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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타고 다니는 20년 된 바이크, 초기 제품으로 이 모델중에서 더 오래된 것을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
 필자가 타고 다니는 20년 된 바이크, 초기 제품으로 이 모델중에서 더 오래된 것을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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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타고 다니는 바이크는 20년 된 바이크다. 옛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는 시골마을인 이곳 낙안면에서도 필자의 바이크와 비슷한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바이크를 알아본다. "저거 징하게 오래된 것인데..."하면서.

그런데 만약 사람들에게 낡은 바이크가 아닌 또 다른 것을 각인시키고 싶었다면, 이 지역에서는 물론 전국을 돌아봐도 감히 없을 것 같은 최신식 바이크를 타고 다녔다면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와따 무쟈게 멋진 것 타고 다녀부네"라고 하면서 기억해줬을 것이다.

'징하게 오래된 것이네'로 기억되든 '무쟈게 멋진 것 타고 다녀부네'라고 기억되든 적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필자에 대한 브랜드는 세워놓게 되는 셈이다. 그것이 가치다.

부용산 자락을 허물고 우수저류시설을 만들고 있다. 그곳엔 벌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달동네가 자리하고 있었다.
 부용산 자락을 허물고 우수저류시설을 만들고 있다. 그곳엔 벌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달동네가 자리하고 있었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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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성군 벌교읍에는 크고 작은 공사가 한창이다. 작은 마을에 굴착기 소리가 멈출 줄을 모른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살펴보면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인도교 공사, 태백산맥문학거리조성, 우수저류시설공사 등이 있다.

그런데 진행되고 있는 모양새가 '징하게 오래된' 벌교라는 바이크에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멋진 바퀴'라도 달았으면 이해하련만 그도 아닌 그저 '흔하디흔한 바퀴'를 달아놓은 격이다.  최신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풍스러운 것도 아닌 한마디로 벌교라는 브랜드를 없애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벌교는 일제강점기 때 형성되어 70년대 후반까지 팽창하다가 80년대 초에 급격히 쇠락해 30년간 도심 전체가 냉동된 채 남아있던 곳이다. 전국 여타의 도심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개발로 파괴되면서 특색 없는 도시로 변한 것과는 달리 일제 강점기와 새마을운동의 시대상을 확실하고 뚜렷한 색깔로 나타내고 있던 곳이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일제강점기와 새마을운동 이전의 모습들로 지난 30년 동안 벌교는 온전하게 이런 모습들을 간직해 왔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일제강점기와 새마을운동 이전의 모습들로 지난 30년 동안 벌교는 온전하게 이런 모습들을 간직해 왔었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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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바이크가 비록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 모델 중에서는 초창기 제품이다. 또, 다음 제품이 나온 후로는 중고로 동남아 등지에 수출하면 이득이 많아 사람들이 너도나도 중고로 팔아버렸기에 희귀성에서 값어치를 인정받았다.

인근 낙안지역은 너도나도 초가집을 헐고 슬레이트 얹었던 새마을운동의 여파에서 비켜가 초가집이 남아있고 성곽도 온전해 민속마을로 거듭났다. 이에 매년 관광객이 150만 명씩 다녀가면서 전통을 이어가는 지역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와 70년대의 모습으로 냉동된 채 남아있던 벌교는 해동시키면서 이리 뜯고 저리 부숴 '중고로 동남아에 수출'하고 '초가집 헐고 슬레이트 얹은 꼴'로 희귀성의 값어치를 없애고 지역의 시대적 가치를 날려버리고 있는 듯하다.

주민들이 지나다니면서 보게끔 걸어 놓은 골목길의 거울이 인상적인 벌교 부용안길 달동네
 주민들이 지나다니면서 보게끔 걸어 놓은 골목길의 거울이 인상적인 벌교 부용안길 달동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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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성과 벌교 사람들은 보물 제304호 벌교 홍교를 복원 하면서, 시대의 아픈 현장인 소화다리를 정비 하면서 본 모습을 망쳐버린 뼈저린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벌교의 가치를 훼손하는데 앞장서는 모습에 필자뿐 아니라 뜻있는 지역민들은 혀를 차고 있다.

인근 지역 낙안이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남아있고 불과 7킬로미터 떨어진 벌교가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답게 일제시대와 70년대 이전의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 상태로 유지돼 서로 연계해 지역 가치를 창출했으면 하는 바람은 굴뚝이다. 하지만 무작정 옛것만을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없기에 현대화를 하려면 가장 최신의 모습으로 변모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전국의 다른 지역들이 이미 30년 전부터 해 오던 형태의 변화를 그대로 답습해 따라가는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도심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벌교 너는 누구냐? 라고 질문했을 때 뭐라고 답할 것인가? 한국의 시드니, 한국의 두바이가 되지 못할 바엔 일제 강점기의 모습과 새마을운동의 시대상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라고 말할 정도는 돼야하지 않을까?

30년 냉동된 벌교를 해빙 할 때는 삽질하는 새마을일꾼 보다 전문 요리사인 도심디자이너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 실렸습니다



태그:#바이크올레꾼, #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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