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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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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한국의 독자 여러분들과 슬픔을 나누고자 이 글을 씁니다. 한국에 대해 남다른 비전을 갖고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그분의 갑작스런 서거를 당하고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도대체 왜?"라고 절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의중은 아무도 완전히 알 수 없겠지만 저는 그 분의 죽음은 개인의 불행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반쯤은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서는 비열하고 악의에 찬 부패한 극우세력의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친구들과 가족들을 보호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기에 죽음으로써 항거한 것이리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분도 아마 예측하지 못했을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서슬 퍼런 검찰과 경찰의 억압 아래 움츠러들었던 한국시민들의 의식을 새로 일깨웠습니다.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구태의연한 부패 스캔들에 시달리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경찰버스로 막아놓은 길에 몇 킬로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헌화하고 분향하는 시민들에게 그분은 생전에 한 때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의 모습으로 부활하여 돌아왔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당시부터 쭉 지배계층을 형성해온, 골수까지 부패한 수구-친일-친미-사대주의-친자본-친독재 집단에 맞서 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국 같은 세력 앞에서 죽음으로 맞섬으로써 자기들과는 다른 정치적 노선은 조금도 용인하지 않는 그 집단의 속성을 다시 드러내 주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직 당시 실행했던 크고 작은 정책들을 지지하는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그분이 추구한 목표 자체가 그 자신의 축재와 권력 장악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역대 어느 대통령과도 많이 달랐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과 한국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투항도 포기도 아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투항도 아니고 포기도 아니고 우연한 사건도 아니며 분명 목적과 의도가 실려 있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유서에 썼습니다.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분은 가족과 평범한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 같이 가자는 부인에게 "그럽시다"라고 대답하고는 혼자서 슬쩍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부인에게 마지막 남기는 말이 거절의 말이 아닌 사랑의 표현이기를 원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저는 아프가니스탄의 자이툰 부대를 찾아간 노 대통령이 눈물을 감추지 못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자이툰 부대 파병을 절대로 찬성할 수 없었지만 그분의 속마음은 사랑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남의 전쟁터에 보내기가 정말로 싫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건국 초기부터의 집권세력의 맥을 이은 한나라당과 검찰, 경찰, 주요언론, 그리고 재벌기업은 일제와 미군정이 만들고 키워놓은 바로 그 정치적 경제적 체제 속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집단이며 악착같이 그 체제와 기득권을 유지해온 집단입니다.

일제 때 동포들의 피를 빨아 사욕을 채운 친일 매국노집단은 미군정에 의해 재등용되었고 결국 지난 60여 년간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는 지배계층을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이 나타나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부르짖으면 그들은 막대한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26일 오후 서울 덕수궁앞에 차려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주변에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생전의 사진과 근조 리본을 붙여 놓았다.
 26일 오후 서울 덕수궁앞에 차려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주변에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생전의 사진과 근조 리본을 붙여 놓았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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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은 '부패한 아시아 정치인'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여러 신문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일본 신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또 하나의 대통령"이라고 이승만, 노태우, 전두환 등과 동일시하는 듯이 보도했고, 미국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현 정부나 한나라당, 검찰과의 관계 등의 맥락 설명이 없이 단편적인 사실만을 주로 보도했습니다. 이는 한국현대사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특히 미국 언론의 이런 보도는 미국인 대중에게 "부패한 아시아 정치인"이란 그들의 막연한 편견만 부추길 뿐, 미제국의 원죄와 책임에 대한 인식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사는 동안 기득권 세력과 투사로 싸웠고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한국 최초의 풀뿌리 민주주의 대통령, 미국에게도 일본에게도 재벌에게도 비굴하지 않아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소중히 기억하면서 그분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그분의 뜻과 비전을 이어서 소수 기득권 집단이 아닌 보통 사람들과 서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 가기를 기원합니다.


태그:#노 전 대통령 서거, #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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