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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두 번, 저녁에 한 번, 밤에 한 번, 이렇게 네 번 똥을 누어 주신 아기가 새근새근 잠듭니다. 옆지기가 젖을 물리고 토닥토닥 해 주니 가까스로 잠듭니다. 아기가 잠든 오늘은 열한 시가 거의 다 될 무렵.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서너 시간에 한 번 오 분씩 살짝 잠들고 깨어나던 아기는 낮 세 시쯤 사십 분쯤 겨우 잠들었습니다. 하도 잠을 안 자고 벌개지는 눈으로 놀아 달라는 얼굴이라 하는 수 없이 포대기에 싸서 자장노래를 부르다가는, 빨래를 옥상마당에 널 때 한손으로 안고 한손으로 널고, 다른 집안일도 한손으로 죽 하다 보니 어느새 잠들더군요. 그러고 나서 한 번 십 분쯤 잠들다가 이제서야 비로소 잠듭니다. 그나마 밤에는 한 번도 깨어나는 일이 없으니, 엄마 아빠가 밤에라도 잠을 잘 자도록 해 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렇게 아기가 잠들고 나야 비로소 글쓰기든 책읽기든 홀가분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섣불리 불을 켰다가는 잘못해서 깨어날 걱정이 있으니 자판을 두들겨도 천천히 살며시 두들기고, 책은 모니터 불빛에 기대어 살짝살짝 읽습니다.

 

 

 오늘날 우리 세상이 ‘남자와 여자가 고르게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라고들 말을 하지만, 제 느낌으로는 겉보기만 ‘남녀평등’이지 속삶으로는 예전보다 더 뒤틀린 ‘남녀 안 평등’이지 않느냐 싶어요. 아무리 더 배우고 많이 익히고 새로 알아간다 할지라도, 여자는 ‘사회살이 하면서도 집안살림 해야’ 합니다. 아이를 배면 여자는 모든 일에서 아기만 생각해야 합니다. 아기를 낳을 무렵 여자만 일터를 그만두거나 쉽니다. 갓난아기 돌보기부터 밥먹이기 모두 여자 몫입니다. 어쩌다 남자가 거들기도 하지만, 여자가 아기와 붙어 있어야 하니, 남자는 바깥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말하고, 돈을 버는 남자는 회식도 있고 접대도 있어 집보다는 집 바깥에서 오래 머물고는 집에 와서는 아기 치닥거리보다 아기 귀여움과 재롱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다가, 자기 스스로도 몸이 고단하여 일찍 잠듭니다. 그러면서 이튿날 다시 일을 나가야 한다는 까닭과 술자리가 있었으면 힘들다는 핑계를 덧붙여 밤 사이 아기 돌보기는 여자 몫이 되고 맙니다. 이러는 동안, 남자가 아침일 나가기 앞서 받는 밥상은 오로지 아기를 돌보는 여자 몫이고, 빨래 또한 여자 몫이며, 집구석 치우는 일도 여자 몫입니다. 이 나라 많은 남자들이 이 ‘온통 여자 몫’인 일을 홀로 치러내 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아기 돌보랴 저잣거리 나들이하며 먹을거리 장만하랴, 밥감을 손질해서 차리랴, 또 치우랴, 아기 젖 물리랴 놀아 주랴, 여기에 시부모 있으면 시부모까지 모시랴, 딴생각을 하고파도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밤이면 남편 된 이한테 사랑놀이 대접도 해 주어야 하고. 세탁기와 청소기와 세척기 따위가 있다고 집안일이 줄어들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기계가 있어서 더 많은 일손이 가고, 더 자주 옷을 빨아입으며, 더 자주 집을 치워야 합니다.

 

 이런 쳇바퀴 도는 삶일 때, 여자 된 이로서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기란 꿈꾸기조차 어렵습니다. 더욱이, 인문학을 다룬 책은 못 읽습니다. 요즈음도 그렇지만 지난날도 그렇고, 인문학책에 쓰이는 말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가뜩이나 골치아프고 책 하나 십 분을 고이 읽을 만큼 눈을 두기 어려운데, 골치를 썩이는 책은 처음부터 안 집어들게 됩니다. 말랑말랑한 여성잡지에 손이 가기 마련아고, 커피잔 만지작거리며 생각 덜 하거나 안 해도 되는 연속극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현대 한국 여자 삶’이에요. 그러다 보니, 제아무리 대학교를 나왔다 한들, 또 기자일을 해 보았다 한들, 또 사진기를 만져 본 적이 있다 한들, 날 가는 줄 모르고 해 뜨고 지는 줄 모르는 ‘집어미’들이 자기 삶을 일기로나마 끄적일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자기 삶을 사진으로 꾸준히 남겨 볼 마음을 품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면 스물 서른 마흔 홀랑 지나가고 머리 허얘지고 허리 아프고 무릎 시큰거리는 쉰 줄을 넘기고 예순 줄까지 넘기는 가운데,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좋을 대로 집을 뛰쳐나가며 자기 길을 걸어가고.

 

 

 저는 요즈음 이런 쳇바퀴 삶을 보내면서, 아무리 쳇바퀴 삶이라 할지라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를 돌보는 일에 아무 보람이 없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아기 사진을 찍고, 아기와 함께 있는 옆지기 사진을 찍습니다. 하루에 딱 1분조차도, 아니 10초조차도 ‘허튼 짓(?)’을 할 겨를이 없어서, 쓸데없는 광고 전화가 와도 아주 짜증스럽습니다. 밥하고 치우고 빨래하고 걷고 개고 애 보고 재우고 놀고 글쓰고 일하고 하는 데에 눈썹이 휘날려야 합니다. 그래서 ‘귀찮은데 뭐 하러 사진을 찍나?’ 하고 생각하기에 딱 좋습니다. 사진만 안 찍어도, 또 글만 안 써도 내 삶이 얼마나 느긋하고 널널할까 싶습니다. 그러면 참말, 사진 안 찍고 글 안 쓰는 제 삶이 참으로 느긋하거나 널널할까요. 오히려 없는 틈에 사진 찍고 글 쓰고 하면서 시간을 쪼개기 때문에, 하루하루 고단하고 고된 삶을 잊거나 훌훌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옆지기 어머님이 놀러와서 ‘그동안 아기를 찍어 놓은 사진’ 뭉텅이를 보시더니, “그래, 남는 건 역시 사진밖에 없어. 최 서방이 아기한테 좋은 일을 해 주는구만.” 하고 한 말씀 하셨습니다. 사진을 찍기만 많이 찍고 종이로 뽑아 줄 틈조차 거의 없지만, 한두 달에 한 번쯤 왕창 몰아 사진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사진책을 마련해 꽂아 넣지는 못하고, 종이상자 하나에 날짜만 적어 놓고 수북히 쌓아 놓습니다. 사진 갈무리야, 나중에 아기가 커서 열대여섯 살쯤 될 때, 아니면 열 살쯤은 될 때 넌지시 건네면서 “사름벼리야, 사름벼리 사진은 사름벼리가 갈무리하렴.” 하고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곧 여섯 달을 맞이하는 아기인데, 아기를 찍은 사진을 보면 집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많습니다. 다음으로 세 식구가 일산 나들이를 할 때 찍은 사진이 많고, 그 다음으로는 세 식구가 골목마실을 할 때 찍은 사진이 많습니다. 이웃집에 놀러 가거나 헌책방에 찾아가서 찍은 사진이 제법 있고, 돌잔치 나들이를 가서 찍은 사진도 좀 있습니다. 성당에서 세례성사 받으며 찍은 사진도 있군요.

 

 아는 분들이 곧잘 ‘돌잔치 사진 좀 찍어 줘’ 하고 부탁하거나 ‘결혼사진 좀 찍어 줘’ 합니다. 예전에는 혼자 다니며 찍고, 옆지기와 함께 다니며 찍게 되다가, 이제는 아기와 옆지기 셋이 함께 움직이면서 찍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한두 장쯤 아기가 나오도록 찍어 놓습니다. 먼 뒷날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나서, 지 아빠 동무나 선후배로 누가 있었는가를 이런 사진으로 헤아려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또한, 지 아빠와 엄마가 지를 데리고 어디를 다녔고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제(아기) 모습 찍어 놓은 사진으로 돌아볼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비록 아기는 저 어릴 때를 거의 떠올리지 못할 터입니다만, 이런저런 옛날 사진이 남아 있을 때에는, 몸에 살포시 새겨진 느낌을 되새기면서 ‘내가 받은 사랑은 이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저는 줄잡아 두어 달에 한 번쯤 ‘행사 사진’ 부탁을 받습니다. 사진을 찍어 온 지난 열 몇 해 동안 꾸준하게 이런 일을 했습니다. 이런 부탁이 들어오지 않을 때에도 아는 분이 주인공이 된 행사 자리에 가면, 슬그머니 행사 사진을 찍어서 모르는 척 사진을 만들어 보내 주거나 건넵니다. 《결혼사진 특강》(해뜸) 같은 이론책을 사서 읽으면서 ‘사진공부 하는 셈 친다’고도 생각했지만, 이보다 예식장이나 행사 자리에 가면, ‘사진 찍는다는 사람들은 왜 모두 틀에 박힌 사진만 찍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어서, ‘내가 이런 자리에서 사진쟁이로 일한다면 어떤 모습을 찍어서 사진을 만들어 주면 이분들이 먼 뒷날 틈틈이 당신들 그날 그 자리 사진을 꺼내어 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을까’를 헤아리곤 했습니다(저는 행사 사진을 찍어 주면서 돈을 받지 않습니다). 혼례잔치 사진을 수십 차례 찍고, 돌잔치 사진도 수십 차례 찍으면서, 그때그때 다 다르게 찍어 봅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빛깔사진으로만 담지만, 저는 빛깔사진과 흑백사진 두 가지를 함께 찍습니다. ‘하나 둘 셋’을 외는 일은 없습니다. ‘찍을게요’라는 말도 웬만하면 안 하고 그냥 찍습니다. 혼례잔치에서는 눈물 흘리는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을 바지런히 찍는 한편, 웃고 떠드는 동무들 모습도 틈틈이 찍습니다. 모둠사진을 찍자며 모일 때와 모둠사진을 찍고 나서는 사람들 얼굴이 부드럽게 풀려서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신나게 찍습니다. 돌잔치에서는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을 한 번씩은 훑습니다. 아기를 잔치상 앞에 앉히거나 세운 모습도 찍지만, 다른 자리 여느 모습을 훨씬 많이 찍습니다. 어른들 앞에서 인사 시키느라 진땀 흘리는 모습도 찍고, 한숨 돌리며 술 한잔 걸치는 모습도 찍습니다. 행사장 알림판을 찍고, 방정맞게 온 골마루 뛰어다니는 꼬맹이들을 찍습니다. 꼬맹이들은 풍선으로 칼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저희끼리 싸우다 울기도 합니다. 행사 자리가 끝날 즈음, 승강기나 나들문에 붙여놓고 있던 알림쪽을 잘 뜯어서 나중에 사진과 함께 선물해 줍니다. 또는, 알림쪽만은 몰래 잘 간수하고 있다가 한 해나 두어 해쯤 뒤에, 때로는 대여섯 해쯤 뒤에 슬쩍 내밀어 줍니다. 아무것도 아닌 종이쪽 하나이지만, 세월이 먹은 종이쪽은 그날 자리를 마련했던 분한테 더없이 수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해 주곤 합니다.

 

 

 으레 행사 사진이라 하면, 딱딱딱 틀에 맞추고 줄을 세워서 찍는 사진으로만 여기는 탓에, 재미없고 고달픈 사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떤 행사라 하든 똑같은 행사가 없습니다. 언제나 다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고 다 다른 사람이 손님입니다. 그래서 어느 행사 자리에 가더라도 다 다른 모습이 나오고 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그리고 사진을 배우는 사람한테는, 행사 자리 사진이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길거리에서 기막힌 사진 한 장 얻어내는 일’ 못지않게 마음을 쏟아야 ‘한 장 그럴싸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스냅사진 연습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브레송이나 최민식이나 김기찬보다 훨씬 더 잽싸게 사진기를 놀리면서 손에 땀이 흐르도록 사진기를 쥔 채 바지런히 뛰고 움직이고 몰아쳐야 사진다운 사진 한 장 겨우 얻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가슴 찡한 사진 한 장 얻을 수 있는 보도사진 연습터’가 될 수도 있군요.

 

 언제나 한 가지 모습을 한 장 사진으로만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두 번 다시 같은 기회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신랑 입장’과 ‘신부 입장’은 한 번뿐입니다. ‘양가 인사’도 한 번뿐이고 ‘하객 인사’도 한 번뿐입니다. ‘신랑신부 행진’을 사진찍기 때문에 두 번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드물게는 있더군요. 신랑신부가 당신들 부모님한테 두 번 세 번 절을 합니까. 아직까지 두 번 세 번 절을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고, 사진을 찍어야 하니 다시 절을 하라는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돌잔치 때 아기 돌잡이를 두 번 시키겠습니까. 돌잡이 아기한테 돈푼 쥐어 주는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가 두 번 나와서 두 번 돈을 쥐어 주겠습니까. 놓치면 그만입니다. 지나치면 끝입니다. 사진쟁이는 행사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뒷간에 가지 못합니다. 미리 다녀와야 하고,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갈 수 있습니다. 남들은 밥을 먹느니 술을 마시느니 하지만 사진쟁이는 선 채로 한 점 두 점 입에 쑤셔넣을 뿐입니다. 자리에 앉을 수도 없지만 자리에 앉을 틈이 없어요. 피 튀기고 소방호스 날아다니는 시위터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만 힘들지 않습니다. 예식장이나 잔치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두어 시간 땀을 쪼옥 빼고 나면 손발 팔다리에 힘이 쪽 빠지면서 후들후들 떨립니다. 한여름에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은 차림에다가 행사 자리에 에어컨 빵빵하게 나와도 사진쟁이는 땀으로 온몸을 여러 번 씻어냅니다.

 

 행사 자리 사진찍기는 손님들 구경거리를 가려서는 안 되기에 잘 숨어 다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옆지기 아니고는 ‘밥 먹으면서 찍어야지요’ 하는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없고, 따로 챙겨 주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호텔밥이 맛있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고픈 배를 안 채우면서 일하고픈 생각은 없었지만, 고픈 배를 넉넉히 채워 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사진일을 가까스로 다 끝내고 ‘거의 비워진 차림상’을 돌며 찌끄레기를 주워먹어도 허거프곤 합니다.

 

 그러나, 사진기를 든 몸이기에 이렇게 뒹굽니다. 사진기를 든 몸이라서 이처럼 복닥이며 삽니다. 몸이 고달파도 내 사진 하나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얼마든지 끼니를 거릅니다. 마음이 지쳐도 내 사진 한 장을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내 돈까지 들여 사진을 만들어 주어도 홀가분합니다.

 

 전속 사진기사들과 견주어 많이 뒤처지는 장비라 할지라도 거리낄 까닭이 없습니다. 내 렌즈가 모자라면 가까이 다가가서 찍으면 됩니다. 얼른 찍고 뒤로 물러나거나 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서 앞모습을 안 가리면 됩니다. 저는 불을 안 터뜨리고 찍는데, 이러자면 필름감도를 높여야 합니다만, 불을 터뜨리는 사진은 이런 사진대로 맛이 있고 나쁘지 않으나, 불이 아닌 형광등불이라 하여도 자연스럽게 사람들 얼굴과 몸에 내려지는 빛줄기를 따라서 찍는 사진이, 알갱이가 조금 거칠다 하더라도 느낌은 한결 부드러우면서 따뜻하다고 봅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제가 1/15초 사진이나 1/8초 사진, 때로는 1/4초 사진이나 1/1초 사진과 1/0.5초 사진, 밤골목에서는 3∼4초 사진을 거의 흔들림없이 찍을 수 있던 까닭 가운데 하나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혼례식장과 돌잔치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흔들려도 안 되고 놓쳐도 안 되는 잠깐 사이에 지나치기 쉬운 행사 자리 사진’을 ‘불 안 터뜨리고 세발이 안 쓰고 손님들 눈에 거슬리지 않게끔 잽싸게 찍고 서둘러 비켜 주도록’ 찍어 오면서 시나브로 ‘두 팔을 세발이로 삼으며 사진찍기’가 몸에 배지 않았으랴 생각하곤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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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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