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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일이었다. 원래 역사를 가르치던 나는 이때 국사 수업과 더불어 4시간의 지리 수업을 배정받았다. 지리 전공 교사는 이미 수업 시수가 너무 많았고, 달랑 4시간짜리 수업에 지리 교사 한 명을 더 데리고 올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과목인 역사과에서 '상치'로서 이 수업을 하게 됐다.

역사과에서 수업 시수를 서로 공정하게 나누면서 당시 비담임이었던 내가 지리를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나에겐 1년간의 악몽이 시작됐다.

내가 맡았던 수업은 고등학교 1학년 한국지리였다. 학생들에게는 내가 원래 지리 전공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당시 수업은 지리 선생님 한 분이 만든 학습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루하루 수업이 진행되면서 나는 점점 더 괴로워졌다.

대학 다닐 때 내가 수강했던 지리 관련 강의는 단 3학점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리에 관한 지식은 사실상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 전부였다. 내 지리 수업 수준은 고등학교 때 배운 수준 이상이 되지 못했다. 지리 교육의 큰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나는 어떤 자료를 보여주어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전혀 감도 잡지 못했다. 그때 지리 수업은 그저 교과서와 학습지만 이용한 맨손 수업으로 채워졌다.

나날이 나의 수업 만족도는 떨어져갔고, 학생들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어쩌다 학생들이 떠들어도 나는 제지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못 가르쳤으면 학생들이 떠들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학기가 될 무렵에는 일요일만 되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월요일에 상치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치교사 시절,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

몇 년 후 그때 가르쳤던 학생 하나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학생에게 나는 원래 지리 전공이 아니었다고, 그 때 수업 너무 못하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학생은 "그런 줄 몰랐었다"고 "수업이 나쁘지 않았다"고 대답해 주었다. 내가 상처받을까봐 좋게 말해준 것인지 정말 느끼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그때의 상치수업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럽다.

중학교에서는 사회라는 이름으로 한 교사가 자신의 전공에 상관없이 일반사회와 지리, 세계사를 다 가르친다. 내가 중학교에서 근무하기 가장 싫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 전공인 역사라면 얼마든지 자신 있게 수업할 수 있지만, 지리와 일반사회 수업을 한다는 생각만 해도 학생들에게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도시에 있는 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나에게 '상치교사'에 대한 추억은 딱 한 번뿐이다. 그러나 시골 학교는 다르다고 한다.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지방에 있는 학교와 자매결연을 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서로의 학교를 방문하고 홈스테이도 했는데, 그 학교에 근무하던 선생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 수가 적고 학급 수도 적기 때문에 국어 선생님 한 분이 1학년~3학년 국어를 모두 가르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한문과 국사, 윤리 등의 과목도 가르친다고 했다. 음악 선생님이 미술을 가르치시는 것도 기본이고, 영어나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당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시골 학교에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이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학생들도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치교사가 일석이조? 오히려 전문성 떨어질 수도

며칠 전 신문에서 '앞으로는 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교사가 나올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교사들이 교육대학원에서 다른 교과를 이수하거나,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부전공 연수를 이수하면 그 교과에 대한 교사 자격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시골 소규모 학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 제도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또 한 명의 교사가 국어도 가르치고 영어도 가르친다면, 한 사람 분의 월급만 지급하고도 두 과목의 교사를 채용한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학교측은 매우 효율적이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과연 이것이 학생들에게도 좋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지금 30대, 혹은 40대인 분은 주변 조카들에게 부탁해서 국사 교과서를 구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야 현장에서 항상 국사를 가르쳤기에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동료 국어 교사가 우연히 국사 책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와~ 국사가 많이 달라졌다. 처음 보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가 참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이것은 정권이 바뀌어서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아니다. 역사학계의 새로운 연구 성과가 교과서에 반영되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수한 역사 교사가 되고 싶다면 최근의 연구 성과를 담은 책을 많이 사고 많이 읽어 주어야 한다.

언젠가 동료 국어 교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고등학교 때 문학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편했을 거야. 고전문학 작품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다 읽으면 되고, 현대문학은 6·25 이전 작품까지만 보면 되었거든. 그것도 월북 작가나 카프(KAPF) 계열 작가 작품은 다 빼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1990년대 소설도 수능 시험에 나와. 어떤 때는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작품이 수능에 나오기도 하고. 읽어야 할 소설이 너무 많아서 미치겠어."

'여러 우물' 완벽하게 파는 사람 몇이나 될까

사람들은 교사가 '전문직'이라고 말한다. 교사인 나도 이 말이 맞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하겠지만, 전문가라고 부르기에 나는 너무나 부족한 것 같아 그저 우물쭈물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전문가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개 고등학교 역사 교사 따위이지만, 이 역사라는 학문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중심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영화를 볼 때도 수업에 쓸 만한 내용이 나오면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자동으로 저장이 된다. 만화책을 보다가도 수업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내용이 나오면 당장 스캔을 떠 둔다. 일종의 직업병처럼, 참 신기하게도 역사와 관련된 내용은 기억도 잘 되고, 수업 시간에 생각도 잘 난다.

이 글을 쓰면서 내 방에 있는 책장을 둘러봤다. 대략 400권 정도 있는 것 같은데, 이 중 300권 정도가 역사 관련 책이다. 소설책이나 다른 책들은 별로 없다.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니, 소설책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안 사는데 역사책은 자료가 되겠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구매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행을 가도 유적지가 아닌 곳은 잘 가지 않는다. 아무리 경치가 아름답다고 유혹을 해도 가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돌덩이 몇 개만 남아 있는 절터나 진짜 아무 것도 없는 구석기 시대 유적지는 주변 사람들이 '정말 볼 거 없다'고 말려도 기어코 가서 본다.

두마리 토끼 잡으려다 다 놓치고 말 것

그런데, 이런 내가 국사와 영어를 동시에 가르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비를 줄어야 하는 이때, 이런 발상이야 말로 공교육의 질을 확실히 저하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다른 교사들은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국사와 영어 두 과목을 모두 완벽히 가르칠 만큼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우물을 죽어라고 파서 하나의 우물물을 만들어낼 자신은 있지만, 여러 개의 우물을 파서 여러 개의 완벽한 우물물을 만들어 낼 자신은 없다. 그런데, 여러 우물을 완벽하게 팔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가 세상에 과연 많을까?

물론 교과부가 이번에 내놓은 '교사 복수전공제'는 내가 경험한 상치교사와는 달리, 일정기간 연수를 받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이 적게는 4년 정도 해당 과목에 대해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공부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기간 연수는 해당 과목에 대한 수박 겉핥기일 뿐이다. 이런 연수가 교사들의 전문성 제고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 현장에서 일하는 교사로서 의문이다.

교사가 전공 교과의 전문가가 되려면 자신의 전공에 전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이는 대학을 졸업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계속 그 과목을 연구하고 해당 과목에 변화가 생기면, 그것도 잘 잡아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과목을 동시에 가르치다 보면, 이런 변화에 둔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수업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과부가 진정 '전문성' 있는 교사들을 많이 배출하고자 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태그:#상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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