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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바 폐인'을 양성하며 종영한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믿기지 않겠지만 인터넷 상에선 아직도 드라마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3일 18회로 종영했고, 스페셜 방송까지 나간 마당에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베바> 공식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이나 '다음 텔레비존'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지금 인터넷은 가상스토리 쓰기로 북적인다.

인터넷에서는 아직도 <베바>가 계속된다

포털사이트 다음 텔레비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지현'의 '베바 한달 후'.
 포털사이트 다음 텔레비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지현'의 '베바 한달 후'.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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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를 딸칵거리며 무엇인가 클릭하는 손 보이면 모니터 화면에 새로 도착한 메일이 보인다.
제목 : 강건우입니다~
망설임 없이 새로 온 편지를 클릭하는 강마에의 얼굴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 역력하다.
건우E : 선생님 가신 지 오늘이 꼬박 36일째랍니다.
강마에 : (혼자 읊조리며) 날짜는 뭐 하러 새고 있어? 그렇게 한가해?
건우E : 루미가 말해줘서 알았어요. 벌써 한 달이 된 게
강마에 : (뜨끔해 입술만 이죽이는)…
건우E : 잘 계시죠? 선생님 제 메일 수신확인은 꼬박꼬박 하시면서 답장 한번 안 보내시는 거 보면 아주 잘 계시는 거라고 루미가 말하더라구요.
강마에 : (혼자 또 읊조리며) 얘는 왜 이렇게 말끝마다 루미, 루미 노래를 해! (쯧! 하는 표정)
건우E : 지금 또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셨죠?
강마에 : (흠칫 놀라 괜히 집무실 슬쩍 감시카메라라도 달렸는지 살피는) …
건우E : 사실 지금 루미 옆에 있는데 루미가 옆에서 얘기하는 거 제가 받아 적고 있는 거거든요.
강마에 : (순간 눈빛 잠시 흔들리다 모니터로 집중하듯)…

- 텔레비존 '지현'님의 '베바 한달 후'의 일부

종영했지만 아직도 뜨거운 홈페이지

'혹시, 홍자매(베바 작가)가 쓰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기존 강마에(김명민)와 강건우(장근석)의 말투·캐릭터를 잘 살렸다. 대본이지만 읽다보면 마치 TV 화면을 보고 있는 듯 장면 장면이 상상될 정도로 생생하다. '베바 폐인'들도 이 가상시나리오에 푹 빠졌다.

한 누리꾼은 "도대체 지현님 뭐하시는 분입니까? 이쪽 일 하시거나 배우시는 분입니까? 그냥 취미로 쓴다고 보기엔… 읽는 사람 기죽을 만큼 잘 쓰시네요(평안)"이라고 칭찬했고 또 다른 누리꾼은 "지현님 글로 시즌 2 만듭시다(hanna의 기도)"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다음 텔레비존을 들끓게 만드는 지현의 '베바 한달 후'는 <베바> 종영 다음날인 14일부터 게시판에 올라왔는데, 27일 현재 11부까지 나온 상태. 이 시나리오의 큰 줄거리는 뮌헨필에서의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강마에가 두루미 때문에 다시 한국에 들어오고 그 뒤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펼쳐진다는 것.

이에 못지않게 <베바> 홈페이지도 뜨겁다. 시청자들의 상상이 가미된 19회, 20회, 21회…가 '내가 쓰는 드라마' 코너로 끊임없이 밀려들어오고 있기 때문. 드라마가 끝난 지 2주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 100여 건의 가상시나리오들이 게시판 자리를 앞 다투어 차지했다. 인기 있는 가상시나리오의 경우 30여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마치 드라마를 기다리듯 가상시나리오를 기다리는 독자들도 부지기수.

iMBC <베토벤 바이러스> 공식홈페이지. '내가 쓰는 드라마' 코너는 드라마가 끝난 뒤부터 더 북적이고 있다.
 iMBC <베토벤 바이러스> 공식홈페이지. '내가 쓰는 드라마' 코너는 드라마가 끝난 뒤부터 더 북적이고 있다.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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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에 '베바 in London11'을 쓰는 이동연(아이디 a19820323)씨는 이미 '유명 작가'나 다름없다. 앞서 나온 '지현(노지현)'씨도 홈페이지에 같은 글을 올리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인기 만점이다.

이동연씨가 쓰는 '베바 in London11'에선 드라마 마지막에 뮌헨필로 자리를 옮긴 강마에가 어찌어찌해서 영국 런던 왕립음악원 교수로 부임하게 되고, 그곳으로 루미와 건우가 유학을 온다는 스토리.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환상의 커플>의 도도한 캐릭터 '안나 조'가 지휘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나온다는 것.

드라마 <베바>에 이어 가상시나리오에 푹 빠져버린 시청자들은 "재촉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수시로 확인하게 되네요. 담 편은 언제?(조영아)", "요즘 내가 쓰는 드라마 보는 맛에 살아요! 담편 완전 기대돼요(박정애)"라고 원고를 재촉하기도 하고 "지나친 스킨십은 좀 어색할 듯… 에 한 표! 자고 있을 때 도둑 키스 정도?(이은정)", "키스신 있는 건 좀 이상할 거 같아요(최지은)" 등의 요구를 하기도 했다.

iMBC '내가 쓰는 드라마' 코너를 기획한 웹운영팀 김재운씨는 "인기 드라마들 같은 경우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면 아쉬움을 달래려고 시청자 게시판에 후속 스토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면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겠다 싶어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베바 같은 경우 조회수도 높고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다"며 "드라마 종영 후에도 커뮤니티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팬픽, 참여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겐 '우물'

KBS2 드라마 <내가 사는 세상>. 드라마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 홈페이지에도 가상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상상작가'란 코너가 마련돼 있다.
 KBS2 드라마 <내가 사는 세상>. 드라마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 홈페이지에도 가상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상상작가'란 코너가 마련돼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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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시나리오 쓰기는 현재 방송중인 KBS2 월화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하 그사세)에서도 인기다. <그사세> 홈페이지 '상상작가' 코너에선 시청자들의 꿈틀거리는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코너의 콘셉트는 드라마 본 방송을 본 시청자가 추후 이어질 내용들을 나름대로 상상해 보는 것.

기존 틀을 벗어나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낸다는 것이 어렵고 자신이 상상한 것들을 누군가에게 공개하는 것이 조금은 신경 쓰일 법도 한데, 이 코너에 대한 반응은 사뭇 뜨겁고 진지하다. 방송 한 달이 지난 26일 현재 총 274건의 시청자 글이 올라와 이 코너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런 가상시나리오 쓰기는 '팬픽션(fan fiction)'의 줄임말인 '팬픽'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팬픽은 인기 있는 대중문화 작품을 팬들이 기존 스토리를 비틀고 더해 재창조하는 것을 말하는데, 주로 10대~20대 사이에서 인기다. 이런 팬픽문화는 일본에서 처음 시작됐고 우리나라에선 1995년 그룹 HOT의 팬픽이 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팬픽문화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젊은 세대들 마인드가 TV를 보는 형태가 아닌 외부 콘텐츠를 자기화 하려는 것으로 가고 있다"며 "이런 것들이 UCC나 패러디 등으로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팬픽(가상시나리오 쓰기)"이라고 말했다. 또 "단지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수동적이기 보단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요즘 많은 팬덤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고 부정적인 것이 많지만 드라마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팬 문화는 긍정적인 것들이 많다"며 "드라마 콘텐츠는 젊은 세대들만 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세대를 아울러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팬 문화도 성숙돼 갈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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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상시나리오, #팬픽, #베바, #드라마 폐인, #베토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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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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