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PC방을 애용하는 초등학생들은 '문화상품권'을 선호한다.
 PC방을 애용하는 초등학생들은 '문화상품권'을 선호한다.
ⓒ 구자민

관련사진보기


초등학생 한 명이 서점 문을 박차고 달려 들어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있던 5000원짜리 하나를 꺼내 주인에게 건넨다. 주인과 손님 사이엔 말이 없다. 주인은 서랍을 열어 돈에 상응하는 도서상품권 하나를 준다. 자연스럽다. 한두 번 있었던 거래가 아닌 게 분명하다. 아이는 상품권을 받자마자 곧장 다시 서점 문을 박차고 어디론가 향한다.

평소에도 초등학생이 자주 서점에 들르는지 주인에게 물었다. 자주 오는 단골손님이란다. 궁금증이 생겼다. 동네슈퍼에서 껌을 사듯, 그렇게 동네서점에서 도서상품권을 사들고 나가는 초등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서점 주인에게 좀 더 물었다.

"그거 전부 게임 아이템을 사려고 하는 거지. 하루에도 초등학생 중학생 다 합쳐 20명 정도가 사가는 것 같애. 처음에는 나도 잔소리해봤지. 솔직히 장사하는 입장이라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내 말은 전혀 먹히지가 않아. 듣는 둥 마는 둥."

초등학생은 문화상품권의 보고?

경남의 모 대학교 앞에 위치한, 비교적 큰 서점 축에 드는 G 서점에도 들러서 물었다. 역시 상품권 취급점이다. 정말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구입하는지 궁금했다.

"하루에도 몇 명씩 다녀간다. 주로 초등학생 중에서도 고학년들이 많이 산다. 인터넷 충전을 목적으로 사간다. 실제로 구입한 상품권으로 도서를 구입하는 비율은 10%도 안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상품권으로 서점에서 직접 책을 구입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워낙 온라인 문화가 발달해서…."

요즘 초등학생들은 문화상품권을 많이 산다. 상품권을 사이버  캐시로 바꿔 게임아이템을 구입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네 PC방에 들려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한 초등학생에게 문화상품권을 사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문화상품권요? 캐시로 바꿔서 아이템 사려고요. 그런데 저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사요."

게임에 정신을 빼앗긴 터라,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한 초등학생은 받은 용돈을 아예 문화상품권 구입에 모두 소비한다고 한다.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아는지도 물었다. 간단한 답변이 날아왔다.

"모를걸요!"

'문구세트 사절, 문화상품권 밖에 안 받음'

반면, 초등학교 6학년생 A군은 "부모님도 다 알아요!"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게다가 도서상품권은 생일선물로 받고 싶은 물건 1위란다.

"애들이 다 알아서 (상품권) 사줘요. 부모님한테도 선물 대신 상품권을 받는 적도 있고요. 한번은 생일날 애들이 사준 상품권을 다 모았더니 제 아이디로 등록된 캐시가 10만원어치가 된 적도 있어요."

당연한 듯, 그리고 자랑하듯 말했다. 나도 게임을 자주 하는 편이라서 뭐라 말할 입장은 못 됐다. '이놈들 때문에 내가 온라인 게임에서 번번이 졌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아이템을 들고 있는 유저들에게 이길 확률은 낮다. 문화상품권이 도서·음반·영화 등 다양한 용도가 있는 것에 대해서 무지한 학생도 있었다.

"전 아예 생일날 초대장에 문구용품은 안받는다고 써요. 선물은 무조건 상품권만 받는다고 하고요. 당연히 게임 아이템이죠. 그거 말고 다른 용도가 있나요?"

좀 너무 하다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게임도 어찌 보면 문화의 일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분명히 교육적일 것 같지는 않다. 초등학교 근처에서 떡볶이며 어묵 등을 파는 분식점을 운영하시는 40대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다. 그녀는 역시 슬하에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었다. 이미 초등학생들이 상품권을 온라인 캐시로 바꿔 쓴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도서상품권을 (아이템 사라고) 딸에게 사준 적은 없지만, 다 알지. 요즘 초등학생들 다 그러는 거…. 애들 휴대폰은 대부분 부모가 정액제 요금제로 끊어주니까 그걸로 결제 못 하니까 상품권으로 대신 사는 거거든. 사실 컴퓨터 게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지. 애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말릴 수도 없고. 왜 말릴 수 없나 하면 아줌마들이 드라마를 안 보면 대화에 끼질 못하는 것처럼, 너무 말리면 애들 친구가 없어질까봐 그러는 거야."

분식집 한편에서 어묵을 드시던 아저씨 한분도 대화를 엿듣더니 말씀을 덧붙였다.

"요즘 애들 머리가 너무 비상해."

"순수하게 게임 자체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초등학생이 가장 많이 한다는 한 MMPRG의 회원 가입 화면. 확실히 '평생무료'라지만 초등학생들은 평생 돈을 낸다.
 초등학생이 가장 많이 한다는 한 MMPRG의 회원 가입 화면. 확실히 '평생무료'라지만 초등학생들은 평생 돈을 낸다.
ⓒ 구자민

관련사진보기



'동네' PC방에 가보았다. 생생한 현장의 느낌(?)을 얻고 싶었다. 불행히도 평일이라 한산했다.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했다. 대신 PC방 주인아저씨와 오랜 대화를 나눴다. 평소 내가 자주 가던 PC방이라 대화하기도 수월했다.

"PC방 개업한 지 3년 넘었는데, 개업할 때부터 문화상품권 긁는 초등학생들 많이 봤지. 어른들 핸드폰·신용카드로 결제하는데, 애들은 결제할 방법이 있나. 그러니까 문화상품권 사 와서 긁는 거지. 나도 초등학생 딸이 하나 있는데, 게임은 잘 안하지. 그런데 딸한테도 도서상품권 사준 적 있지. 여자 애들은 자기들 홈피 꾸민다고 거기 돈 다 쓴다. 친구들 홈피 들어가면 잘 꾸며져 있는데, 자기 홈피는 칙칙하고 그러면 비교되니까…."

특히, MMRPG(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 같은 경우, 온라인 게임 상에 아이템이 드롭(사용자가 얻을 수 있게 아이템이 자동으로 게임에 등장)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그 아이템들은 무료로 지급되는 기본 아이템이다. 캐시템, 즉 온라인 캐시를 통해서만 살 수 있는 아이템은 유저들이 돈을 주지 않고서는 절대로 드롭을 통해 얻을 수 없다.

"미성년자로 회원 가입을 하면 캐시사용이 안되도록 해 놓은 곳도 있고, 부모 동의를 철저하게 구하도록 약정을 해놓은 곳이 있는데, 그럼 뭐해, 자기들 부모님 주민번호로 회원 가입 다하고, 모르긴 몰라도 순수 자기 아이디로 만든 아이디가 별로 없을 거야.

인터넷이라는 게, 공짜다 무료다 하면서 무료가입이다 머다 하는데, 죄다 유료가 아닌 게 뭐 있어? 온라인 게임회사에서 전부 현금으로 아이템을 살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놨는데. 게임 회사들 이익 창출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건 아는데, 초등학생들이 아이템 사려고 현금으로 거래하고 그러는 것은 교육상 안 좋다."

인터넷 초강대국, 초등학생들 교육상 좋은 것일까?

'아이템매니아'라고 하는 게임 아이템을 전자상거래로 가격을 매겨 거래하는 사이트의 회원 수는 약 500만명(2008년 11월 기준)이고 월 평균 75만건(2008년 8월 기준)의 물품을 중개하고 있다. 비단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게임 아이템을 향한 누리꾼들의 열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초등학생과 문화상품권 그리고 온라인 게임. 인터넷 강국이고 현존하는 큰 문화적 현상이기 때문에 크게 지적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뭔가 찜찜하다. 과도한 우려지만 이 또한 일종의 '초딩'만의 '바다이야기'는 아닌지 걱정된다.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된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성탄절, 25일을 이틀 앞두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 나는 성탄절 전날 베게 밑에 양말을 놔두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 밤새 부모님(?)이 놓아주실 예쁜 포장지에 든 퍼즐 놀이나 장난감 자동차 등을 기다렸다. 혹시나 양말이 작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내가 느꼈던 그러한 설렘을 안고 성탄절 새벽, 자는 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생들은 잠자리에 들면서 '득템'(아이템을 얻는것)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앞으로 아이들은 양말 대신 흰 봉투를 배게 밑에 놓고 자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태그:#문화상품권, #온라인게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