 오빠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 경순왕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담긴) 마애불에서 잠시 일행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면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기념사진도 찍고 이어서 본격적인 월악산 정상을 향한 산행이 시작된다.

마애불 지나 오름 코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마치 소방용 고가 사다리를 설치하여 놓은 듯 고도를 갑작스럽게 곧추세운 철계단과 데크목 계단 길을 마치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기분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게 되는데 반면에 어느 한 곳 막힘없이 확 트인 조망을 감상하며 오르게 되어 헉헉대고 힘들어하면서도 일행들 너도나도 힘든 줄 모르고 산행길 현장 사진 한 컷이라도 더 찍으려고 바쁘게 셔터를 눌러 댄다.

마치 소방용 고가 사다리 방불케 곧추세운 철계단 오름길
▲ 960.4봉 오름길 철계단 마치 소방용 고가 사다리 방불케 곧추세운 철계단 오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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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월악산 영봉을 배경으로 일행들과 함께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간다.
▲ 기념사진 월악산 정상을 배경으로 뒤에 월악산 영봉을 배경으로 일행들과 함께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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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쁨 숨을 몰아쉬며 (960.4봉)을 지나면 잠시 치솟는 암릉 구간을 피해 펑퍼짐한 육산길로 헬기장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뒤에 월악산 영봉을 배경으로 일행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서둘러 영봉 바로 아래에서 칼바람을 피해 가던 길을 멈추고 "월악산도 식후경"이라 점심을 마치고

다시 영봉을 머리 위로 쳐다보며 마치 "최전방 DMZ 철책 길" 같은 낙석 방지 철책을 에돌아 이날 산행 중 최고로 급경사 구간인 마지막 철계단 길(너무 힘들어 천국의 계단이라 부름)을 반시간여 헉헉대며 오르면 테크목 계단길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월악산 정상 영봉 1,097m)이다.

멀리 구름속에 빛내림 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배경과 함께 월악산 영봉 정상석 그림
▲ 월악산 영봉 1097m 멀리 구름속에 빛내림 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배경과 함께 월악산 영봉 정상석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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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정상에서 조망하면 사통팔달 어느 한곳 막힘없이 보이고 특히 멀리 청풍호(충주호)가 마치 그림의 한폭처럼 아스라히 보이니 마치 내가 신선이 된듯 부러울것이 없다.
▲ 청풍호(충주호) 월악산 정상에서 조망하면 사통팔달 어느 한곳 막힘없이 보이고 특히 멀리 청풍호(충주호)가 마치 그림의 한폭처럼 아스라히 보이니 마치 내가 신선이 된듯 부러울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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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월악산을 아마 대 여섯 번 오른 듯하다. 그러나 올 때마다 날씨가 안 좋아 추워서, 또는 비를 피해 간신히 정 상석 사진 한 장 찍고 서둘러 하산하기에 바빴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정상에 올라서니 평일이라 별로 다른 산악인들도 없고 우리 일행들만 오붓이 시간 구애받지 않고 맘 놓고 조망을 즐기는데 사방팔방 그 어느 한 곳 막힘없이 창창하다.

이곳 월악산 정상에서 멀리 (대미산, 다량산, 금수산, 가은산, 투구봉, 옥순봉, 구담봉, 제비봉, 황정산, 황장산, 대미산, 주흘산, 부봉, 마패봉, 북 바위산) 등이 거침없이 한눈에 보이고 무엇보다도 서쪽 방면에 "청풍호(구, 충주호)"가 마치 한 폭의 그림 속 풍경처럼 아스라이 조망되고 발아래 중봉, 하 봉이 나를 보고 영봉에만 있지 말고 조금 더 내려오면 더 좋은 비경을 있다고 내려오라! 하지만, 서둘러 하산을 한다.

야생 버섯이 신기하다.  "방귀버섯" 가을에 숲 속의 낙엽 사이에 무리 지어 자란다.
▲ 방귀버섯 야생 버섯이 신기하다. "방귀버섯" 가을에 숲 속의 낙엽 사이에 무리 지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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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 아까운 젊은 나이에 요절하신 사랑하는 아우 고 "주왕(이홍구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 고 주왕(이홍구님) 영정사진 38세 아까운 젊은 나이에 요절하신 사랑하는 아우 고 "주왕(이홍구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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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작고 푸근한 산이 되어라."

다름 아닌 12년 지기 한국의 산하 산 친구 "주왕(이홍구 38세)"아우가 한창 왕성한 젊음을 맘껏 발산하며 살아야 할 아까운 나이에 "요절"을 하였다는 비보를 접하였기 때문에 산행 귀갓길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38세면 우리 큰아들 또래인데…. 밤 10시 넘어 "주왕" 아우가 잠들어 계신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미혼이 되어 상주도 없는 쓸쓸한 빈소에 "의좋은 8남매"가족들이 먼저 간 막냇동생을 잃은 슬픔에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계시고, 가끔 "한국의 산하" 가족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 눈물바다를 이룬 모습을 보니 숨이 콱 막힐 듯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캄캄하다.

신세대 젊은이답지 않게 일찍이 산을 좋아해 "산사람이 된 주왕(이홍구)님아!" "서 정길님"의 당부처럼 (하늘나라에선 산이 되어라. / 하늘 높은 산도 되지 말고 / 골이 깊은 산도 되지 말고 / 바위투성이 산도 되지 말고 / 동리 앞 /언제나 바라볼 수 있는 / 언제나 오를 수 있는 / 작고 푸근한 산이 되어라.)

그동안 "사랑했던 주왕아!" 잘가 먼저 가는 네 맘은 오죽했겠어 "어머님께 말씀드렸어 생전에 착한 젊은이가 되어" 하늘에서도 호감 받으며 영생할 것이라고…. "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 윤도균


태그:#월악산 , #영봉, #덕주사, #마애불, #주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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