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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까, 캠퍼스를 걷던 내 눈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시각장애인 도우미견과 함께 다니는 우리 학교 학생이었다. 그때는 단순히 '장애가 있는데도 대단하다'라는 생각만 있었을 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시각장애인이 올 A+ 학점을 받았다는 뉴스를 봤는데, 그가 바로 우리 학교 교육학과에 재학 중인 김경민(21, 숙명여대)씨였다. 

솔직히 우려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하게 된 인터뷰였다. 뭔가 눈물 나올 만한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인터뷰를 하면 할 수록 그런 생각 자체가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달 31일, 학교 후배와 수다 떠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숙명여대 교정에서 경민씨를 만났다.

전 과목 A+  "상황이 학점을 만들었다"

교내 수석을 차지한 교육학과 김경민씨와 안내견 '미담이'
 교내 수석을 차지한 교육학과 김경민씨와 안내견 '미담이'
ⓒ 김경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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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마다 책값이 비싸다고 투정하는 친구들을 보면 가끔은 미워보일 때도 있어요. 그래도 그 아이들은 성한 눈으로 전공책을 볼 수라도 있잖아요."

경민씨는 "상황이 학점을 만들었"을 뿐, 올 A+ 학점의 별다른 비법은 없다고 수줍게 말했다. 시각장애인이라면 대개 그렇듯, 경민씨는 도우미가 타이핑해서 점자로 만들어 준 파일을 받아서 공부했다. 수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필기를 할 때도 있지만, 필기를 할 수 없는 수업은 도우미가 대필해준다.

게다가 영어영문학과도 복수 전공하고 있는 경민씨는 보통 사람도 번역하기 힘든 전공책을 다시 점자로 바꿔서 읽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말한다. 때문에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도와준 도우미들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결과 전과목 A+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거다. 자신을 '손이 많이 가는 학생'이라고 표현하는 경민씨는 "모든 교수님들이 잘해주셔서 빚을 진 것 같은 마음"이라고.

"사람들은 내가 못하면 장애인이라서 못 하는 거고, 다른 사람들이 못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신체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좀 편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내 생각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다.  

8살까지 26차례 수술...부잣집 딸이라 성공은 '오해' 

그러고 보니, 경민씨 곁에 웬 개? 이 개의 이름은 '미담이'란다. 경민씨의 둘 도 없는 친구같은 존재다. 경민씨는 미담이를 자신과 '한 몸'이라고 생각하고 산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도 미담이가 경민이고 경민이가 미담이인 것처럼 생각해요. 어떤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미담아, 경민이는 왜 안 짖어?'라고 말할 정도예요."

미담이와 함께 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끈다. 그 중에는 간혹 음식을 주거나 몰래 쓰다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인이 '몰라서' 하는 행동. 경민씨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내견은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눈으로만 예뻐해줬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보통 안내견 활동 기간은 건강상의 문제가 없으면 보통 10~12살 때까지 할 수 있는데, 지금 미담이 나이는 4살. 아직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보이지만, "오래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인터뷰를 하는 중간 중간에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통화 후 그녀는 "제 기사에 달린 악플에 대해서 얘기했어요"라며 통화 내용을 말해주었다.

"'집에 돈이 많으니까 장애가 있어도 성공했구나' 하는 내용의 악플을 보고 상처 많이 받았어요. 특히 미담이와 함께 걸어가면 '갑부집 딸인가 보다'라고 수군대는 소리가 다 들려요. 하지만 저희집은 결코 잘 사는 편이 아니에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시력장애가 있어 생후 1개월부터 8살까지 26차례나 수술을 했거든요. 그 수술비며 제 교육비며 부모님들이 힘들게 제 뒷바라지를 해주셨어요.그래서 대학 등록금은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한 건데. 진짜 잘 살았으면 한국에서 안 살았겠죠."

안내견 '미담이'도 기업에서 무상으로 지원을 받는 것이고, 경민씨를 도와주는 도우미들도 숙명여대 학생들이 자원해서 하는 것이다.

각막 기증해 주시겠다는 분 "감사해요"

시각장애인으로서 전 과목 A+ 학점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민씨는 바빠졌다. 각종 신문, 라디오, KBS 인간극장 등 많은 취재 요청 공세에 시달린 것. 근데 의외로 관심에 비해 보도는 많이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묻자 많은 취재 요청을 거절했다면서 경민씨는 "나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다.

"예전에 다큐를 한번 찍은 적이 있는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에게 잔인해 보일 정도로 질문을 하는 기자를 보고 너무나 놀랐어요. (다큐 찍을 때) 너무 힘들었기도 했구요.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저한테는 그런 곳에 에너지를 쓸 여유도 없어요. 일주일에 과제 3개가 기본이고 주말에도 과제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거든요"

끝으로 "꿈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민씨는 당당히 자신의 포부를 설명했다. 그녀는 2007년에 1년 동안 갔다왔던 미국에서의 프로그램이 아주 인상깊었다면서 "미국에서는 각 주에서 시각 장애인들이 아기 때부터 직업을 가질 때까지 관리를 해줘요.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거죠. 저는 한국에도 미국같은 제도가 마련될 수 있게 하고 싶어요"라고 소신을 밝혔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려는데, 경민씨가 꼭 할 말이 있다며 붙든다.

"제 기사를 보고 어떤 분이 각막을 기증하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했던 잦은 수술로 인해 각막이 손상돼 이식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그 분께 꼭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기자분께서 꼭 전해주셨으면 해요. '정말 감사하다고'"


태그:#시각 장애인, #성적 우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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