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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亭子)는 '경치가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하여 지은 집,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는 건축물'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가 그러하듯, 정자는 언뜻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지어 여흥을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선비들의 쉼터이자 정치 토론의 장이었던 정자는 그 자체로 빼어난 건축물은 아니지만, 선비들의 철학, 그들이 그리던 이상세계를 표현하여 형이상학적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정자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연 붕괴되거나 자연 재해로 소실되어 왔다. 또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정자 주위의 풍경이 변하여 동네 한 모퉁이에서 사람의 온기를 잃고 퇴락된 채 방치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지방을 돌다보면 주위 경관과 잘 어울려 모습만으로 값어치가 있는 정자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자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경북 봉화라고 한다. 현재 확인된 곳만 98개이고, 사라진 정자까지 합하면 약 170여 곳에 이른다고 하니 이만하면 '정자의 고장'이라고 할만하다. 게다가 봉화 정자는 여느 지방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자건립의 목적이 풍류인 데 반해, 봉화는 학문, 후학양성이 목적이 경우가 많고, 경관이 수려한 곳보다는 가내(家內)에 위치한다. 또한 강학과 기숙을 위한 공간인 온돌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하여 건축구조 상 벽과 방이 있고, 폐쇄적인 경우가 많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씨는 봉화를 두고 '외지인의 상처를 받지 않고 옛 이끼까지 곱게 간직한 살아 있는 민속촌"이라고 표현하고 '봉화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은 봉화의 전통마을이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답사는 포기한다고 쓴 적이 있다. 그만큼 때묻지 않은 봉화를 방문하기로 한 어느 봄날은 구름 한 점 찾기 힘들 정도로 눈이 부셨다.

어서 오세요, 도암정

36번 국도를 따라 봉화에 들어가면 도암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관광표지판에는 계서당(이몽룡 생가) 9km, 워낭소리 촬영지 2km라는 문구만 있어 바로 근처에 있는 도암정을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도암정은 들러보지 않고는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도암정의 모습. 의외로 연못의 크기가 커서 연꽃이 만개하는 여름에는 장관을 연출할 것 같다.
 아름다운 도암정의 모습. 의외로 연못의 크기가 커서 연꽃이 만개하는 여름에는 장관을 연출할 것 같다.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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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정은 경북 효 시범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 앞 너른 연못에는 인공섬, 당주가 있다. 연꽃이 있어 7-8월에 만개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정자 오른편에는 커다란 단지바위가 있는데, 바위경관과 도암정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단지바위는 매우 커서 어른 키를 훌쩍 뛰어넘는다. 커다란 바위 셋이 형제처럼 모여 있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게 느껴진다.

빛바랜 도암정의 내부모습, 천정에 붙어있는 건 정자를 언제 지었고,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 적은 중건기이다. 오른쪽은 도암정 옆 자리잡고 있는 단지바위
 빛바랜 도암정의 내부모습, 천정에 붙어있는 건 정자를 언제 지었고,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 적은 중건기이다. 오른쪽은 도암정 옆 자리잡고 있는 단지바위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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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정은 봉화 정자의 특징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양쪽에 방이 있고, 그 가운데는 대청마루가 자리잡고 있다. 대청마루 천장에는 빛바랜 현판이 지키고 있었으며 정자가 지어진 동기를 적은 중건기가 붙어 있었다. 도암정을 자세히 둘러보니 곳곳에 낡은 흔적이 눈에 띈다. 하지만 마루에 흩어져 있던 바둑판은, 정자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존재가 아닌 아직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경암헌 고택의 모습. 경암헌 고택을 보러 따라올라가던 길에 나를 반기는 닭의 모습.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처음 보는 광경이 마냥 신기했다.
 경암헌 고택의 모습. 경암헌 고택을 보러 따라올라가던 길에 나를 반기는 닭의 모습.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처음 보는 광경이 마냥 신기했다.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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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정를 지나 효 시범마을에 들어서면 멀지 않은 곳에 경암헌 고택이 있다. 경암헌 고택을 중심으로 아직도 옛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옛 선조들이 살아온 흔적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서울에서 온 낯선 이를 보고 경계하는 누렁이의 모습이나 마을 길을 따라 유유히 걷는 닭의 모습을 보며 왜 유홍준씨가 '그 자체로 민속촌'이라 평했는지 실감하였다.

거북과 연못, 그리고 청암정

돌거북 위에 자리한 청암정의 모습
 돌거북 위에 자리한 청암정의 모습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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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정에서 머지 않은 곳에는 닭실마을이 있다. 봉화의 마을 중에서는 봉화읍의 닭실마을이 가장 알려져 있다. 안동 권씨의 집성촌인 닭실 마을은 닭이 알을 품은 산세(금계포란)에 자리잡아 자연에 푹 파묻힌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닭실마을 안쪽에 위치한 청암정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을 것이다. <바람의 화원> 포스터를 여기서 찍었으며, <음란 서생> <스캔들>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청암정을 배경으로 하였다.

바람의 화원 포스터와 포스터 촬영지였던 돌다리의 모습이 보인다. 
돌다리는 현존하는 돌다리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바람의 화원 포스터와 포스터 촬영지였던 돌다리의 모습이 보인다. 돌다리는 현존하는 돌다리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 해당제작자/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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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정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지을 당시에는 연못 없이 바위 위에 정자를 지었는데, 정자를 지은 해부터 가물기 시작했다고 한다. 애가 타던 마을 사람들은 도사를 모셔 그 이유를 물어봤다. 도사 왈, 거북은 원래 물의 동물인데 그런 거북 위에 정자를 짓고 군불을 때니 거북이 노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부랴부랴 거북 주위에 연못을 파 물을 채웠고, 그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냥 아름다워보이는 정자에 군불을 때다니. 이런 궁금증은 청암정의 주인이자, 안동 권씨의 종손 권용철 선생의 설명으로 눈 녹듯 사라진다. 봉화는 가장 추운 겨울을 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청암정도 여흥을 즐기기 위한 공간이 아니고 후학을 양성하는 '학교'였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선 사방이 트인 정자는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청암정은 삼면이 틔어 있는 정자이기 때문에 군불을 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명을 듣고 청암정을 바라보니 확실히 일반 정자와 다른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하지만 '학교'를 이렇게 아름답게 짓다니, 옛 선조들의 미학과 철학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청암정 학도들은 공부할 기분이 났을는지 모르겠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만 건너도 선계(仙界)로 들어가는 기분인데, 청암정 학도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싱숭생숭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저절로 웃음이 난다.

옛 선비들의 기숙학교, 석천정사

닭실마을 옆 석천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또 하나의 정자가 있다. 바로 석천정사이다. 권용철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엄밀히 따지자면 '정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자와는 다른 것이라고 한다. 청암정이 통학학교였다면, 석천정사는 일종의 '기숙학교'라는 설명이다. 마을에서 나와 석천계곡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석천계곡의 기암괴석과 곳곳에 숨겨져있는 옛 선비들의 흔적. 왼쪽은 비룡포
 석천계곡의 기암괴석과 곳곳에 숨겨져있는 옛 선비들의 흔적. 왼쪽은 비룡포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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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계곡에는 기암괴석이 많다. 그래서 석천계곡에는 도깨비들이 많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한번은 도깨비 울음소리가 너무 무서워 석천정사에서 기숙하던 학생들이 밤에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고명한 선비가 찾아와 바위에 붉게 글씨를 썼다. 여기는 신성한 곳이니 도깨비들은 썩 물러가라는 내용이었다. 글씨를 바위에 조각한 이 후부터는 도깨비들이 사라져 학생들이 편히 공부할 수 있었단다.

석천계곡에 남아있는 전설의 일부. 글씨에서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석천계곡에 남아있는 전설의 일부. 글씨에서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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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정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아직도 선비가 썼다는 붉은 글씨가 남아 있다. 바위에 조각된 글씨에서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정말 도깨비들이 얼씬도 못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체중인 석천정사의 외관.
 해체중인 석천정사의 외관.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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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정사는 지금 해체복원 작업 중이다. 전통 건축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체하는 현장도 흔치 않은 경험이니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멀리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현장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보니 건물 기둥을 제외하고 지붕, 마루 등을 해체한 상태였다. 정자 터 뒷편에는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던 기둥들이 고이 모아져 있었다.

정사 터에서 군불을 지폈던 아궁이의 모습이 보인다. 석천정사는 기숙학교였기 때문에 취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있었다는데 그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궁이 옆에 물을 내다버릴 수 있는 조그만 수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쯤 부엌이 있었겠구나하고 추측은 할 수 있었다.

해체작업 중인 석천정사 내부모습, 이미 건축물 대부분이 해체된 상태이다.
 해체작업 중인 석천정사 내부모습, 이미 건축물 대부분이 해체된 상태이다.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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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기웃거리고 있으니, 인부 아저씨 한 명이 위험하니 어서 나오라 손짓하신다. 녹슨 못이 많아 큰일난다는 것이다. 마을을 뒤로 하고 공사현장에서 빠져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아직 둘러볼 정자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 내일은 아침 일찍 출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봉화에 정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게다가 선비들이 공부를 하며 심신을 수련하던 특별한 공간이라는 설명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저에게도 마음의 쉼터가 되어줄 것이란 믿음을 주었습니다.



태그:#정자답사, #정자, #도암정, #청암정, #석천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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