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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의선은 경제입니다
ⓒ 국정홍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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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기적 소리와 함께 기차 한 대가 터널을 빠져 나온다. 기차는 철교를 건너고 벌판을 달리다가 해안을 따라 달리기도 하고 다시 다리를 건너며 쉬지 않고 달린다. 눈 덮인 벌판을 KTX적인 속도가 아니라 녹슬어 스러졌던 철마가 다시 일어나 그간을 반추하며 달리는 듯하여 더 정감이 간다. 그러다가 마지막쯤 가서 잇따라 1~2초의 간격을 두고 두 문장이 뜬다.

"경의선은 기찻길이 아닙니다."  
"경의선은 경제입니다."

'한반도 중심국가 - 경의선' TV광고 내용

경의선의 종착역은 신의주가 아닙니다.
압록강을 건너 모스크바를 지나
파리와 런던까지 이어집니다.

경의선은 이산가족만을
실어 나르지 않습니다.
대륙과 대양을 오가는
세계 물자들까지 실어 나릅니다.

경의선은 남북을 잇는 길만이 아닙니다.
한반도가 다시 대륙으로 이어지고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경의선은 기찻길이 아닙니다.
경의선은 경제입니다.


지난 2000년 11월 25일부터 이듬해 2월 9일까지 지상파를 탄 국정홍보처 광고 '한반도 중심국가 - 경의선 편'이다.

경의선은 남북을 잇는 철로인 만큼 '통일의 길'이라거나 '화합의 길'이라고 해도 될 법한데 왜 난데없이 "경제" 운운한 것일까. 광고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지 싶다.

그해 6월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뜨겁게 포옹하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반목과 대결의 분단시대를 넘어 화해와 협력의 평화공존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해방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마련된 것이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외신들도 10년 전 독일통일의 감격이 한반도에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 섞인 반응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분단 반세기'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당연히 북조선과의 접근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정상회담이 있기 꼭 1년 전에는 서해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로 남과 북의 장정들이 최소 70명에서 최대 2백 명이 죽거나 다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서울광장과 탑골공원 등에서는 연일 보수우파들의 반북집회가 열렸다.

그런 시점에서 남북 간의 화합과 평화적 접근의 서막을 알리는 경의선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넣기에는, 광고주인 정부나 광고제작사나 아마도 무리라고 느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택한 결론은 IMF구제금융이라는 위기를 겪은 한국인이라면 좌우나 보혁 할 것 없이 누구나 동의할 만한 '경의선을 통한 경제성장 가능성'을 강조하는 일이었다. 여기에 삼 면은 바다요 나머지 한 면은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섬 아닌 섬에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답답한 가슴을 한 번에 시원하게 뚫어줄 수 있는 '유라시아대륙 횡단철도 연결'이라는 아이디어까지 덧붙여졌다.

2007년 5월 17일 오전 강원도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연결행사에 북조선 '내연602'호가 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2007년 5월 17일 오전 강원도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연결행사에 북조선 '내연602'호가 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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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듯 정부는 이런 광고를 내보내며 경의선이 연결되면 자칫 북이 남으로 진공하는 통로 구실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거나 연결해봤자 별 실익도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잠재우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엔 2003년 6월의 개성공단 착공과 3개월 뒤 시작된 금강산 육로관광까지 합쳐 '남북교류사업 3종 세트'가 역사적 첫걸음을 떼기에 이른다. 잘 만든 광고 한 편이 우려와 불안함을 느끼던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데 일조한 것이다.

광고는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한몫했다. KTF의 이미지 광고인 'KTF적인 생각' 시리즈에서 소개된 카피들, 이를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나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 등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나이와 옷차림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습속이나 고질적인 남녀차별 세태를 바로 잡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특히 "뜻이 있다면 일흔이 넘어 대학생이 될 수 있다"라고 광고한 KTF가 정작 그해 자신들의 신입사원 모집 응시자격으로 "1976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를 들고 나오면서 벌어진 해프닝이 잊혀지지 않는다. 광고를 통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당시 나이 28세 이상이면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신입사원 채용에 응시할 수 없다는 웃기 힘든 메시지를 주고 만 것이다. 직원채용에 있어 엄연한 차별행위를 하고 있던 KTF는 결국 자신들이 한 광고가 족쇄가 되어 연령제한을 없앨 수밖에 없었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 KTF의 'KTF적인 생각' 광고 시리즈 중.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 KTF의 'KTF적인 생각' 광고 시리즈 중.
ⓒ 알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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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 - KTF의 'KTF적인 생각' 광고 시리즈 중.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 - KTF의 'KTF적인 생각' 광고 시리즈 중.
ⓒ 알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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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인쇄물 광고 내용

조지 부시 전 美대통령은 일흔 두 살의 나이에 낙하산을 탔습니다.
백범선생이 동학운동을 시작한 것은 열여덟이었고,
피카소의 마지막 사조가 시작된 것은 그의 나이 여든 한 살 때였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뜻이 있다면 일흔이 넘어 대학생이 될 수도 있고,
실력이 있다면 스무 살 나이에 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적당한 나이란 없습니다.
KTF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시대의 맥락과 소통 해온 광고

자본주의 사회의 첨단을 달리며 소비자의 욕구를 충동질하는 데에만 진력할 것 같은 광고가 그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니….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런 광고를 만든 박웅현이라는 이의 대표적인 카피나 캠페인을 되새김질하면 입에 시원한 박하사탕을 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너나 할 것 없이 양적팽창에만 몰두하던 시기에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며 질적 성숙을 다짐하던 기업의 광고나, 공주 옷을 입은 여인이 나와 유럽의 고성처럼 꾸며진 아파트 거실을 거닐며 부동산 거품을 만들기에 급급한 요즈음 '진심이 짓는다'면서 집은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가는 공간임을 설파한 광고. 그리고 '생각이 에너지다'라면서 기름을 뽑아내는 곳만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샘솟는 모든 곳이 유전이라고 말하던 광고와 여성 육사생도를 출연시켜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는 메시지를 준 광고까지…. 박웅현이라는 이름 석 자는 몰라도 그가 만든 광고를 한 편 이상 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박웅현의 잘 만들어진 광고들은 시대의 맥락과 소통하며 함께 해왔다.

시청자나 독자를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가슴 먹먹하게 하며 때로는 이마를 탁 치게 하는 깨달음을 주는 박웅현표 광고. 그 핵심은 인문학적 사변과 창의성의의 적절한 조화에 있다.

"연애편지를 쓴다고 해봅시다. 편지 하나에는 '보고 싶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맘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구 손을 잡아주겠습니까? 광고를 만드는 창의력은 이런 겁니다. '보고 싶다는 말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에서 출발해서, 정지용의 이 시 같은 말을 찾아내는 겁니다."

'한때 지진아'와 '한때 편집자'가 마련한 성찬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표지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표지
ⓒ 알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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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라하는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에 입사했지만 3년차가 될 때까지 "지진아"에 "왕따" 취급까지 받았다는 박웅현. 그는 업무 하나 주어지지 않던 지진아 시절, 일거리 없는 자신의 책상에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곰브리치의 <서양예술사>를 비롯한 인문서적을 탐독하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을 올곧이 할애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영화와 경험 등 창의성의 원천은 주변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런 수련 과정의 결과일까? 그는 시리얼을 몇 숟가락 퍼먹고 근육질 람보가 되는 식의 '희까닥한' 아이디어보다는 아이디어를 곰삭혀 '잘 말해진 진실'을 찾아 보여주는 데에 소질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실패를 거듭하던 KTF 기업광고를 떠맡아 예의 'KTF적인 생각' 시리즈를 히트시키며 지진아 딱지를 뗌과 동시에 실질적인 광고계 데뷔에 성공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년…. 박웅현은 이제 굴지의 광고기획사에서 '창의성 감독'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라는 직책을 맡아 특유의 창의성을 시공간 속에서 짚어낸 맥락에 버무려, 사람들의 감성을 자유자재로 파고들며 '인문학적인 광고'라는 성찬을 올리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성공을 뒷받침해준 창의성과 소통에 대한 비밀을 찾아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동 저자인 박웅현(왼쪽)과 강창래.
 공동 저자인 박웅현(왼쪽)과 강창래.
ⓒ 알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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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이 책은 박웅현 혼자만의 책이 아니다. 박웅현과의 대화를 맛깔나게 다듬고 정갈하게 차려낸 출판사 주간 출신의 강창래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박웅현이 말하는 창의성이나 소통 따위는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일이다. 공저자 강창래에게 감수성 짙은 소통의 기술과 인문학적 창의성이 없었다면 박웅현의 광고처럼 크리에이티브한 이번 인터뷰집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권기봉 기자는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의 저자이며, 블로그 주소는 www.finlandian.com 이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알마(2009)


태그:#인문학으로광고하다, #박웅현, #강창래, #알마, #인터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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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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