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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이후로 지금까지, 대학이라는 곳을 통해 나는 제법 여러분의 존경하는 교수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국문학과 미디어를 복수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더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들을 여력은 없었다는 점은 안타깝게 느껴지곤 하지만 인문학적 지식이나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충분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우리가 이 순간 살아가고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때, 그들이 보여주는 우리세대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이전세대와의 일방적인 비교앞에 나는 솔직히 분노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다.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대는 우리가 흔히 486이라 부르는 세대다. 40대 혹은 50대 초반, 80년대 학번, 그리고 60년대 출생.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이 분들은 독재정권하에서 '민주화'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위해 싸워온, 그리고 승리를 얻어낸 영광스런 세대라 할만하다. 이들의 대학생활은 하루하루가 전투였으며, 생의 가치를 좇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또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많은 교수님들은 나를 포함한 20대를 이기적인 세대, 지배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는 세대, 한심한 세대, 교육이 불가능한 세대 등등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동원해 표현하시고는 한다. 이 같은 우리세대에 대한 인식은 부정을 넘어서 동정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역사적으로 지금 같은적이 없었다'는 말과 함께 아무리 노력해도 삶의 고난을 피해갈 수 없는 '더럽게 재수없는 세대'로 까지 표현하곤 하신다. 그리고 이 불합리한 시대에 맞서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는 우리세대의 모습은 그들에게 회의적인 시각으로 가하는 우려와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내가 그랬듯이 많은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이 교수님들의 이 같은 지적 앞에 무차별적으로 얻어맞는다. 가뜩이나 움츠러든 어깨는 한 없이 좁아지고 눈빛은 탁해진다. 우리들은 어디 한 군데 발 붙일 곳이 없다는 박탈감과 허망함 앞에 뒷걸음질 치지만, 뒤를 돌아보면 신자유주의로 표방되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격하고 견고한 시대정신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그래서 20대는 땅을 파고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침전한다. 오늘 나는 그들에게 이해를 부탁하려한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부탁과 함께 우리세대가 직면한 어려움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묻고 싶기도 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세대는 '가치없는  일들'에 젊음의 에너지를 올인하고 있다. 토익점수로 상징되는 스펙쌓기는 어느새 4학년을 넘어서 신입생때 부터 시작해야하는 우리세대의 의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처럼 무의미한 스펙쌓기 대열에 동참하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20대는 없다. 우리들도 프랑스의 의식있는 젊음이 되길 원하고, 과거 486세대가 그랬듯 인간적인 가치에의 몰입을 꿈꾼다. 종종 대학생들이 '조금 일찍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면', '그래도 그 시절엔 대학생으로써의 로망이 있었지'라고 말하는 것을 단순히 철 없는 소리로 치부해 버리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세대를 개별적으로, 그리고 무력감을 느낄만큼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밥'에 대한 불안이다. 오래전 성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프랑스 젊은이가 외쳤던 한 마디 '섹스보단 빵이 우선이야'는 비단 우리세대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절대적인 가치가 심오한 철학이 아닌 '밥'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이전 486세대가 느꼈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불안, 즉 학생운동을 하다가 신변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보다 지금 우리세대가 느끼는 사회구조의 한계와 그로인한 '밥'에 대한 불안이 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밥'이 보장된다면, 그리고 그로인해 우리들의 사고와 행동이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거리로 나설 생각이 있다.

'밥'에 대한 불안 말고도 이전 세대와 우리들의 차이를 드러내는 요소들은 상당히 많다. '민주화'라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추구행위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그 같은 가치를 가로막는 요소, 즉 극복해야할 대상은 '독재정부'로 구체화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이 직면한 어려움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연일 언론 매체나 인터넷 토론장에서 거론되는 이명박정부가 우리가 처한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일까?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젊은이로써 현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권이 바뀐다고해서 우리세대의 '불안'이 해소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구체적이지 않은 대상을 향해 당장 눈에 보이는 적극적인 투쟁을 할 수도, 이전세대가 그러했듯 투쟁의 과정에서 모두가 함께 영웅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존경하는 분들께 '새로운 가치로의 눈을 뜨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대안적인 공동체 생활을 할 수도 있고,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누비면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이 같은 조언들도 그다지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우리세대 또한 이전의 선배들과 같이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가치를 꿈꾸며, 다른의미에서 우리들로인해 더 어려운 현실에 마주한 우리 부모님세대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고, 현실에서의 모든 가치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486세대라 불리우는 우리들의 선배들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바로 지금까지 늘어놓은 변명에의 진심어린 조언이다. '우리는 민주화를 이뤄냈으니 너희도 20대에 뭔가 이뤄내야지'하는 은근한 강요가 아닌,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는 진심을 원한다. 우리세대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요구받고 있고, 동시에 그것들의 포기를 강요받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진정한 486세대의 시대에 우리세대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자그마한 공유와 이해를 구한다.
두서 없이 적다보니 글이 늘어지고, 산만해 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건방진 글을 올리는 이유가,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온 내 역사에 대한 반성이자, 앞으로 이런 방식이나마 직접적으로 고민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비춰지길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개인블로그에 함께 게재했습니다.
bolg.naver.com/spoonmin



태그:#486세대, #88만원세대, #20대,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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