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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환경 가계부
- 글 : 혼마 미야코
- 옮긴이 : 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 펴낸곳 : 시금치 (2004.12.10.)
- 책값 : 9000원

 (1) 집일 하는 사람 책읽기

새벽 세 시 삼십사 분부터 깨어난 아이는 아침 열한 시 삼십오 분까지 칭얼거리다가 잠이 듭니다. 요 며칠 바깥마실을 하는 동안 바깥사람들하고 신나게 어울리며 졸음을 잊은 채 뛰어놀던 아이였는데, 몸이 고단하면서도 새벽 일찍 어김없이 일어납니다. 새벽에 일어난다고 걱정이라거나 힘들다기보다, 아이는 도무지 낮잠을 안 자려 하면서 투정과 짜증이 더해 가기 때문에, 아이한테나 어버이한테나 부디 아침에 늦잠을 자면 얼마나 기쁘랴 생각합니다. 잠은 자면서 놀고, 밥도 먹으면서 놀면 오죽 좋을까요.

칭얼거리는 아이와 함께 방을 쓸고 닦고 치운 다음에 빨래를 하면서 씻깁니다. 빨래를 하는 동안 밥을 안쳤고, 다 된 밥을 먼저 아이한테 먹이면서 다른 찬거리를 마련합니다. 새벽바람으로 청소하고 빨래하고 씻기고 밥하고 밥 먹이고 하기까지 꼭 네 시간이 걸립니다. 아이와 살아온 스물한 달 동안 날마다 으레 하는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하루라도 느긋하게 숨을 돌린다거나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집일을 빼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 맡기는 마음을 알 만합니다. 그러나 이토록 닦달하고 들볶던 아이가 잠든 모습을 바라볼 때에는 이 얄미운 녀석이 달디달며 곱게 그릉그릉거리고 있어, 내가 너한테 무엇을 더 바라며 똑같이 짜증을 부리고 큰소리를 치며 힘들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느냐 싶습니다.

엊그제 동네 헌책방에 마실을 가서 소설쟁이 오정희 님 산문모음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1994년에 나온 <허리굽혀 절하는 뜻은>(창)이라는 책인데, 오정희 님은 머리말에 "이 책은 가정이라는 울 안에서 밥짓고 빨래하고 아이들 때문에 애태우고 사는 재미, 사는 걱정으로 나이들어 가는 평범한 한 여자로서의 입장에서 쓴 작은 글모음이다. 가정주부로, 아이들의 어미로 삶의 결과 세상살이를 바라보기, 내 속에서 끓어넘치는 열정과 넋두리가 들어 있어 내가 쓴 어느 소설보다도 자신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자잘한 근심걱정으로 한숨 쉬고 답답해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 그러나 그러한 일상사가 또한 구원이 됨을 모르지 않기에 이런 글모음으로 책을 펴낼 용기를 내어 본다"고 밝힙니다. 여느 글쟁이 여느 글모음은 넘쳐도, 여느 살림꾼 여느 글모음은 드문 우리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한 어버이한테서 한 아이로 자라지 않은 사람이 없건만 이 땅 글쟁이 가운데 '한 어버이한테서 한 아이로 자라 온' 이야기를 글로 만나기란 몹시 힘들고, '한 어버이로서 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야기를 글로 만나기란 더욱 힘듭니다. 그나마 오정희 님은 소설을 쓰는 분이었으니 글을 쓸 겨를을 내거나 글을 써 달라고 바라는 곳이 있어 당신 살림살이 이야기를 글로 여밉니다. 그렇지만 숱한 어머니들 이야기는 글로 여미어지지 않습니다. 숱한 어머니와 세월을 함께 보내는 숱한 아버지들 이야기 또한 글로 묶이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하루 내내 제 엄마아빠를 고달프게 해 주는 아이는 사탕을 물고 잠이 듭니다. 어제는 새벽 여섯 시부터 열 시간 내내 낮잠 없이 아빠를 들볶았습니다. 더없이 고단한 아이키우기입니다만, 잠든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를 탓할 수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곱씹습니다.
 하루 내내 제 엄마아빠를 고달프게 해 주는 아이는 사탕을 물고 잠이 듭니다. 어제는 새벽 여섯 시부터 열 시간 내내 낮잠 없이 아빠를 들볶았습니다. 더없이 고단한 아이키우기입니다만, 잠든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를 탓할 수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곱씹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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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혼인을 해서 복닥복닥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꽤 있습니다. 아이와 어우러지는 고단한 아름다움을 밝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제법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느 살림꾼 삶자락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글로 쓸 만한 이야기가 못 된다 여길 수 있겠으나, 글로 쓸 만한 틈을 못 낸다 할 테고, 애써 글로 썼다 하더라도 실어 주는 자리가 없습니다. 맛깔스럽다는 온갖 요리를 다루는 책은 있으나, 날마다 먹는 밥이나 국이나 찌개나 김치나 반찬을 다루는 책이 한 가지라도 있습니까. 궁중요리라느니 무슨무슨 요리라느니 하는 책은 넘치지만, 여느 사람이 여느 자리에서 살아가며 늘 먹는 가장 밑바탕이 되는 밥하기와 얽힌 '살림책'은 없습니다. 예쁘장하게 지어 입는 옷이나 사서 입는 옷 이야기를 다루는 책과 잡지는 넘칩니다. 그러나 바쁘고 고단한 살림에 수수하게 지어 입히거나 마련해 입히는 옷 이야기를 다루는 책과 잡지는 없어요.

아마 돈이 안 되는 살림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제아무리 남녀평등이니 여남평등이니 소리높여 외쳐도 정작 '집안일(가사노동)'을 돈셈으로 치는 사람은 없잖아요. 나라에서 돈을 줍니까, 회사에서 돈을 줍니까. 동사무소에서 돈을 줍니까, 누가 돈을 줍니까. 그런데 돈셈으로 치지 않는 집안일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요, 예부터 집일을 '살림'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살림하는 사람으로서 날마다 느끼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을 '가사노동'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살림'입니다. 많이 어수룩하고 모자라고 어줍잖은 살림이기는 하나, 저는 살림살이를 하는 살림꾼입니다. '가사노동'을 하는 '가정주부'는 아니에요. 그래서 제 살림살이를 돈셈으로 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니 다달이 50만 원쯤 아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엄마젖을 먹였고 천기저귀를 제가 손빨래로 갈아 채웠으니 이래저래 돈을 얼마쯤 아겼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안 몰고 아기수레를 장만하지 않았고 옷은 모두 얻어서 입으니 또 돈을 어느 만큼 줄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픈 옆지기를 잘 보살피지 못해 언제나 미안한데, 넘치는 집일을 짐지지 못해 누구한테 맡긴다면 돈을 얼마 내야 하니까, 이만큼 또 돈을 안 쓰고 있다고 느끼지 않아요.

치고 볶아도 내 사랑이고 내 살림이니까요. 부딪히고 쓰러져도 내 삶이고 내 살붙이이니까요.

마실을 하며 자주 찾아가는 동네 책쉼터에 있는 작은 걸상은 제 것이라며 늘 이 걸상을 들고 다니며 노는 아이입니다.
 마실을 하며 자주 찾아가는 동네 책쉼터에 있는 작은 걸상은 제 것이라며 늘 이 걸상을 들고 다니며 노는 아이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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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하루하루 눈알 돌아가도록 어지럽고 손이 떨리도록 힘겨우며 코피가 터지도록 일이 넘치는 삶이기 때문에 여느 책 하나 손에 쥐지 못합니다. 웬만큼 곰삭이거나 되씹는 가운데 풀어낸 이야기책이 아니라면 지루해서 졸음이 쏟아집니다. 아무래도 아이 키우고 살림 하느라 머리가 굳어 돌이 된 까닭인지 모르겠는데, 지식만 넘치는 책은 저한테는 참 재미없습니다. 실용책이든 처세책이든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사타구니 부여잡는 문학이나 머리 굴리는 예술이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고단하고 힘겨우며 바쁜 살림꾼이 졸리고 떨리는 손으로 애써 붙잡아 펼칠 만한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이 아닐 때에는 하나같이 책상에서 멀찌감치 내팽개치곤 합니다. 사람이 옹근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참사랑과 착한 믿음과 고운 손길을 추스르도록 돕는 책이 아닐 때에는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지난 스물한 달에 걸쳐 날마다 되씹고 곱씹습니다만, 아이를 낳아 키우던 날부터 '이제까지 해 오던 책읽기는 할 수 없다'고 느꼈는데, '이제까지 해 오던 책읽기를 그대로 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해 오던 책읽기는 그예 배부른 책읽기였다고 느낍니다. 속속들이 살림꾼이 되지 못한 채 저부터 지식조각을 주워섬기는 책읽기를 했다고 느낍니다. 오늘까지는 스물한 달째이고, 앞으로는 더 기나긴 달수와 햇수에 걸쳐 살림꾼다운 책읽기를 새롭게 익힐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2) 여느 가계부로는 살찌울 수 없는 살림

여느 가계부로는 살찌울 수 없는 살림을 이야기하는 책 <환경가계부>를 읽습니다. 2004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거의 사랑받거나 눈길받지 못한 채 사라진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온누리에 사랑받지 못하는 책이 한두 가지이겠습니까만, 이 나라에 손꼽히는 환경운동 시민단체 회원 숫자를 생각한다면 씁쓸한 일입니다. 이 땅에서 눈길받지 못한 채 스러지는 책이 한둘이겠습니까만, 생태와 환경과 웰빙과 그린 따위를 외치는 목소리를 헤아린다면 다른 책이 아닌 <환경가계부>가 이토록 막대접을 받고 조용히 묻혀 버린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슬픕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저부터 2004년에 이 책이 나온 줄 몰랐습니다. 2004년부터 여섯 해가 지난 201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책이 예전에 나왔음을 알았고, 책을 다 읽은 다음 둘레에 소개하려고 알아보니 판이 끊어져 더는 장만할 수 없는 책이 되어 있더군요.

겉그림.
 겉그림.
ⓒ 시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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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환경책을 좀더 샅샅이 살피고 꼼꼼히 읽는다고 밝히는 사람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책이었다니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나라 도서관에 이 책이 몇 권쯤 남아 있을는지 궁금하고,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책은 헌책방에 거의 나오지 않는데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볼 길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진책이 참 안 팔리지만 사진책보다 더 안 팔리는 책이 환경책입니다. 앞서 여느 살림꾼 이야기는 책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환경책이나 여느 살림꾼 이야기책이나 어슷비슷합니다. 두 가지 모두 한 번 책으로 묶이기 힘들고, 애써 책으로 묶여도 사랑받기 어렵습니다. 어려운 책이 아니고 딱딱한 책이 아닌데, 참 안 읽힙니다. 바른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새롭게 돌아볼 이야기입니다만, 참 뒤로 처지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자가용을 버리자'라는 외침은 꿈도 꾸지 못하는 우리들인 탓이기 때문이겠지요. '자가용을 버리자'는 못하겠다면 '자가용 홀짝수 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못할 테지요. 아니, 한 주에 한 번 자가용을 쉰다거나 열흘에 한 번 자가용을 쉬기조차 못하고 있는 우리들 아닌가요. 대중교통을 타지 말고 자전거나 두 다리를 쓰자고 한다면, 이를 받아들여 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촐퇴근하는 거리가 너무 길다고 하지만, 스스로 일자리를 집과 가까운 데에서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합니다. 영어로는 '로컬푸드'라고 하지만, 내가 사는 마을에서 얻는 먹을거리를 나 스스로 찾아 먹어야 내 몸과 내 마을이 튼튼합니다. 내가 내 마을에서 내가 즐거이 몸담을 일자리를 얻어서 일해야 나와 내 마을과 내 일터가 튼튼합니다.

서울이 고향이라면 서울을 사랑하여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고, 안성이 고향이면 안성을 사랑하며 안성에서 일자리를 마련할 노릇입니다. 대구사람은 대구에서 슬기로운 길을 찾고, 나주사람은 나주에서 아름다운 길을 찾아야겠지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옛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제 뿌리내린 고향에서 커야 할 노릇이요, 말이건 다른 짐승이건 제 삶터에서 튼튼하게 살아야 할 노릇입니다. 강릉은 강릉다움을 건사하고 인천은 인천다움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나와 내 집안과 내 마을과 내 겨레와 내 나라와 내 누리가 튼튼할 길이란 없습니다.

일본사람 혼마 미야코 님이 쓴 <환경가계부>라고 하는 책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들과 중앙정부와 기득권과 정치꾼과 지식인과 운동가들 모두 가장 얕보거나 낮잡는 여느 '살림꾼'이 여느 마을에서 여느 모습으로 여느 삶을 꾸리는 이야기야말로 가장 작은 집안부터 가장 큰 온누리까지 살릴 수 있음을 조용히 밝히고 보여줍니다. 돈을 더 버는 삶에도 남다른 뜻이 있겠으나 아름다운 뜻이란 없음을 찬찬히 알려주고 일깨웁니다.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삶이야말로 나와 내 동무와 살붙이 누구한테나 도움이 되며 사랑스러운 길임을 또렷이 드러내고 가르칩니다.

한꺼번에 정권을 뒤집자는 책이 아닌, 차근차근 내 집안을 바꾸고 내 집안에 앞서 내 삶을 바꾸자고 하는 <환경가계부>입니다. 내가 내 삶을 슬기롭게 바꾸지 못하는데 썩어빠진 정권을 갈아치울 수 없음을 온몸으로 깨우치는 <환경가계부>입니다. 대학교에 간들 배울 수 없고, 대학원뿐 아니라 로스쿨이건 대기업이건 가르쳐 주지 않는 이야기를 담은 <환경가계부>입니다. 나라밖으로 배우러 나간다 한들 배울 수 없는 깊은 이야기를 실은 <환경가계부>입니다. 바로 이 땅 이 자리에서 이 사람들, 그러니까 나와 내 살붙이와 내 이웃과 내 동무하고 살가이 얼크러지는 눈물과 웃음이 얼마나 빛나고 애틋한가를 적바림해 놓은 <환경가계부>입니다.

우리 나라가 아름답지 못해서 아름다운 책이 제대로 태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읽히지 못하니 <환경가계부>라는 책 또한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졌는데, 사라진 책을 되살리기는 어렵고, 이 나라에서 아름다운 삶을 건사하며 아름다운 넋을 가꾸는 이들이 새로운 아름다운 책 하나 선보이며 다 함께 기쁘게 어깨동무할 새로운 환경책 하나 빚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꿈을 꿉니다.

골목마실을 하며 늘 느낍니다만, 헐리고 빈 집터 돌을 골라서 텃밭을 일구는 동네 이웃이야말로 '환경지킴이'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지킴이'이기는 하지만.
 골목마실을 하며 늘 느낍니다만, 헐리고 빈 집터 돌을 골라서 텃밭을 일구는 동네 이웃이야말로 '환경지킴이'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지킴이'이기는 하지만.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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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쉬우나마 곱새겨 읽기

오늘날 도시 사회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라 하지만, 냉장고 없이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세탁기 없이 얼마든지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청소기가 있어야 할 만큼 지나치게 커다란 집에 살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자가용을 왜 몰고 있을까요.

툭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냉장고며 세탁기며 전기밥솥이며 머리말리개며 텔레비전이며 전기를 아주 많이 먹습니다. 이런저런 녀석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면 '원시인'이 되라는 소리냐고 따지는 분이 많은데, 그리 멀지 않은 1980년대까지 이런 전기제품을 집에 갖춘 사람은 그리 안 많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훨씬 적었고 1960년대에는 거의 어느 누구도 이런 전기제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환경가계부>는 우리들한테 원시인이 되자고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놓친 대목이 무엇인지 느끼자고 하는 책입니다. 우리가 깨닫고 느끼며 되새겨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가 생각하자고 하는 책입니다.

비록 이 책을 여느 책방에서 만나기란 몹시 힘들지라도, 다문 몇 줄이나마 함께 읽고 곱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한테 새롭게 가르치고 일깨우는 대목을 여러 차례 거듭 읽으며 한 글자 두 글자 천천히 옮겨적어 봅니다.

[22, 47, 136∼137쪽] 아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했는가, 이것 또한 귀중한 데이터가 됩니다. 일본의 아기들이 아프리카 아기들보다 약 80배나 많은 에너지를 쓴다니 말입니다 … 전기밥솥 안의 남은 밥은 보통 보온 상태로 두는데 의외로 보온은 전기가 많이 듭니다. 6시간 보온할 경우 밥을 새로 한 번 짓는 만큼 전기를 소비합니다 식사 때마다 그때그때 지어먹는 밥이 맛도 좋고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입니다 … 아이들의 옷을 항상 바자회에서 사서 입힌다는 젊은 여성도 있습니다. 자신 역시 30엔에 산 티셔츠와 100엔에 산 청바지를 입고 발랄하게 유치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뿌리를 내린 지역에서 옷이나 일용잡화를 재활용하고 물건과 정보를 교환하는 사이에 언젠가는 전체 쓰레기의 양은 줄어들어 있을 것입니다.

[24, 44, 131, 132쪽] 절전은 처음부터 100퍼센트 완전하고 빈틈없이 실행되지 않습니다. 너무 꼼꼼히 하려다 보면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일 년 365일 계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에어컨보다 선풍기를 쓰면 전기사용량은 훨씬 더 줄어듭니다. 최근에 선풍기가 다시 잘 팔린다고 하더군요. 또 선풍기보다 부채를 쓰면 당연히 훨씬 더 절전이 됩니다 … 포장을 거절해서 오히려 좋은 소리도 듣고 이익을 가져올 뿐 아니라, 인력과 쓰레기를 줄이는 이점이 있습니다. "포장 필요 없어요." "봉투 필요 없어요." "책 안 싸 주셔도 됩니다." 이런 단 한 마디로 말입니다. 이 말 한 마디를 하기 어려운 사람도 계십니까? … 포장용기를 받아 오지 않으면 쓰레기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걸 처리하느라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올봄, 골목마실을 하며 동네마다 수수꽃다리가 참 많이 자라고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지난봄에는 다른 일 때문에 바빠 수수꽃다리 꽃철을 놓쳤는데, 올해에는 인천골목길 모든 곳에서 하얀 꽃과 빨간 꽃과 보라 꽃 수수꽃다리를 어디에서나 손쉽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도심지 한복판에서 살리고 있는 자연 매무새라고 하겠습니다.
 올봄, 골목마실을 하며 동네마다 수수꽃다리가 참 많이 자라고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지난봄에는 다른 일 때문에 바빠 수수꽃다리 꽃철을 놓쳤는데, 올해에는 인천골목길 모든 곳에서 하얀 꽃과 빨간 꽃과 보라 꽃 수수꽃다리를 어디에서나 손쉽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도심지 한복판에서 살리고 있는 자연 매무새라고 하겠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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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3, 89쪽] 카탈로그를 면밀히 훑어보는 습관을 익히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소비자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를 왜 이렇게 읽기 어려운 작은 글씨로 적어 놓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 겉모습과 가격만 선전하게 된 현실은 지금까지 소비자가 그것을 기준으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일본 전국에서 계획되고 있는 댐이 모두 불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말로 필요한 댐이 있을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므로 일반 주민이 판단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51, 53, 54쪽] 화력발전에서 전기가 되는 열은 40퍼센트 정도에 불과합니다. 60퍼센트의 열은 버려지고 있습니다. 또 원자력발전은 35퍼센트가 전기가 되고 65퍼센트를 버립니다 … 지금 가장 에너지 절약 노력을 하지 않고 전기 사용량은 날로 늘어가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석유와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을 우리는 언제까지 의지해야 할까요. 또 먼 곳에 화력발전소를 세우고 길고 긴 송전선을 통해 생산한 전기를 버리는 것이 이치에 맞는 걸까요. 전기를 쓰는 생활을 당연히 여기는 우리들로서 지금까지 상상하지 않았던 것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전기가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전기 없는 채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125∼126쪽] 유기 농산물을 재배하려면 쌓아 놓은 풀과 똥을 몇 번씩이나 뒤섞어 퇴비를 만들고 농약을 치지 않는 밭에서 잡초와 씨름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굉장히 힘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벌레 먹은 흔적이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벌레가 먹어도 아무런 독이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가게에 진열된 채소는 맛이나 질과 관계없이 그저 겉모습만으로 선택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자란 채소는 크기가 큰 것도 있는가 하면 작은 것도 있고 똑바로 자란 것도 있고 구부러진 것도 있고 가지각색입니다. 크기나 형태로 선택을 하면, 선택되지 않는 것들은 버려지거나 아주 싼 값의 떨이로 팔립니다 … 식탁에 오르는 채소에서 소비자는 여러 가지를 보게 됩니다. 채소를 생산한 사람들의 얼굴들, 그 가족의 얼굴들, '그 사람이 먹고 있다'는 생각으로 생산자는 재배를 하고, '그 사람이 기른 것'이라는 생각으로 소비자는 채소를 먹습니다.

[139쪽] 인구가 집중되고 대량으로 소비하며 대량의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대도시야말로 리사이클의 효과가 가장 크지만, 바로 그 대도시가 가장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인간관계'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140쪽] 쇼핑한 물건은 언젠가는 모두 쓰레기가 됩니다.

[141쪽] 자연식품 위주로 식사를 하지 않는 몸은, 영양의 균형이 깨져서 생리적으로 욕구 불만이 되기 쉽습니다. 인스턴트 가공식품에 포함된 화학첨가물은 그러한 욕구불만과 초조함을 더해 줍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은 화분뿐 아니라 빈 집터에 텃밭을 일구어 푸성귀를 길러 먹습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으나 더없이 소담스러운 '환경지키기'입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은 화분뿐 아니라 빈 집터에 텃밭을 일구어 푸성귀를 길러 먹습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으나 더없이 소담스러운 '환경지키기'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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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쪽] 젊은 시절은 한 번 지나가고 마는 것이므로 너무 잔소리하지 말고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아이들이 진학과 취직 때문에 집을 나가는 순간 전기요금이 반으로 줄어든 예도 있습니다. 혼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 아들과 딸이 곧바로 에너지 절약, 자원 절약 도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만들어 주는 요리의 가치를 깨닫고 '맛있다'를 연발합니다. 친구들과는 인스턴트 식품만 사먹고 저녁은 자주 걸러 왔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환경 가계부 -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습관

혼마 미야코 지음, 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옮김, 시금치(2004)


태그:#환경책, #책읽기, #삶읽기, #가정주부, #환경가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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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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