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영희/샘터
▲ 책표지 장영희/샘터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샘터'에 오래도록 연재 글을 실어왔고 연재로 쓴 글을 한데 묶어 맨 처음 <내 생애 단 한번>(2000년)이라는 수필집을 펴냈으며, 2004년에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출간했던 작가 장영희, 이제 그이는 이 세상에 없다. 유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을 읽었다. 이 책 또한 <내 생애 단 한번> 출간 이후 월간 <샘터>에 연재되었던 글이라 한다.

처음으로 접하는 작가의 책인데,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책을 펴 작가의 약력을 알기 위해 책갈피 안쪽을 보니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칼럼비아대학에서 번역학을 공부했다.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지 번역가, 칼럼니스트, 중. 고교 영어교과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쭉 적혀 있다. 이어서 저자가 펴낸 책과 번역 책들이 소개되는가 싶더니 말미엔 '암 투병을 하면서도 의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을 독자에게 전하던 그는 2009년 5월 9일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돌아가셨구나'...갑자기 전혀 일면식이 없는 작가의 부재에 나는 가슴이 찡해왔다. 오래 전에 이 세상을 하직한 사람이 아니라 불과 몇 달 전에 지상에서의 마지막 삶을 다하고 돌아가신 분의 책을 읽는다는 게 왠지 마음이 엄숙해지는 것 같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이 책을 펴내기 위해 글을 쓰고 다듬고 했을 저자의 생전 모습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마디 한 마디의 말과 글이 유언처럼 느껴지고 거저 듣지 않게 만든다. 책 속 글들은 감동이었다. 진실하게 성실하고 치열하게 자기 삶을 살아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삶의 진실과 사랑, 따뜻한 인간애가 담긴 진솔한 글이었고 향기가 전해온다. 그가 말하는 희망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가슴 찡한 감동에 눈시울을 붉히고 말 때가 종종 있어 가만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도 내 작은 글이 그 누구에게라도 용기를 주고 힘이 되어야겠다. 나의 한마디의 말이 누군가에게 진실 되고 힘이 되는 말이 되어야겠다. 선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착해지지 않을까. 아니 조금은 더 순해지고 착해지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 장영희는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에 걸렸고 어머니는 운명처럼 그녀를 업고 10년 세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종로의 어느 침술원에 다녔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책만 읽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 어머니는 딸을 방과 후면 골목길에 방석을 깔고 딸을 앉혀놓았고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곤 했단다.

어느 날 좀 일찍 대문밖에 나와 앉았는데 엿장수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다시 그녀에게로 와서 깨엿 두개를 손에 쥐어주었다고 한다. 그때 두 눈이 마주쳤고, 엿장수 아저씨는 '괜찮다'고 말했다. 소녀는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 돈 없이 깨엿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목발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말인지 몰랐지만, 소녀는 그 한마디에 '그날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라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괜찮아'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금도 '괜찮아', 이 말을 들으면 가슴이 찡해진다고 한다.

그의 글 곳곳에서 '괜찮아,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고 좋은 친구, 선의와 사랑이 있다고...'희망을 전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괜찮아' 하며 일어섰나보다. 힘들 때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 그 골목에서 들었던 말, 한마디를 떠올리며 일어섰나 보다.

"괜찮아...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로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그래서 세상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느낄 때, 죽은 듯이 노력해도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작은 속삭임을 듣는다. 오래전 내 따뜻한 추억 속 골목길 안에서 들은 말-'괜찮아! 조금만 참아, 이제 다 괜찮아 질 거야.'"

6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날, 다 된 논문을 도둑맞고 기절했고 두문불출하고 죽은 듯 칩거하다가 여러 날 만에 다시 일어나 거울을 볼 때도 자신을 향해 말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이 있잖아...논문 따위쯤이야...' 하며 자신을 다시 일으켰고 정확히 1년 뒤에 논문을 완성하고 귀국했던 것을 이야기한다. 

15년이 훨씬 지난 후에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때를 돌아보며 그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 실패와 좌절을 안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둑에게 헌정한 자신의 논문을 보여주면서 "인생이 짧다지만,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1년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 한다.

힘있게 위로해 준다. 불의와 악의와 이율배반적인 삶의 갈피, 그 속살을 헤집고 따뜻한 희망의 연두빛 새싹 같은 용기와 희망을 건져 올려 보여주고 따뜻함을 이야기한다. 몸으로 살아내야 깨달을 수 있는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감동의 깊이와 울림이 크고 깊고 멀리 가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교수'라는 직업이 갖는 '체면'에서 벗어나 '숨김없이' 저자의 마음을 고스란히 내놓고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내놓은 글에서 독자들이 더 깊이 감동하는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조금 더 순해진 것 같고 내 주위에 내가 모르게 고통 신음하는 사람이 없는지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며 살지 못했다는 자각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야겠다는 '순정'한 마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일평생 목발에 의지해 불편한 몸으로 살아왔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저자는 자신의 삶이 '천형'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비참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신체적 불편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생산적 발전의 '장애'로 여겨 장애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무언가를 못해서가 아니라 못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해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체장애와 암 투병, 이 세상에서 떠났지만 그이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희망을 이야기했던 희망의 전도자, 많은 사람의 희망과 용기의 증거가 되었던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는 따뜻한 목소리 듣고 있는 듯하다. 지금도 '괜찮아'라고, 많은 독자들의 지친 마음, 지친 삶에 너그러움과 용서, 힘과 희망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패기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인간의 '선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간 자체에 대한 연민, 자신뿐 아니라 남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선함이 없다면 그러면 세상은 금방이라도 싸움터가 되고 무너질지 모른다."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게 되어 장애인이 되었고 2001년 유방암으로 시작하여 척추암, 간암으로 전이되는 힘든 암 투병으로 이 세상을 떠났지만 떠나기 전까지(2009.5.9) 한결같은 미소와 따뜻한 배려와 사랑으로 희망을 전하려고 애썼고 희망부재의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려 애썼다고 한다.

이 책은 병상에서 마지막 교정을 보았고 이 책이 인쇄가 끝났던 5월 8일에는 의식불명 상태였다고 한다. 장영희 교수의 유작이 되어버린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 덮으며 나는 착해져야지,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지...생각한다.

나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괜찮아'라는 말 듣고 싶다. 용서와 위로와 희망이 되는 말, 격려가 되고 마음을 일으켜주는 그런 말...나도 듣고 싶다. 나도 전하고 싶다.

영국의 작가 새뮤얼 버틀러는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영희교수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희망의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가 남긴 글이 오래 오래 남아 있어,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마음을 일으켜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접는다.

덧붙이는 글 |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장영희 에세이/샘터)
값: 11,000원
출판: 2009년 5월 15일 초판 발행~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샘터사(2009)


태그:#장영희, #샘터,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