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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19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대안 없는 거부는 생떼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국회 다수 야당인 민주당만을 겨냥해서 한 말이라면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지만, 이것이 진보진영을 포함해서 하는 말이라면 지금껏 여러 진보적인 씽크탱크들이나 단체들이 내놓은 연구보고나 정책대안들은 들여다 볼 가치도 없는 것들이라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보수진영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이 개최하는 토론회나 세미나 등을 가봐도 토론석과 청중석 구분 없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발언은 '진보진영의 무능'일 것이다. 그 무능의 근거가 되는 소재는 대안이 있는가, 혹은 그 대안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 등이다.

 

이런 지적들, 즉 '무능한 진보, 대안 없는 진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18일 동국대에서는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세교연구소,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 참여사회연구소, 코리아연구원 등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7개 씽크탱크들과 한겨레신문사가 '이명박 정부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이명박 정부 1년 평가와 2년 전망 대토론회가 있었다. 1부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리더십, 2부 경제정책, 3부 사회정책, 4부 외교안보 정책, 5부 종합토론 등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토론회의 1부~4부에서도 역시 같은 지적들이 나왔다.

 

과연 한국의 진보는 대안도 없고 무능한 것일까? 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처럼 진보적인 씽크탱크를 이끌고 있는 네명은 이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 진보진영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몇 가지 중요한 과제들을 던져주었다.

 

본 글은 이 토론회에서 5부 종합토론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 되었다. 5부 토론회의 사회자와 토론자는 다음과 같다. ▲ 사회 : 정해구(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 공동대표, 성공회대 정치학 교수) ▲ 토론 : 손석춘(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박순성(코리아연구원 상임기획위원장, 동국대 경제학 교수), 이병천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강원대 경제학 교수), 하승창 (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진보적 학자 자신들의 게으름을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으로 정당화 하지 말라

 

먼저 손석춘 원장이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진보적인 경제학 교수가 진보진영에 구체적인 중범위적 경제정책 대안이 없다라고 얘기하면서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 것은 본인의 게으름에 대한 소치다. 현장에서 운동을 하는 분들이 진보진영에 과연 대안이 있느냐라고 추궁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진보적인 사회과학교수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손석춘 원장 스스로도 도발적인 문제제기라 하면서 "내가 이렇게 말 하는 이유는 진보진영이 대안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진보를 자임하는 학자들, 사회과학교수들이 이미 오래 전서부터 말해왔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람이 10년 전에 그런 얘기를 해 놓고, 지금도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 대안을 누가 만들어야 하나? 현장활동에 바쁜 사람들이 하나, 아니면 먹고 살기 바쁘고 힘든 사람들이 하나"며 칼날을 세웠다.

 

진보진영의 무능을 이야기 하기 전에

 

한편 박순성 위원장은 "'진보의 무능'이라는 게 굉장히 우리들의 정신구조를 사로잡고 있고, 인식론적 장애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진보진영의 무능을 이야기 하기 전에 진보진영 내부의 다른 연구자들 혹은 활동가들이 어떤 연구성과를 거두었고 어떤 이론을 내놓고 있는지에 대해서 철저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또한 진보진영이 아직도 낡은 이념, 지향이나 가치를 갖고 있지 않은가라는 시각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진보개혁의 이름으로 나오는 많은 보고서들을 정말 꼼꼼히 읽어보면, 70, 80년대에 주로 나왔던 소위 말해서 낡은 식의 한국좌파 혹은 한국진보의 가치가 아직도 그대로 주장되고 있는 보고서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오히려 그는 "'평등' 이라는 근본적 가치를 주장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이 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부족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역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천가능한 진보적 대안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활발한 연구보고와 정책대안 제시 등을 하고 있는 7개의 대표적인 씽크탱크들이 주최를 한 토론회인 만큼, 토론에 임한 관계자들은 진보의 무능과 진보진영이 대안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제기에 대해서 확실하고 자신 있는 반론을 펴나갔다.

 

특히 손석춘 원장은 "대안들은 사실 만들어져 가고 있다. 예를 들어, 통일정책에 대한 대안같은 경우 정욱식 대표가 평화네트워크 식구들과 함께 아주 꾸준하게,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도 있는 이병천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참여사회연구소, 박순성 교수가 상임기획위원장으로 있는 코리아연구원, 정해구 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는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27 등, 어렵게 이런 싱크탱크들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좋은 진보적인 대안과 성과들을 내놓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손석춘 원장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역시 주목해야 할 성과물들을 내놓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진보적인 언론계와 학계도 변화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씽크탱크들과 시민단체·활동가들에게만 짐을 지워야 하는가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 진보진영 전체가 노력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면, 지금 오히려 노력하고 있지 않은 건 진보적 언론계와 학계가 아니냐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서 손석춘 원장은 '학문적 식민주의'를 거론하며 언론계와 학계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먼저 언론계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언론계 마저도 교수가 아니면 (씽크탱크나 시민단체에서 만든 대안이나 이론들을) 소개를 잘 안 해주려고 한다. 심지어 외국학문에 대해서는 상당히 높이 평가를 하고 자세하게 소개를 해 주는데, 국내의 누군가가 어떤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무시하거나 경시한다. 실제로 외국의 사회과학교수들, 학자들의 내용을 보더라도 뾰족한 얘기가 없는데, 그런 것들은 아주 크게 지면을 할애해서 보도를 한다. 그러면서 국내에서의 토착연구를 통해 나온 대안은 무시한다"고 했다.

 

그리고 학계에 대해서는 "(씽크탱크나 활동가들이 내놓은) 연구성과들을 학계에서도 무시하고 있는데, 인용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마치 인용을 하면 뭔가 품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같이 논의를 하고 그걸 가지고 함께 한국의 새로운 사회과학이론을 만들어 나갈 생각보다는 외국 학자들의 이론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이런 현상들과 문제들이 진보세력의 대응능력에 있어 위기문제를 보편화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진보적인 언론계와 학계의 각성을 요구했다.

 

굉장히 먼 길을 가야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그간 비판에만 열중했던, 짧게는 1년 길게는 민주화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성찰하고, 이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다양한 노력들이 더 중요한 때라는 것에 이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병천 소장은 "진보진영이 굉장히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다. 높은 탑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본다"라고 하며 "특히 한국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공(共)’이라는 걸 긍정적 부호로 보지 않는다는 거다. 일반 국민들은 '공'이란 게 썩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진보개혁 세력은 이 '공'을 얻으려고 하고, 그것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굉장히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이것(공)을 시혜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보면서 모두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경험'을 한국 사회에서는 갖기 어려웠다고 본다. 87년에 민주화가 되었지만, 특히 97년 이후 이러한 경험, 시장을 제어할 수 있는 '공공성'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 껴안고 공적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그 지점을 민주화 시대에서 배우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에겐 결정적이며 치명적인 실패의 지점이라 본다"며, "그 터전 위에서 이명박 정부가 출현했고,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는 그것을 새로 일궈야 하는데, 이것은 단번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굉장히 많은 사건에 부딪힐 것이다. 앞으로 한국 진보가 단순히 구체적 정책의 문제 뿐만 아니라 대중의 체험과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상당히 먼 길을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해구 대표는 지난 대선과 촛불집회에서 볼 수 있었던 '시민사회 차원의 운동과 투표의 괴리'라는 현상을 주목하면서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본 것처럼 기권자가 굉장히 많다. 결정적인 순간에 옳은 후보를 지지해 줘야 하는데, 촛불집회에는 나가고 투표할 땐 기권을 한다. 이렇게 해서 사회가 바뀔 수 있는가? 때문에 시민과 정치가 연결되어야 할 부분, 이를테면 '시민정치공동체' 같은 부분이 있어야 될 것 같다. 앞으로 우리들이 새로운 운동을 할 때, 이러한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한편 손석춘 원장은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직도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 또는 '(지금의 어려운 상황들이)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냐? 세계경제가 잘못되서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순진하고 착은 분들에게 비판을 할 게 아니라, 그 분들을 우리 모임에 부르거나 아니면 그 분들을 위한 모임을 마련하거나 또는 자기 자신이 직접 그런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직접 다가가 그 분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라는 것이다.

 

특히 '스웨덴의 써클민주주의'와 '베네수엘라의 주민자치모임'을 거론하면서, "우리가 아래로부터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나가는 운동을 하고, 이것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놀라운 폭발력을 갖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웨덴의 경우 보수정당이 집권을 해도 무상의료·무상교육이 후퇴되지 않는 이유는 전국적으로 10명 단위의 스터디써클이라는 조직이 사회 전반에 걸쳐 견고하게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베네수엘라의 경우 차베스 정권의 혁명이 진행해 나갈 수 있는 데에는 5~10명 정도로 구성되서 학습과 토론을 하는 주민 자치모임들이 활성화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손석춘 원장은 우리에게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지난 해 있었던 촛불집회에 촛불을 들고 나왔었던 민주시민들 가운데에는, 많은 분들이 자기 동네, 자기 마을에 가서 그런 것들을 계속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조금씩 조금씩 보인다. 과거에는 우리끼리 모여서 토론하고 서로 분노를 터뜨리고 그랬는데, 이제는 각각 흩어져야 될 때다. 진보진영이 더욱 더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태그:#진보, #민주주의, #공공성, #손석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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