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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로 갈까, 강원도로 갈까, 경주로 갈까"

휴가 한 달 전부터 아내와 저는 몇 년 만에 가는 휴가계획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아이도 어리고, 일도 바빠서 휴가를 가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제대로(?) 휴가를 보내보자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잠시뿐이었습니다. 프랑스로 시집간 처제가 가족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한국의 처가에 휴가를 오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몇 년 만에 만나게 되는 하나뿐인 동생을 보기 위해 처가에서 휴가를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아내와 6살 난 딸, 그리고 프랑스에서 오는 손녀를 보고 싶어 하시는 아내의 할머니를 모시고 대구에서 김해 장유의 처가로 향했습니다.

프랑스로 시집간 처제, 한국에 휴가오다

 불고기 전 떡 등 프랑스인 둘째 사위를 위해 준비한 장모님의 정성.
 불고기 전 떡 등 프랑스인 둘째 사위를 위해 준비한 장모님의 정성.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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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제는 5년 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재학 때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가서 그곳에서 학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카이스트 격인 UTBM 대학교에서 만난 프랑스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딸만 둘인 장모님은 둘째를 외국인에게 시집보내는 게 영 마땅치 않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프랑스까지 가서 결혼식을 올려 주었습니다.

장모님은 한꺼번에 맏사위와 둘째 프랑스 사위를 맞이하는 준비를 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특히 프랑스 사돈 내외까지 방문한다고 하니 장인어른은 예의를 갖추느라 집안 정리를 하셨고, 장모님은 음식을 하시느라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참 난감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제가 처제 시부모님을 만나기도 드물 뿐만 아니라, 함께 식사하는 일도 참 어려운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제와 프랑스 동서보다 처가에 몇 시간 먼저 도착한 나는 반바지를 입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할머니는 "그래도 사돈이 오시는데,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일리가 있어 나는 좀 덥고 불편하기는 했지만 정장 바지로 다시 갈아입었습니다.

방바닥 식사가 어려워 식탁두개를 붙였고, 식사후 아이들의 재롱이 휴가를 즐겁게 했습니다.
▲ 프랑스 사돈과 함께 방바닥 식사가 어려워 식탁두개를 붙였고, 식사후 아이들의 재롱이 휴가를 즐겁게 했습니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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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고, 가장 한국적인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며 식단표를 짜고, 음식을 장만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우리의 휴가라기보다는 처제와 그 프랑스 가족을 위한 휴가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프랑스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맏사위인 나는 좀 섭섭한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동서 '레몬 서방'과 만나다

이윽고,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고 프랑스 동서와 처제와 그 가족들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는 예의를 갖춘다고 긴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프랑스 팀들은 반바지에 맨발로 사돈댁을 찾은 것입니다. 동서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따질 수도 없고 '사돈댁 예절'은 우리만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웃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처제와 프랑스 동서(에띠엥 레몬·30)와 그의 아들(요엘 레몬·16개월) 그리고 처제의 시부모님은 18시간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11살 아래 동서인 '에띠엥 레몬'과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서먹서먹해 이름조차 불러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김 서방~ 이 서방~" 이렇게 편하게 부를 텐데 "레몬 서방~"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참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처제에게 물었더니 프랑스에는 '서방'이라는 존칭이 없으니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된다고 합니다. 시부모님도 이름을 부른다고 하니 문화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이 참 불편했습니다.

 마냥 즐겁게 노는 아이들 언어에는 국경이 없나 봅니다.
▲ 우리는 이종사촌 마냥 즐겁게 노는 아이들 언어에는 국경이 없나 봅니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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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내내 그 이름 '에띠엥'을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말이라고는 '봉쥬르' 정도밖에 모르는데 이름을 불렀다가 혹시 반응을 보이거나 가까이와도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동서지간은 밤새 술도 마시고 손위 동서가 손아래 동서를 군기(?) 잡기도 하고 화투 놀이를 하거나 윷놀이도 할 법한데, 도무지 정서가 맞지 않아서 눈만 마주칠 뿐입니다. 

그런데 어이 된 일인지 프랑스 동서 '에띠엥'이 '형님'하고 부르며 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빵을 먹다가 화들짝 놀란 나는 처제를 불현듯 쳐다보았습니다. 옆에 있던 처제는 "친하게 지내라고 '형님'의 뜻과 단어를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참 내, 이런 난감할 때가….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이'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예스'하자니 영어라 우습고, '봉쥬르'하자니 말도 안 되고, '응, 레몬 서방'하자니 못 알아들을 테고…. 순간 저는, 마침 식탁에 있는 빵을 가리키며 먹으라는 시늉을 하며 한 마디를 하고 말았는데 그만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에띠엥~, 뚜레주르, 빠리 바게트, 브레드 피트, 잍트!"

갑자기 생각난 우리나라 빵집의 이름들. 모두 동원해서 읊어 보니 의미가 그런 대로 통하는 근사한 프랑스 말이 되었던 것입니다. "뚜레주르(매일매일 만든 신선한) 빠리 바게트(프랑스 빵), 브레트 피트(최고의 빵)"이라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이야기했는데 그것을 대충 알아듣고는 프랑스 동서는 박장대소했습니다.

한국 최고의 휴양지, 다리 밑에서 휴가를 보내다

처가는 4대가 함께 모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처제를 기준으로 처제의 아들 요엘과 제 딸 예은이 그리고 처제의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 처제의 할머니까지 모였으니 나라와 세대는 다르지만 4대가 모인 것입니다. 처제는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양쪽에서 통역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이 대가족을 위한 식사준비를 하는 장모님은 한국 사위인 저와 프랑스 사위인 '에띠엥' 두 사위를 위해 씨암탉을 잡는 등 며칠 동안 단단히 준비를 하셨고, 근사한 저녁식사 후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 등 프랑스풍의 휴가는 밤이 깊어 갔습니다.  

다리 밑에 자리를 깔고 수박을 먹으니 무더위가 싹 달아났습니다.
▲ 다리 밑 휴가 다리 밑에 자리를 깔고 수박을 먹으니 무더위가 싹 달아났습니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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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저는 한국에 와서는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며 최고의 휴양지인 '다리 밑'을 소개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할 만큼 인지도와 명성이 있고, 나무 그늘보다 시원한 다리 그늘이 끝내주고, 발을 담그고 놀기 좋은 한국최고의 휴양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먹는 한국 최고의 과일인 수박과 돗자리, 생수 등 먹을 것을 준비해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다리 밑으로 갔습니다. 다리 밑으로 가면서 프랑스 동서는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를 보고 매우 놀란 표정을 지으며 처제에게 계속 무언가를 질문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파트의 동과 호수를 보고 엄청난 아파트의 규모에 놀랐다는 것입니다.

아파트에 401동 501동이라 적혀 있어, 401, 501번째 아파트인 줄 알았고, 집의 호수가 1201동이어서 1201번째 집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왜, 1동 2동 3동부터 시작하지 않느냐고 물어서 처제가 설명하느라 애먹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프랑스는 땅이 넓어서 아파트는 거의 없는 단독주택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또 한국의 가게 밖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와 가게 밖에 진열되어 있는 제품들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프랑스 같으면 가게 밖의 제품은 모두 돈 안 내고 훔쳐 간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돈을 주고 제품을 가져 나오는 것을 보니 참 정직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가게 앞에는 절대 물건을 진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도난당하기 때문이랍니다.

프랑스 이모부와 한국조카는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 프랑스 이모부와 한국조카 프랑스 이모부와 한국조카는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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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는 동안 20여 분을 걸어 다리 밑 휴양지에 도착했습니다. 다리 밑에 자리를 깔고 앉으니 주위의 시선이 모두 집중 되었습니다. 우리는 양반 다리를 하고 털썩 주저앉았는데 프랑스 팀은 의자 문화에 익숙해져서인지 양반 다리가 되지 않아 쩔쩔매다가 겨우 앉았기 때문입니다.

수박과 먹을 것을 꺼내서 먹고 아이들은 물가에서 물고기를 쫓아 다니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이것이 '한국식 최고의 휴가' 중 하나이며 '작은 행복'이라고 프랑스 동서에게 설명한 후 저도 딸과 함께 개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장모님이 오랫만에 두 딸과 포즈를 취했습니다. 둘째를 가진 막내가 건강하기를 바라며 말입니다.
▲ 두딸과 장모님 장모님이 오랫만에 두 딸과 포즈를 취했습니다. 둘째를 가진 막내가 건강하기를 바라며 말입니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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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서도 조금은 주저하더니 개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한국 조카인 예은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피라미를 쫓으러 다녔습니다. 파란 눈의 프랑스 이모부와 함께 물고기를 잡는 예은이는 한국말을 하고, 한국 조카를 둔 에띠엥은 프랑스말을 했지만 서로 의사가 통하는지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이틀간의 휴가는 후딱 지나가버렸습니다. 짧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고 즐거웠고 유익한 휴가였습니다. 이제 우리 딸 예은이가 조금 더 크면 우리가 프랑스로 갈 차례입니다. 그때는 우리도 반바지를 입고 프랑스 최고의 휴양지를 찾아 갈 것입니다.

프랑스 동서 '에띠엥'에게 프랑스식 최고의 휴양지를 알아보라고 전했습니다. 한국처럼 다리 밑이어도 좋다고 하며 함빡 웃음을 전했습니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처가를 떠나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태그:#휴가, #프랑스 동서, #다리밑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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