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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기자와 작가들이 사는 집

 

 《나무 위 나의 인생》(눌와,2002)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분은 ‘높이 자란 나무를 타면’서 나무 한살이를 살피는 생물학자입니다. 나뭇잎 한 장을 하루이틀이 아닌 열 해 남짓 지켜보기도 하면서 나무가 어떻게 살고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가 무엇이며 나무는 둘레 삶터에 어떻게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끼치는가를 살펴봅니다. 이이는 나무타기를 하면서 ‘어느 나뭇잎은 열다섯 해 동안 매달린 채 살아남기도 한다’고 밝혀냅니다. 열다섯 해 동안 그 나뭇잎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열다섯 해 넘는 세월을 나무 살피기에 바친 까닭에, ‘나무타기나 나뭇잎 살피기를 몸소 하지 않고 논문을 쓰던 과학자’들은 자기 논문을 버리거나 고치게 됩니다. 또한, 이 책을 쓴 분은 호주에서 농장을 꾸리는 남자와 혼인을 하며 여러 해 함께 사는 동안, 자기가 얼마나 섣불리 혼인을 했고 호주라는 데에서 들살이를 살피는 생물학자로 사는 가운데 집살림 꾸리는 일은 얼마만큼 이루기 어려울 뿐더러 눈총과 구박을 받아야 하는가를 깨닫습니다. 혼인을 않고 혼자 살며 과학자 길을 걸었다면 연구는 더 깊어졌을 테고 개인 아픔도 없었을 테지만, 혼인을 해 보았기에 ‘여자 한 사람’이 두 갈래 길을 함께 걷는 고단함을 뼛속 깊숙하게 새겨 놓고 뒷사람들을 걱정합니다.

 

 서울 용산에서 ‘주민’이 아닌 ‘철거민’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쫓겨날 수 없기”에 공무원(재개발 정책 밀어붙이는 이들)한테 맞서다가 그만 목숨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저 또한 동네 골목집에 달삯을 내며 깃들어 사는 ‘주민’이면서, 어느 날 ‘철거민’ 신세가 되어야 할지 모르는 삶입니다. 제가 깃든 집이 있는 동네를 비롯하여, 인천이라는 곳에서는 ‘지도에 아파트로 그려져 있지 않은 데’는 거의 모조리 ‘아파트로 새로 짓는 재개발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라는 데에 들어가 살 돈이 없습니다. 지금 살림집도 보증금과 달삯이 버겁습니다만, 돈이 넉넉해지더라도 아파트 아닌 골목집에서 땅에 등을 누인 채 빨래는 햇볕에 말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천을 비롯한 한국땅 어디에서든, 아파트 아닌 집에서 사는 사람은 ‘주민’이 아닌 ‘재개발지역 대상자’나 ‘철거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우리한테 ‘도시 서민’이나 ‘도시 빈곤층’이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우리든 중산층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똑같은 ‘사람’이며, ‘주민’이고, ‘시민’이자, ‘국민’일 텐데.

 

 죽은 ‘철거민’이 아닌 ‘용산에 살던 동네사람’을 두고 “불법폭력시위”를 했으니 “법을 어겼다”는 말이 곧잘 터져나옵니다. 그런데 법에는 ‘재개발을 하도록 하는 법’과 함께 ‘사람이 자기 살고픈 곳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 권리를 지키도록 하는 법’이 나란히 있습니다. 그저 이런 법(헌법)은 건설법, 경찰법, 집시법, 특별법, 국가보안법 …… 따위에 허구헌날 짓밟힐 뿐이긴 하나.

 

 생각해 보면, 우리 동네 골목집에는 국회의원이니 의사니 판사니 변호사니 경찰이니 기자니 안 삽니다. 공무원이니 교사니 작가니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진쟁이도 그림쟁이도 만화쟁이도 글쟁이도, 요새는 가난한 골목집에는 안 삽니다.

 

 

ㄴ. 헌책방에 안 가 보니 헌책방을 모른다

 

 헌책방에 가 보지 않은 분은 헌책방에 어떤 책이 있고 어떤 이야기를 얻고 어떤 마음밥을 먹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도서관에 가 보지 않은 분이 도서관 얼거리나 책갖춤을 모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헌책방이고 도서관이고 찾아가 보도록 일러 주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고 이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어버이 스스로 헌책방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못하거나 안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는 회사일 하랴 바쁘고, 회사 다니기 앞서는 대학교에서 학점 따랴 사랑놀이 하랴 바쁘며, 대학교 다니기 앞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싸움 치르랴 바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우 틈이 나는데, 이무렵 아이들 손을 잡고 헌책방과 도서관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는 얼마쯤 될까요.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 되는 분들도 ‘지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우리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먹고사느라 바빠 제때 제곳에서 아이들을 못 챙기지 않았을는지요.

 

 골목동네에 살아 보지 않은 분은 골목동네에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이야기가 있으며 어떤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지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골목동네를 알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는 으레 아파트에서 삽니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빌라에 살며, 골목에서 이웃집과 문과 담을 마주하면서 늘 얼굴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이가 아니기 일쑤입니다. 햇볕에 빨래를 말리고, 골목길 안쪽 모퉁이나 차가 뜸하게 다니는 너른 볕바른 자리에 놓인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동네 할매 할배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재미를 모릅니다. 사진으로는 보고 말로는 들을지언정, 살갗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되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나도 왜 ‘철거민이 생존권을 외치’는지, ‘보상 받고 떠나면 될 일을 왜 저리 난리법석’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파트 삶터는 고향이 아닌, 돈굴리기를 하고자 잠깐 머무는 곳이거든요. 스무 해조차 채 버티지 못하는 곳은 집도 보금자리도 아닙니다. 부동산일 뿐입니다.

 

 지난주에 동네 헌책방 마실을 하면서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전파과학사,1985)이라는 작은 책을 장만했습니다. 글쓴이는 장학사를 하면서 여러 국민학교(옛날이니까) 자연시간 시찰을 나가며 겪은 일을 적어 놓는데, 요오드 실험을 하는 아이가 틀림없이 검은빛으로 나왔음에도 “녹말가루에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리면 보라색으로 변하니까요.” 하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교과서에 나온 대로’ 말하더랍니다. 알코올램프가 넘어지면 물을 부어야 하는 줄 모르는 교사들 이야기를 보면서, 주먹구구요 점수따기 주입교육만 되풀이되는 예전 이런 모습이 오늘날이라고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하지만 그예 슬플 뿐입니다.

 

 아침에 구청(인천 동구청)에서 열린 ‘동인천 재정비사업에 따른 주민설명회’라는 데에 다녀왔습니다. 주민 숫자가 몇 만 사람임에도, 걸상을 고작 150개 갖다 놓았고, 골마루까지 북적인 주민들 앞에서 ‘돈없는 사람한테까지 재정착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합니다. 두어 시간 내내, 재개발 정책을 꾸리는 분은 자기 사는 동네를 재개발로 밀어없애는 일을 할까 안 할까 궁금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는 글입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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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책읽기, #책, #철거민, #헌책방,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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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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