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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홀 입구에 걸린 현수막
▲ 김광석류 비타산조 콘서트 현수막 문화일보홀 입구에 걸린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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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일 동안 앓아누웠다. 목이 아프면서 잦은 기침이 나고, 온 입안이 뜨거우면서 침 삼키기도 힘들었다. 두통은 너무나 심하고, 귀도 아프면서 눈동자도 아팠다. 아침이 되어 식구들이 나가고, 오후가 되어 다시 들어와도 나는 계속 아팠다. 일어나서 내과에 갈 힘도 없어 물도 못 먹었다. 아파하는 나를 스스로 지켜보면서 이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오늘(29일)은 토요일. 기타리스트 김광석님의 비타산조 앨범 발매기념 콘서트 둘째 날이다. 초대 손님으로 장사익님이라고 한다. 다 아팠던 것일까? 가고 싶은 마음이 컸을까? 삼 일 동안 끼니라고는 한 번 밖에 못 먹었는데도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있는 것만큼 서러운 일도 없다. 마음은 안 그런데 몸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으니... 덕분에 평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깨달아 몸을 함부로 써서 무리가 없도록 하려는 다짐을 한다.

현장에서 구입한 시디 <구름 위에서 놀다> 사인도 받아 왔다. <은하수> 시디도 구입했다.
▲ 구름 위에서 놀다 시디 현장에서 구입한 시디 <구름 위에서 놀다> 사인도 받아 왔다. <은하수> 시디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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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에서 많은 것이 빠져나가 비어있는 느낌. 서대문 문화일보 홀에 도착해서 들어가니 참 많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6시 10분경 시작한 공연은 8시 50분이 넘어서 끝이 났다. 미리 예약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 현장에서 표를 구입한지라 자리가 2층이었다. 멀게 보이긴 했지만, 소리는 아주 좋았다. 내가 비어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콘서트 내내 마음속으로, 듣는 것마다 보는 것마다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앓고 난 다음에 듣는 음악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콘서트에서 연주한 악기들. 맨 앞 바닥에 놓인 것이 <현판>이다.
▲ 비타, 기타, 현판 콘서트에서 연주한 악기들. 맨 앞 바닥에 놓인 것이 <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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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연주되었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 <비파>의 형태와 <기타>의 기능을 합쳐서 만든 악기가 <비타>며 현은 거문고와 가야금 줄인 명주실을 7현으로 사용하여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악기로 연주한 <구름위에서 놀다>는 우리나라의 고유 정신인 <선비정신>을 표현했다고 한다.

기타리스트로서 기왕이면 우리 소리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열망으로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연주소리는 깊고도 우아하면서 맑고 투명했다. 기타로는 나오지 않는 그런 소리를 기타 치는 모습으로 앉아서 연주를 하시니 <비타>라는 악기와 김광석님의 모습이 어쩐지 신선 같기도 하다.

밀양에서 KTX를 타고 도착해서 리허설도 없이 바로 연주에 맞춰 춤을 추시던 중요무형문화재 제 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전수자 하용부님. 즉석에서 추는 춤인데도 비타 소리에 어찌 그리  한 마리 백로처럼 추시던지 손가락 하나의 몸짓도 놓칠세라 눈도 깜빡거리지 못했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에서 연기할 때 표현하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하용부님의 그 손가락 추임새와 비슷했다. 타국선수들과는 다른 표현의 우아함과 아름다움. 서양의 운동을 하면서 우리 고전의 몸짓으로 표현한 세계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와 김광석님, 하용부님 사이에는 공통으로 흐르는 선이 보인다.

이 때 김광석님이 연주한 악기는 처음 보는 악기였는데 오른손으로는 현을 뜯고, 왼손으로는 탁탁 치면서 마치 북을 치는 듯한 연주를 했다. 소리 또한 두 가지 악기 소리가 나서 무척 신기했다. 나중에 연주가 끝난 후 초대 손님으로 오신 장사익님이 구수한 사투리로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니 <현판>이라는 악기로 역시 스스로 만드셨다고 한다. 이름은 가칭이란다. 현판은 건물 문패 같다며 차라리 <판현>으로 바꾸라는 장사익님의 말씀에도 그저 웃으신다. 이 악기는 소리만 듣는 것보다 역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듣는 것이 정말 좋겠다.

▲ 구름 위에서 놀다 김광석류 비타산조앨범 concert <은하수>를 비타로 연주 하시는 김광석님. 비파와 기타를 합쳐놓았다는 새로운 악기 <비타>. 몽골의 하늘을 보고 만들었다는 <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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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은 허름하지만 편안해 보이는 양복과 구두를 신으시고,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면서 무릎을 살짝살짝 구부렸다 펴고, 가끔은 짝다리를 하고, 눈을 크게 떴다 감았다 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으로 노래를 하시는 장사익님. 오늘 몸을 일으켜 이 콘서트 장에 올 수 있어 얼마나 좋은가? 노래 들으면서 그 소리에 취해 집에 오면서 내내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리면서 왔다.

자신의 스승님은 스스로 스승인줄도 모르고 있다며, 자신은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가서 연주하는 장사익밴드라고 하시던 김광석님. 사람 좋은 얼굴로 내내 웃으시며 심장수술한 지 석 달 보름 만에, 백일 만에 이 콘서트를 한다며, 새로 태어나 이제 사람형상을 좀 갖춘 것 같다며 축하하시던 장사익님. 이 콘서트가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그 순간 알았다. 우리는 하마터면 이 위대한 음악가를 잃을 뻔 했구나.

좀은 어눌한 말투로 굴러가는 발음이라 조금 알아듣기 어려웠던 말소리. 그러나 연주소리는 너무나 맑고 투명하고 웅장하여, 두 귀로 듣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온 몸과 마음으로 듣게 되는 소리다. 새로운 악기와 새롭게 표현한 음악들. 끊임없이 노력하여 새로움 속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을 탄생시킨 거장.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녀온 후 일어날 기운도 없던 순간들이 꿈처럼 느껴진다. 어느새 나는 회복했고, 다시 할 일들이 머릿속에 순서대로 들어차있다. 하지만 <구름 위에서 놀다>에 다녀와서 그런지 좀 더 홀가분한 상태로 그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선비정신. 나는 무슨 정신으로 일을 해 낼까? 내 정신의 뿌리를 함 살펴보고 이름을 붙여봐야겠다.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태그:#김광석류 비타 산조, #구름 위에서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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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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