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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마. 다쳐!"

한홍구의 한국현대사 이야기 <특강>
▲ 표지 한홍구의 한국현대사 이야기 <특강>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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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식민지 지배에 충성을 바치던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이 집권하는 게 옳은 일일까. 길 가던 사람들 열 사람을 대상으로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집권하는 걸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지사.

그런데 해방 후 우리 현대사는 그렇지 못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친일파 처벌을 위한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고 친일 관료와 경찰의 기반 위에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다. 5.16 구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던 박정희는 일본 관동군 출신이었다. 18년간 집권했던 기간 동안 친일파 청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잘못된 과거 청산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친일의 과거를 숨기고 싶은 권력자들은 현대사가 제대로 연구되거나 교육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 덕에 해방 후 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거의 없었다. 현대사를 연구한다는 건 위험을 감수한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묻지 마, 다쳐!"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제대로 된 사실이 궁금해도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촛불 상황이 요구했던 현대사 강좌

2008년은 촛불의 해였다. 5월부터 촛불이 등장하기 시작해서 6월, 7월까지 뜨겁게 타올랐다. 촛불이 한창 뜨겁게 타오를 때 "이러다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니냐?"며 흥분했던 사람들도 꽤 있었다.

8월부터 촛불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촛불의 열기가 점점 약해지면서 "거봐라!"고 쾌재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잦아드는 촛불을 보며 의기소침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이 무렵 한겨레교육문화센터가 제의를 하고 한홍구 교수가 수용해서 대한민국사 강좌가 시작됐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명제에 입각해서 우리의 현대사를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해보자는 입장에서 2008년에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을 현대사의 관점에서 설명해보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촛불시위 내내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살았던 현대사 전공자 한홍구 교수의 강좌는 2008년 10월부터 12월까지 여덟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주제는 다음과 같다.

저자 소개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으며, (사)평화박물관 건립 추진위원회 상임이사, 야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

<한겨레 21>에 5년간 연재한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를 통해 꿈꾸는 권리조차 박탈당했던 한국 현대사의 금기들을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필치로 통쾌하게 고발했고, 이를 <대한민국사 1~4권>으로 펴냈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통령이 군림하는 나라에서 근현대사를 공부한 죄로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임시정부 건국 강령과 제헌헌법 주요 내용을 외치며,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 전투경찰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지금 역사를 되돌리려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잘못된 이념이 아니라 상식의 결핍이라는 사실을 통감하며, 상식이 통하는, 그래서 그 바탕 위에서 신념을 이야기하는 존경할만한 보수 한 분 없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역사의 내전,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 ▲ 간첩이 돌아왔다. 잊혀진 추억이 현실로 ▲ 토건족의 나라, 대한민국은 공사 중 ▲ 헌법 정신과 민영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묻는다 ▲ 괴담의 사회사, 여고괴담에서 광우병 괴담까지 ▲ 경찰 폭력의 역사, 일본 순사에서 백골단 부활까지 ▲ 사교육 공화국, 잃어버린 교육을 찾아서 ▲ 촛불, 몸에 밴 민주주의의 역동성

강좌에 들어 있던 내용 중에 나중에 현실이 되어버린 것도 있다. 전교조 교사들 중에 해직 교사들이 나올 것 같다는 예언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아직 현실이 되지는 않았지만 곧 닥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내용들도 꽤 있다.

그 여덟 번의 강좌가 모여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특강>으로 출간되었다.

묻고, 또 물어 알아야 할 현대사

해방 직후 과거의 행적이 자랑스럽지 못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현대사가 널리 알려지는 걸 꺼려했다. 그러다보니 역사학계에서는 현대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못했고, 일선 학교에서도 현대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근현대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일선 학교에서도 한국근현대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대로 알고 싶어도 묻지 말아야 했던 금기의 대상에서 풀려난 것이다.

그러다보니 역사를 전혀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를 만들 정도가 되었다. '뉴라이트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가 그것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가 우리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출발해서, 이승만, 박정희 정부의 통치에서 친일파 문제는 쏙 빼버리고 통치의 정당성만 강조하는 내용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제 현대사를 숨기고 감추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특강>이 가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한홍구/한겨레출판/2009. 3/14,000원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2009)


태그:#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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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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