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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지난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서 고인들의 영정앞에 헌화하고 있다.(자료사진)
 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지난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서 고인들의 영정앞에 헌화하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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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연평해전까지 갈 필요도 없다. 기억을 2005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6월 19일 경기도 연평군 최전방 육군 28사단 GP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벌어졌다. 군인 8명이 숨지는 참사였다. 가해자는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 일병이었다.

당시 군은 모든 책임을 김아무개 일병에게 돌렸다. 군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사회 부적응자가 입대해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짓는 게 군에게는 가장 편했다. 책임을 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름길을 가기 위해 군은 사고 현장에서 생존한 군인들을 적극 활용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4일 만이었다. 군은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생존자들을 동참시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직접 이야기하도록 했다.

당시 생존자들은 "(김 일병은) 선임들이 혼을 내면 욕을 했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그래서 더욱 혼이 났고 동기다 보니 혼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또 한 사병은 "오히려 지금 다른 나라에 가 있는(사망한) 선임들이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한 착한 사람들이었다"며 "사고 며칠 후 김 일병이 선임들의 언어폭력에 의해 사건을 저질렀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이 났으며 우리 모두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생존자들의 말을 근거로 군은 "친근감의 표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을 김 일병은 내성적 성격 때문에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심정적인 충격을 느낀 것 같다"고 최종 발표했다.

그렇게 '공공의 적'은 김 일병 하나로 모아졌다. 사건은 그렇게 역사로 묻혔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고통은 이어졌다. 생존 병사 28명 중 13명은 사고 후 6개월여 만에 의병 제대했다. 이들 중 일부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또 사고 후유증으로 자살을 시도한 이도 있었다.

결국 군은 자신들 책임을 면하기 위해, 혹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정신적 외상을 당한 병사들을 사고 발생 4일 만에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지난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고인들의 동료병사들이 영결식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후배병사의 눈물을 고참이 닦아주고 있다.(자료사진)
 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지난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고인들의 동료병사들이 영결식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후배병사의 눈물을 고참이 닦아주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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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어떨까? 천안함이 침몰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침몰 당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생존자 네 명은 지난 3월 27일 실종자 가족들 앞에 잠깐 섰다. 그 뒤 장병 58명은 철저히 군의 보호(?) 아래 있다.

훗날 의병 제대한 병사들까지 앞장 세웠던 군의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 언론 접촉을 막고 있다. 누가 어느 정도 다쳐 어디서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군이 생존자 입막음을 시켰다"는 말이 떠돈다.

물론 군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국방부는 1일 "작은 불만도 쉽게 인터넷에 올리는 요즘 신세대 병사들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입단속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뭔가 숨기려고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생존자들은 자신들만 살아 돌아왔다는 자책감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어 상당기간 치료와 안정이 필요하다"며 "사안이 안정되는 대로 생존자들의 증언도 공개토록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틀린 말 아니다. 군이 장병들의 인권 보호와 치료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고개가 자꾸 갸우뚱 거린다. 2002년 연평해전 때, 군은 환자복을 입은 장병까지 언론 앞에 내세웠다. 앞서 말했듯, 2005년 총기난사 사건 때는 정신적 외상을 당한 이들을 앞세웠다.

이렇게 군은 자신들이 유리하거나 핑계를 대야 할 때는 환자를 내세웠다. 그리고 그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각종 의혹과 소문이 난무하는 상황. 군은 정말 장병 인권 문제로 생존자들을 '격리'시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이 벌어질까봐 '환자 전술'을 안쓰는 것일까?

군은 "사람들이 우리는 너무 믿지 않는다"며 억울해 하고 있다. 정녕 그렇다면, 생존자들 인권을 보호하면서 증언을 가능케 하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군은 지금 그 길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의혹과 의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지난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망한 병사들의 동료들이 굳은 표정으로 영결식을 지켜보고 있다.(자료사진)
 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지난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망한 병사들의 동료들이 굳은 표정으로 영결식을 지켜보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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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한 28사단에서는, 정확히 20년 전인 1985년에도 똑같은 총기난사가 벌어졌다. 그 때도 8명이 숨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언론에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생존자가 입을 여는 것도, 언론 보도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군사정권 시대였다.

당시 28사단 의무대에서 복무했던 이아무개씨는 "당시 우리 28사단 병사들은 당연히 세상에 진실을 말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았다"며 "사고 직후 3개월 동안 외출 외박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정말로 이 사건은 20년 동안 묻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 시계가 군사정권 시대로 돌아갔다"고 평가하는 오늘날. 정말로 방송사 사장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 맞았다"는 말도 들린다. 그리고 여당의 원내대표는 입만 열면 "좌파 적출"을 이야기 하더니, 종교계에까지 철 지난 색깔 공격을 하고 있다.

군도 이런 시대에 편승해 천안함 침몰을 군사정권 시대처럼 덮어 버리고 싶은 건 아닐까? 지난 85년 28사단 총기난사 사건처럼 말이다.


태그:#천안함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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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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