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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약 50년 전 어느 여름날 오후 2시경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건장했던 외사촌형님께서 첫 휴가를 왔습니다. 군대에 가기 전에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싸움도 제일 잘 했지요. 다른 동네에 갈 때도 외사촌 형님과 함께 가면 든든하였으니까요. 깊은 산촌이었던 고향마을에서 외사촌 형님이 공부도 제일 많이 하였고, 말도 잘하니 동네의 자랑스러운 청년이었습니다.

 

그 형님이 첫 휴가를 왔으니 동네 청년들이 쫙 모였지요. 더구나 섬진강으로 천렵(냇물에서 고기잡이하는 일)을 떠나기로 준비하고 모였으니 적당히 설레고 흥분하였겠지요. 동네 청년들이 20여 명이나 모여서 들떠 있는데, 하필 그때 그 자리에 40대의 남루한 한복 차림의 엿장수가 나타났습니다.

 

흰바지를 입었는데 한쪽 다리는 무릎까지 걷어 올렸으나 한쪽은 그대로였고, 저고리는 옷고름을 대강 묶어 놓은 그런 차림이었습니다. 엿장수가 엿판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헌 고무신이나 쇳조각, 양은냄비 같은 것을 받고 엿을 떼어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낚시꾼이 미끼를 던져주고 고기를 잡듯 엿장수도 맛보기를 주면서 엿을 팔곤 하였습니다. 외사촌 형님은 엿장수를 보자 기고만장한 태도로 맛보기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첫 휴가를 오면서 잘 차려입은 군복에 빛이 나는 군화를 신은 형님은 기세가 등등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엿장수가 그 많은 동네 청년들이 있는 곳에서 맛보기 엿을 못 주겠다고 거절을 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자존심이 상한 형님이 거친 말을 하였고, 언쟁으로 번지더니 한판 싸움이 붙을 기세로 돌변하였습니다.

 

초등학생 눈에 보인 엿장수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가슴을 졸였습니다. 남루하다 못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엿장수가, 왜 맛보기를 못 주겠다고 거절을 하였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옥신각신하던 형님과 엿장수는, 동네 가운데서 싸울 게 아니라 동구 밖으로 나가서 한판 붙어 보자는 데 합의하였습니다. 그것도 엿장수의 제안에 따라.

 

엿장수는 엿 지게를 짊어지고 앞장서서 동구 밖으로 나가고, 외사촌 형님은 엿장수 뒤를, 동네 청년들도 다 그 뒤를 따르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나같은 꼬맹이들도 여럿이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한 10분정도 읍내 방향으로 걸어가자 동네가 보이지 않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하였는지, 엿장수가 엿 지게를 한쪽에 바쳐 놓았습니다. 우리가 쇠꼴을 베러 다니면서 한바탕 난리를 치면서 놀던 쉼터 같은 길가였지요.

 

다시 맛보기를 조금 주면 싸울게 없을텐데 왜 그럴까 싶었지만, 내 생각하고는 달랐습니다. 두 사람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말싸움을 벌이더니 기어코 큰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군화를 신은 형님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날리는데, 싸움은 볼 것도 없었습니다. 40대의 엿장수는 거의 얻어맞고만 있었지요. 하긴 누가 봐도 적수가 아니었습니다. 형님의 일방적인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하던 형님이 한 마디 하였습니다.

 

"왜 대응을 하지 않는 거야? 붙으라고! 기분 나쁘게....."

 

그러고 보니 엿장수는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맞대응을 하지 않고 때려보라는 태도니 기분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엿장수도 한 마디 하였습니다.

 

"그 정도 실력으로 잘난체 하지 마라! 그래, 더 때려봐라!"

 

이 때 부터는 구경거리가 됐습니다. 기세등등한 외사촌 형님은 주먹과 발길질을 해 대고, 연약해 보이고 가냘픈 모습의 엿장수는 방어를 하는데 단 한 대도 맞지를 않는 것입니다. 엿장수는 방어만 할 뿐 단 한 대도 주먹을 날리거나, 발길질로 형님을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동을 받았습니다. 남루하고 초라해 보인 40대의 엿장수가, 키 크고 싸움 잘하던 우리 동네 청년들의 우상을 보기 좋게 이긴 것입니다.

 

실력있는 사람은 겸손해

 

사나이의 진정한 실력과 힘을 본 것입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던 지게꾼 엿장수는, 비록 산촌을 찾아다니면서 엿장수 노릇을 하고 있지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그 엿장수의 기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군인이었던 형님은 자신의 실력이 하수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엿장수가 이겼다고 선언하고 어른 대접을 하였습니다. 나이도 거의 배가 됐고, 주먹실력도 한 수 위가 아니라 한참 위였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동네 청년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마치 개선장군처럼 자신을 우습게 보고, 맛보기를 달라는 형님이 가소로워서 맛보기 엿을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숨어 있는 엿장수의 실력을 발견하였고, 참된 실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뽐내지 않고 겸손하다는 것을 보았지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발견하는 것은, 숨어 있는 실력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입니다. 학벌이 좋지 않다고, 가난하다며, 못났다고, 심지어 작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무시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작은 사람은 작은 차를 타고, 큰 사람은 큰 차를 타는 게 아니잖습니까? 작은 사람과 큰 사람을 무슨 기준으로 정합니까? 키가 작으면 작은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키가 큰 사람은 다 큰 사람입니까? 그 엿장수는 작은 사람입니까? 아니지요. 그 엿장수는 큰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도 초라하지만 당당하였던 엿장수를 잊지 못합니다. 내 인생의 참 좋은 영향을 끼쳐 온 그 엿장수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 그 싸움 아닌 싸움을 그치고 엿 잔치를 벌였습니다. 다 함께 만족스런 웃음을 날리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홈페이지 www.happy.or.kr에도 게재합니다.


태그:#엿장수, #큰사람,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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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시민 사회운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2007년 봄에 밀양의 종남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귀촌하였습니다. 지금은 신앙생활, 글쓰기, 강연, 학습활동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고 있는 1948년생입니다. www.happ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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