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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내성천의 모습
 해질녘 내성천의 모습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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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에 참가한 한 아이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서 어떤 것을 봤어?"
아이가 대답을 않고 우물쭈물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끼어들었다.

"낙동강 봤잖아!"

그러자 처음 질문을 받았던 아이가 쏜살같이 말꼬리를 잡으며 맞받아 소리쳤다.

"정상인 낙동강이 아니잖아!"

실망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순례단이 상주보 공사장과 사벌의 골재채취 현장을 막 둘러보고 회룡포로 가던 중이었다.

눈으로 똑바로 봐야 한다

지난 1월 23일 오전. 경상북도 상주의 상주터미널 앞. 전국에서 모인 50여 명이 '1박 2일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이하 낙동강 순례)'에 나섰다. 1박 2일 동안 진행될 '낙동강 숨결 느끼기'의 시작이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길라잡이가 되어준 지율 스님이 순례자들에게 말했다.

"불교에서 깨달음으로 이끄는 올바른 여덟 가지 길을 팔정도라 한다. 그 가운데 정견(正見)이 있다. 바로 똑바로 보는 것이다. …어떤 곳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똑바로 봐야지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라고. 순례길에서 본 것들을 눈과 가슴 속에 잘 담아두라는 스님의 당부였다.

매주 '낙동강 순례'가 시작된 건 지율 스님이 상주에 터를 잡은 지난해 11월 뒤부터였다. 스님은 그해 3월부터 낙동강을 걸어왔던 터였다. 처음엔 낙동강 전체를 순례하며 강과 풍경을 들여다봤다. 그러다 "4대강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마음이 급해져, 낙동강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겠다고 맘먹었다"고 한다. 그것이 '낙동강 순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아직도 덜 파괴된 곳에서 사람들과 강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하는 스님의 표정은 그윽했고 말투는 은근했다.

'낙동강 순례'가 시작되는 상주에는 낙동강의 8개 보 가운데 가장 상류에 위치한 '상주보'가 놓여진다. 그리고 상주보 바로 위에는 '한국의 적벽'이라고 불리는 '경천대'가 있다. 더 위로 가면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 제1호이자 KBS <1박 2일>에도 소개된 적 있는 '회룡포 마을'이 있다. 더 상류에는 영국 여왕이 다녀간 '안동 하회마을'도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이 아름다운 산천이 훼손된다는 사실이 스님에겐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강창교 아래로 모래와 뒤엉긴 얼음뭉치가 떠내려가고 있다.
 강창교 아래로 모래와 뒤엉긴 얼음뭉치가 떠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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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을 실감하게 된 강창교의 물빛

순례단이 먼저 도착한 곳은 강창나루가 있던 강창교였다. 강창교는 '낙동강에 있는 다리 가운데 물에 가장 가까운 다리'라고 한다. 다리 아래를 흐르는 강물이 순례자들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강물은 옅은 모래색을 띄었다. 얼음뭉치가 둥둥 떠서 줄줄이 떠내려가는데, 얼음뭉치는 모래와 뒤범벅된 상태였다. "강창교 상류의 멀지 않은 곳에서 상주보 공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라고 스님은 까닭을 설명했다. 매체를 통해 막연히 알아왔던 4대강 공사가 그때서야 눈앞에 사실로 다가왔다. 

스님은 강창교 주변의 논밭을 가리키며 "여기가 낙동강 문제를 들여다보는 창"이라며 "강 주변 논밭에 생태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인데, 이미 외부인들이 상당수를 매입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지나는 차는 띄엄띄엄 보였을 뿐이었고, 상주에서도 변두리라서 그저 황량하기만 했다. 한마디로 경제성은커녕, 개발 이익도 원주민의 것이 되기 힘들다는 말이다.

상주보 공사현장. 덤프트럭 사이를 지율 스님이 지나가고 있다.
 상주보 공사현장. 덤프트럭 사이를 지율 스님이 지나가고 있다.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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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보 공사현장. 지율 스님이 벌목 작업 현장을 카메라로 담고 있다.
 상주보 공사현장. 지율 스님이 벌목 작업 현장을 카메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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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보 공사현장. 조감도를 향해 순례단이 걸어가고 있다.
 상주보 공사현장. 조감도를 향해 순례단이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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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보 공사현장. 지율 스님이 조감도의 인공 조형물을 가르키고 있다.
 상주보 공사현장. 지율 스님이 조감도의 인공 조형물을 가르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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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척대는 상주보 공사현장

강창교를 지나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상주보' 공사가 한창이었다. 낙동강 8개보 가운데 최고 북단에 위치한 상주보. 공사현장은 질퍽댔다. 덤프트럭은 으르렁대는 엔진소음을 내며 지나다녔다. 순례자들 바로 옆을 지날 땐, 끈적대는 소리를 바퀴 끝에서 흘렸다.

공사현장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조감도 앞으로 순례자들은 모였다. '그 잘난 얼굴 어디 한 번 보자'는 듯 말이다. 공사현장과 가까워서 중장비가 내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주위를 뒤덮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지율 스님의 목소리가 그 둔중한 굉음을 비집고 나왔다.

"생태는 원래 있는 것을 더 잘살게 해야 하는데 원래 있는 것을 없애고 새것을 심어 넣고 있다"며 "수억 년 동안 유기적으로 이어져오던 생명을 망가뜨린다"고 조감도 앞에서 스님은 목소리에 더 힘을 넣었다. 그리고는 "보의 콘크리트 조형물을 강의 꽃으로 표현했다"며 분통해 했다.

소음과 섞인 스님 목소리에 순례자들은 조용히 집중했다. 몇몇은 간간이 날숨을 길게 내쉬었다. 땅이 꺼질 것처럼. 또 몇몇은 얼굴의 반쪽만 찌그러뜨린 미소를 날리며, 조감도와 그 뒤에 감춰진 욕망을 침묵으로 조롱했다.

순례단은 머리를 돌려 청룡사 전망대로 향했다. 여전히 무한궤도의 포클레인은 강을 긁었고 덤프트럭은 그 모래를 일개미처럼 일렬로 날랐다. 공사장을 빠져나오는 길 한쪽에서 일꾼들이 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현장 감독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턱으로 일꾼들을 부렸다. 벌목하는 일꾼들 가운데 짙은 피부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크레인과 같은 중장비와 나무를 베는 외국인 일꾼만이 눈에 띄었다.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면서 공사 강행을 윽박지르던 몇몇 정책 입안자들과 학자들의 번들거리는 얼굴이 떠올랐다. 토목의 이런 쇳빛 바지런함과 장밋빛 일자리 전망이 어떤 인과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지, 다시금 궁금해졌다.

상주보 공사현장. 전망대에서 본 상주보 공사현장
 상주보 공사현장. 전망대에서 본 상주보 공사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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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교에서 본 낙동강. 강 표면이 얼어서 마치 은쟁반 같다.
 경천교에서 본 낙동강. 강 표면이 얼어서 마치 은쟁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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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교 위. 곡선의 강을 직선으로 재단해 놓았다.
 경천교 위. 곡선의 강을 직선으로 재단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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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나게 아름다운 경천대, 그러나 빼앗기고 파괴될 곳

산을 타고 오는 바람이 시커먼 전경대처럼 앞을 막아섰다. 바람을 맞보고 걷고 걸어서 청룡사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보니 공사현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산길을 오르느라 가빠진 숨이 진정되기도 전에 지율 스님이 다시 마이크를 움켜잡았다.

"홍수는 둑이 있는 곳에서 둑이 무너지면서 꼭 생긴다. 공사장의 위치와 강의 흐름을 봐라. 이곳 상주보 주변도 홍수에 위험에 놓이게 된다. 그동안 비가 내리면 상주보 바로 위의 오리섬은 물론 강변에 있는 도남서원 바로 밑까지 잠겼다. 여름에 장마가 질 땐 겨울의 200배까지 물이 불기도 한다."

스님의 말은 죽비(竹篦)처럼 정수리를 쳤다. 정신을 번쩍 깨우는 말이었다. 파스를 붙인 듯이 가슴은 순간 서늘하게 차가워졌다가 이내 뜨거워졌다. 꿈틀대는 정의감이 내면에서 일으키는 일종의 마찰열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시 관악구에서 온 이지현씨는 "4대강 사업을 취재한 기사를 접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해 순례에 참가하게 됐다"며 "강을 둘러보고 나니, 이게 다 파괴될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고 말하며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상주보 공사현장에서 조금 더 상류로 올라가면 낙동강의 비경(祕境)인 경천대와 드라마 <상도>, <다모> 등의 촬영지가 있다. 이곳에 정부는 콘도와 펜션을 짓고, 골프장과 승마장 그리고 말이 다닐 길을 만들려고 한다. "주민들은 대대로 농사를 짓던 땅을 떠나야하고 과연 누가 이곳에서 말을 타고 골프를 칠 것인가?"라는 스님의 탄식에 순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벌의 골재 채취 현장
 사벌의 골재 채취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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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 공사 현장. 강 전체를 덜어냈다. 수중 생물까지.
 지천 공사 현장. 강 전체를 덜어냈다. 수중 생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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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교에서 본 낙동강의 모습.
 삼강교에서 본 낙동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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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재 채취장과 주목받지 못한 지천의 문제

"4대강 전체 준설량이 4차선 경부고속도로에 20미터 높이로 쌓은 것과 같은 양이다. 그 가운데 5분의 4(4.4억㎥)가 낙동강에서 준설된다"는 박종관(땅과 습지를 사랑하는 사람들) 씨의 설명과 함께 순례단은 골재채취장인 사벌을 둘러봤다.

박종관씨는 이어서 "여기 물은 1급수에 가까울 정도로 맑다. 왜냐하면 막힘없이 그대로 흐르는데다 모래가 정수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며 "보를 만들어 강의 흐름을 막고 모래를 퍼낸다면 필히 강의 수질은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순례단은 다음으로 공사가 한창인 한 지천을 들렀다. 그곳에서 지율 스님은 4대강의 또 다른 문제인 지천의 문제를 말하기 시작했다.

"지천은 실핏줄처럼 길고, 200개가 넘는다. 이 지천을 다 합치면 본류보도 더 길다"면서 "펌프로 지천의 물을 본류로 끌어 올리려 한다. 이 때문에 지천에 연결된 작은 도랑들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지천과 도랑을 따라 생명도 죽고, 농토를 잃은 주민들도 터전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고 지천의 문제를 조곤조곤 짚었다. 지천의 문제는 정부의 손익계산서에 애초부터 빠져있다는 말이었다.

회룡포.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린다. 소백산에서 내려온 내성천이 만든 작품.
 회룡포.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린다. 소백산에서 내려온 내성천이 만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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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에서 얼음을 지치는 사람들
 내성천에서 얼음을 지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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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으로 나 있는 야생동물의 발자국
 내성천으로 나 있는 야생동물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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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내성천 강변의 갈대.
 해지는 내성천 강변의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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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이 편애하는 내성천

낙동강의 발원지이자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삼강을 지나 물돌이 마을인 회룡포 에 도착했다. 회룡포는 소백산에서 내려온 내성천이 만든 '육지 속의 섬'이다. 마치 거대한 물음표(?)와 같은 모양이다. 왜? 이곳을 흩트리려하는지 되묻는 듯했다.

회룡포 마을의 정취를 뒤로 하고 순례단의 발걸음은 내성천의 상류로 향했다. 붉게 타는 저녁노을을 등에 업고서 순례 대열은 귀향하는 연어 떼처럼 싱싱하게 팔딱거렸다. 길은 순했다. 지르지 않고 능선을 타고 돌아서 나아갔다.

지율 스님의 편애를 받고 있는 내성천은 물이 맑고 풍경이 깨끗했다. 해가 완만한 둔각으로 기울자, 강물에 붉은 빛이 자글자글 들끓었다. 마치 얼어붙은 햇빛이 잘게 깨져 강물 위에 유리가루처럼 뿌려진 것 같았다. 살얼음이 일어선 모래톱 가장자리를 향해, 목마름에 이끌린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품어서 먹이는 어미의 젖가슴처럼 기름지고 풍만한 곡선의 내성천이 뭇 생명들을 거두고 있었다. 젖몸살을 앓는 듯 내성천의 겨울 수량은 다소 줄어 있었다.

"도시도 대부분 분지인데, 그 분지가 바로 강이 만든 땅이다. 우리는 모두 강이 실어다놓은 흙에서 터전을 잡고 산다. 근데 지금의 공사는 생활 터전과 강과 숲 그리고 논밭까지 포함해 생태계에서 중요한 건 다 파헤친다"는 스님의 일갈이 쓰라리게 검붉은 하늘로 낮게 울렸다.

안동 하회마을.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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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무수하게 자란 갈대숲을 헤치고 순례단이 병산서원으로 가고 있다.
 강변에 무수하게 자란 갈대숲을 헤치고 순례단이 병산서원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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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습지를 향하던 길. 강변에서 아이들이 얼음을 깨면서 놀고 있다.
 병산습지를 향하던 길. 강변에서 아이들이 얼음을 깨면서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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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지켜야할 것들...

둘째 날, 호박죽으로 시장기를 가라앉히고, 해뜨기 전 하회마을에 도착했다. 먼 산 넘어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뻗쳐오고 있었다. 강은 입김을 뿜어내듯 물안개를 피워냈다. 물안개는 햇솜처럼 하회마을을 포근히 품었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는 마치 물안개가 발아래 구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강을 타고 온 바람이 강변의 소나무 잎을 가늘게 흔들어 초록빛을 털어냈다. 하회마을의 해 뜨는 아침 풍경은 박하향처럼 새뜻했다.

과연 하회마을은 엘리자베스 영국여왕과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다녀갈 만했다. 하지만 하회마을 역시 4대강 사업 때문에 벌어질 훼손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순례단이 천연의 모습을 간직한 병산습지와 마애습지를 거쳐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마애 선사유적 전시관'이었다. 2007년 안동시가 소나무 숲 공원을 조성하다가 우연히 3~4만 년 전의 구석기 유물을 발견했다. 이를 '마애 선사유적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전시관은 강에 기대어 살았던 인간의 역사를 선사시대까지 되돌아보게 했다. 사람들은 수만 년 동안 낙동강변에서 살았다. 강은 돌을 깨 도구로 사용하던 그 미욱한 인간을 품었다. 인간이라는 동물뿐만 아니라 네발 동물, 날갯짓을 하는 동물, 땅을 기어 다니는 동물, 그리고 무수한 식물들까지 받아주었다. 그것이 강이다.

병산습지.지율 스임이 습지의 중요성을 서명하고 있다.
 병산습지.지율 스임이 습지의 중요성을 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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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습지. 사람의 손때가 타지 않은 천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애습지. 사람의 손때가 타지 않은 천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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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You Choose Your President?

스님의 말로 순례의 마침표를 찍었다. "공사가 거의 안 보이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강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애끓는 스님의 목소리 끝이 여리게 흔들렸다.

사실 그동안 4대강 사업의 논란은 경제적 손익과 정치적 논리, 공학적 수치만이 입에서 입으로 오고갔다. 논란의 진짜 주인인 강은 쏙 빼고 말이다. 그러다가 요즘엔 그 관심마저 시들해졌다. 그 사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서 공사는 재바르게 진행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는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는 순간에 말이다.

순례를 함께한 일본인 아유코양의 말이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Why You Choose Your President?" 이 말의 방점은 '대통령'이 아니라 'You'에 있다고 생각된다. 외국인도 부러워하는 강을 가졌지만, 우리는 그 강을 잊고 살았다. 대통령 탓이 아니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흐르는 강에 어깃장을 놓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 여겨진다.

지율 스님 역시 "우리를 되돌아 봐야 한다"면서 "정부의 일을 막기보다는 정부의 방향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가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눠야 한다"고 부탁을 했다. 책임은 우리가 나눠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산천의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스님의 진심어린 당부가 통했을까? 순례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이 감당할 책임의 무게를 느끼는 듯했다. 서울에서 온 고1 학생은 "공부만 하다 보니 몰랐다"며 "사람들 모여서 세상은 변한다. 후대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또 다른 분은 "서울로 돌아가면 1인 시위를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1만 명을 낙동강으로 데려와 보여주겠다.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고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부산 금정구에서 온 아이 엄마는 "직접 와보니 너무 아름답고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 손을 잡고 올 수 있게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며 "1인 시위나 여러 활동을 통해 알려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국책 사업의 무지막지한 추진력 앞에서 흔히 사람들은, 아둔한 숙명주의자나 궁상맞은 패배주의자, 아니면 약삭빠른 보신주의자가 된다. 그것도 아니면 자화자찬이 습관화된 낙관주의자나 자학이 일상화된 비관주의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일단 와서 눈으로 강과 산을 보라! 분명 아둔하지 않고 궁상맞지 않고, 약삭빠르지도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1000명이 보면 1000개의 눈이 되고, 이것이 바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지율 스님의 말을 곱씹으며, 기분 좋은 피곤과 설레는 책임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참깨처럼 쏟아지는 고소한 햇살을 맞으면서.

덧붙이는 글 | 지율 스님의 ‘1박 2일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상주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참가신청은 인터넷(http://cafe.daum.net/chorok9)이나 전화( 이국진 010-8969-5051)로 가능하다. 참가비는 3만원.



태그:#낙동강, #상주보, #4대강 사업, #지율 스님, #낙동강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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