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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만촌동 '맑고향기롭게' 대구모임 분향소
 대구 수성구 만촌동 '맑고향기롭게' 대구모임 분향소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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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넘쳤던 대구 분향소

지난 3월 11일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 스님은 번거롭고 부질없다며 장례의식을 마다하셨다.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평소 입던 승복으로 다비해 달라 당부했다. 사리를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고 하셨다.

생전 스님의 바람과 어울리는 조촐한 분향소가 대구에도 마련됐다. 입적 다음날일 3월 12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맑고향기롭게 2층 법당. 스님의 영정 사진과 꽃 몇 다발, 그리고 향내가 문상객들을 맞았다.

12일 오전 인터넷 홈페이지에 분향소를 차렸다고 알리자, '맑고향기롭게'의 위치를 묻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이내 오전부터 검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무거운 얼굴로 분향소를 찾았다.

법정 스님 입적 소식에 상심해 하는 봉사회원
 법정 스님 입적 소식에 상심해 하는 봉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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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문상 온 사람들은 말했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문상 온 사람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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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향기롭게 전 사무국장이었던 이유호 씨는 "위독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며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맑고향기롭게 봉사회원인 박재홍 씨는 "입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그저 멍했지만, 라디오에서 법정 스님을 추모하는 음악을 듣고서는 이내 눈물이 핑 돌았다"면서 비통해 했다. 이어 박 씨는"스님은 정신적인 지주였으며,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저녁에 찾아온 전영권 씨는 "2005년 맑고향기롭게가 노숙자 무료급식을 할 때, 함깨 참여해 표창을 받았다"면서 표창 내용을 복사한 A4종이를 펴보였다. 전 씨는 맑고향기롭게와 함께한 봉사를 통해 법정 스님을 추억했다.

분향소를 찾은 한 30대 부부는 영정 앞에서 옹알이 하는 아이에게 절을 시키며 법정 스님을 추모했다. 해가 져 찾아온 여대생 두 명은 분향한 뒤 법정 스님의 책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놨다. "가슴 깊이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며 "이제 스님의 글을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다"고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몇몇 문상객은 차담실 책장에 꽂혀있던 법정 스님의 책을 꺼내들고 책장을 넘기며 감상에 젖었다. 글로 법정 스님을 접했던 대부분의 문상객들은 "글을 너무 좋아해 책이 나올 때마다 사봤다"며 스님을 그리워했다.

망연자실 법정 스님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망연자실 법정 스님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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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하고 절을 하고 있는 문상객.
 분향하고 절을 하고 있는 문상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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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향기롭게 대구모임의 차담실 책장에 법정 스님의 책이 꽂혀있다.
 맑고향기롭게 대구모임의 차담실 책장에 법정 스님의 책이 꽂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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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자 문상객을 맞았던 이재원 사무국장의 전화는 더 바빠졌다. 다음날 송광사에서 열리는 다비식에 참가하려고 문의하는 전화였다. 이 사무국장은 "처음엔 고속버스 1대를 마련했지만, 다비식에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 2대로 늘렸다"며 "그것도 모자랐는지 계속해서 남는 자리가 없냐고 전화가 온다"고 말하며 연방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깨달음을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곳, 맑고향기롭게

맑고향기롭게 봉사회원들은 언론이 그저 '무소유'만을 강조하는 것 같아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4대 사무국장을 지낸 이유호 씨는 "불교적 깨달음의 사회적 실천 모델이 맑고향기롭게다"며 "깨달음이 사회적 메아리가 되어서 이웃과 나누고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법정 스님의 진짜 정신이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종교인으로서 사회현실에 대해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사회화'를 위해, 산속에만 있지 않고 사회에 나와서 참여하고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뜻을 올곧이 따르는 곳이 바로 봉사단체 '맑고향기롭게'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 맑고향기롭게 대구모임 사무실 개소식 때 모습.
 대구 수성구 만촌동 맑고향기롭게 대구모임 사무실 개소식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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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향기롭게는 1994년 법정 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불교 신자들이 모여 만들었다. 서울, 광주, 대구, 부산 등지에 지역모임을 두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구모임은 1996년에 문을 열었다. 처음엔 해인사 골프장 반대와 같은 환경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동물사랑캠페인과 팔공산 새집 달기, 동물 모이주기 등등 활동 폭을 넓혀갔다.

그러던 중 IMF 이후 1999년부터 동대구역에서 노숙자 급식을 시작했다. 노숙자 급식은 다른 단체에 맡기고 2004년부터는 반찬배달 봉사를 해오고 있다. 해를 거듭하며 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도 늘었다. 그러면서 봉사는 더 다양해졌다.

봉사원들은 홀로 계신 어르신들에게 밑반찬을 대접하면서 말벗도 되어 드린다. 지체장애아시설인 '룸미니동산'을 찾아 식사를 돕고 욕실을 청소한다. 지체장애아들과 어울려 놀기도 한다. 또 치매노인요양시설인 '연꽃 피는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목욕, 식사 케어, 빨래정리, 말벗 등과 같은 봉사를 해오고 있다.

소리봉사모임 회원이 법정 스님의 책을 녹음하고 있다
 소리봉사모임 회원이 법정 스님의 책을 녹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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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정 스님의 책을 녹음해 시각장애인에게 전하는 소리봉사도 2000년부터 계속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맹인불자회를 대상으로 법정 스님(대표작 '무소유')의 책을 녹음해 보급했다. 그러다 작년엔 '대구평화영화제'에 참여해 음성해설영화를 상영했다.

소리봉사모임의 모둠장인 장우석 씨는 "시각장애인들의 문화적 접근권 차원에서 시설물과 같은 인프라만큼 문화콘텐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하다"며 음성해설영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법정 스님의 유지에 따라 책이 절판된 만큼, 앞으로 기존의 법정 스님 책을 더 많이 녹음해 보급할 예정이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덧붙였다.

대구모임 소직지. 매달 모임 소식과 함께 법정 스님의 글이 실렸다.
 대구모임 소직지. 매달 모임 소식과 함께 법정 스님의 글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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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새겨 사회적 실천으로 맑고 향기롭게 이어갈 것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끔찍한 재앙이다...(중략)...이 땅에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고 모독임을 알아야 한다. 물류와 관광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몇 푼어치 경제논리에 의해 이 신성한 땅을 유린하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망령된 생각이다" (법정 스님, 맑고향기롭게 소식지 2008년 6월호 중에서)

법정 스님 입적 이후, 사람들은 '무소유'의 정신과 글만을 기억한다. 스님의 깨달음 끝엔 사회적 실천이 있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사회에 대해 권력에 대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던 분이 법정 스님이다. 그 깨달음의 사회적 실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맑고향기롭게'란 사실도 잘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맑고향기롭게 봉사회원들은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를 뜻한다'는 맑고향기롭게의 모토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이재원 사무국장은 "욕심을 줄이고 만족하며 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나누고 양보하면서,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아끼는 마음으로 세상과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만들어야 한다.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버릴 수 없었던 그 정신, 즉 깨달음의 사회적 실천을 맑고향기롭게가 앞으로 이어 가겠다"고 앞으로의 다짐을 털어놓았다.

개인의 맑음과 사회의 향기로움을 조화시키고자 했던 법정 스님. 개인의 맑은 깨달음이 사회의 향기로운 메아리가 되길 바랐다.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만들고자 했던 스님의 그 뜻이 '맑고향기롭게'에서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법정 스님의 뜻이 서려있는 목판.
 법정 스님의 뜻이 서려있는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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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법정 스님, #맑고 향기롭게,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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