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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에 삼남대로 박물관을 건립하고, 이곳을 우리나라 옛길의 중심지로 부각시켜야 합니다."

삼례는 조선시대의 9대로 중 6로(통영대로)와 7로(삼남대로)가 지나는 곳이며, 1892년에는 삼례집회가 열렸던 곳이고,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제2차 봉기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그만큼 교통의 요지였던 곳이다.

경국대전에 나오는 조선시대 9대로
 경국대전에 나오는 조선시대 9대로
ⓒ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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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택리지>의 저자인 문화사학자 신정일. 그가 이끄는 (사)우리땅 걷기 회원들이 오는 21일과 22일 이틀의 일정으로, 삼례를 중심으로 한 전북 완주의 옛길을 걸으며 삼남대로 박물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예전 한양에서 부산을 연결하던 영남대로가 지나는 경북 문경은 지난 4월에 이미 '옛길박물관'을 개관,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길을 통해 지역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삼남대로'라는 말 속에는 한양과 삼남지방(충청, 전라, 경상)을 연결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어, 이 지역에 박물관이 들어설 경우 지역 인지도 상승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박물관 건립을 주장한 신정일씨는 걷는 모임으로는 전국적으로 가장 활성화되고 공신력을 인정받는 (사)우리땅 걷기 모임을 이끌고 있고, 그가 전북 지역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철도청의 복철 전철화사업으로 현재의 삼례역이 인근 지역으로 이전계획을 잡고 있어 관계기관의 의지만 있다면 부지확보가 쉽다는 점 등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지만 삼례에 옛길 박물관이 들어서야 하는 가장 큰 명분은 역시 이 지역이 그만한 역사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옛날 백제시대 거찰의 터로, 고금을 통해 삼례 합장하는 곳이라 '삼례'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엽까지 역마의 주둔지로 중시됐고, 조선시대에 삼례도찰방이 있었다.

1793년(정조17)에 편찬된 '호남읍지'에도 삼례역은 호남을 왕래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실려 있는데, 호남지방 최대 규모라 적혀있다. 문관으로 종 6품인 찰방 1명과 예하에 역리 596명, 남자 노비 191명, 여자 노비 51명, 일수 31명, 말 15필을 뒀다. 갑오경장 시기까지 존속된 삼례역은 전주와 임실, 임피, 익산, 전주, 정읍, 부안, 김제에 걸쳐 모두 12개의 역을 관할했다.

삼례는 조선시대 9대로 중 전북의 전주와 남원, 경남의 함양,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6로인 '통영대로'와 7로인 '삼남대로'가 나뉘는 곳이었다. 따라서 전남의 순천, 여수, 고흥, 광양 방면은 물론 경상도 남해, 함양, 진주, 고성, 산청, 통영 방면도 모두 이곳 삼례를 거쳐서 갔다.

조선시대에는 삼례의 원화전 마을과 그 건너편인 비비정 아래까지 서해의 바닷물이 들어와 소금 실은 배들이 출입했다고 하는데, 익산 근처의 목천포 다리 부근에 제수문이 만들어지면서 바닷물의 유입이 끊어져 뱃길 또한 사라졌다. 

우리땅 걷기 회원들은 이날 삼남대로 길과 만경강, 아름다운 절집으로 널리 알려진 화암사를 걷고, 마지막 시간에는 오도치(혹은 오도재)를 넘을 예정이다. 8km쯤 되는 거리로 3시간이면 넘을 수 있는 이 고개는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오도치마을에서 고산면 남봉리 독촉골로 넘어가는 고개다. 가을빛이 아직 남아 지나는 길손을 맞을 오도치는 다섯 성인이 깨달음을 얻은 고개라고 한다.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터넷 홈페이지(http://cafe.daum.net/sankang)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남대로, #신정일, #우리땅 걷기, #9대로, #옛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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