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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을 잡기도 하고 수영을 하기도 하면서 즐거워 하는...
▲ 나의 바다 고동을 잡기도 하고 수영을 하기도 하면서 즐거워 하는...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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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점, 쇠라도 녹일 듯한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손바닥만한 그늘이 아쉬운 8월. 사람들은 너도나도 좁아터진 삶의 현장에서 잠시 벗어나 바다로 계곡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휴가철의 절정을 이루는 8월 첫째 주, 인산인해를 이룬 유명한 피서지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겠지만 나는 나만의 특별한 피서지 고향 마을로 간다.

이름난 명승지도, 유명한 피서지도 아닌 내 고향 조용한 마을, 그 쪽빛 바다는 어렸을 적에 내가 뛰놀았던 동네 골목길과 공터, 마당, 오솔길만큼이나 가깝고 친근하다. 그 물빛과 물 감촉, 해감내는 더 없이 친근하고 정답다. 수없이 오르내렸던 바닷가, 높고 넓은 바위들, 수도 없이 풍덩거리며 뛰어들었던 바닷물, 자갈길과 바위 위를 마음껏 벗은 발로 뛰고 날다가도 바다에 뛰어들면 그 넓고 깊은 바다는 한 없이 넓은 가슴으로 날 안아 어르고고 달래고 재롱부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고동도 잡고 꽃게도 잡고...
▲ 나의 바다 고동도 잡고 꽃게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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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에 다시 간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고 천천히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면서 폭염 속을 내달려 당도한 고향마을은 언덕을 넘어 마을에 접어들자 익숙한 해감내가 나를 먼저 반긴다. 그런데 여기에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 있었으니, 옆에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다. 작년 여름, 내가 놀았던 고향 바다에 한번 뛰어들어 바다와 친해진 남편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바다와 친해졌나 보다. 그는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고향바다를 그리워했다.

그 바다에서 고동도 잡고 수영도 했던 지난여름을 추억하며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고향 집보다 먼저 반기는 바다를 보며 나보다 더 좋아하는 남편의 환한 얼굴은 고향 부모님 집에 도착하자마자 막내처남을 찾는다. 처남을 보디가드 삼아 함께 수영하고 고동을 잡으면서 즐거운 휴가를 보내리라 잔뜩 기대하고 온 남편이다.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고맙게도 막내처남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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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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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바다 깊이 잠박질하고 있다..
▲ 나의 바다 남동생이 바다 깊이 잠박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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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도록 밭에서 일을 하던 부모님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밤바다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와 거닐다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 새벽을 깨우는 고향의 바다는 아침노을로 붉게 물들고, 날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퍼지면서 점점 태양은 대지를 달구기 시작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로 나가기도 겁이 나건만 남편은 아랑곳없이 자꾸만 바다로 나가자고 한다. 남편은 2층에 있는 막내처남을 부르고 튜브에 바람을 넣고 고동을 잡아넣을 프라스틱 통을 들고 뜨거운 태양이 바위라도 녹일 듯한 폭염 속으로 나아간다.

와~ 뜨겁다 뜨거워, 그러나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끄덕하지 않는 남편,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닭섬 맞은편 긴 방파제 아래 고동이 많다는 동생의 말에 동생과 남편은 옷 입은 채로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며 고동을 잡느라 신이 나 있다. 어제, 생각 없이 반팔 옷을 입고 하루 온종일 햇볕에 노출해 있다가 거의 화상을 입다시피 한 나는 긴팔 옷에 모자와 우산까지 쓰고 나와서 그들 두 사람이 바닷물에서 노는 것을 보며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물안경을 끼고 바다 물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 나의 바다 물안경을 끼고 바다 물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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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을 잡으면서 좋아하는 남편과 남동생...
▲ 나의 바다 고동을 잡으면서 좋아하는 남편과 남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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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바닷가 바위에 앉아 바닷물 속에서 즐거워하는 모습만 보아도 수영하는 것처럼 좋았다. 남편은 마치 내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바다와 친해졌다. 온 몸을 감싸고도는 맑은 물빛, 그 깊고 넓은 바다와 유쾌한 만남 속에 취해 있었다. 억지로 나왔지만 막내 동생도 모처럼 바다에 나와 즐거운 모양이었다.

방파제 옆에서 고동을 잡다가 장소를 옮겨간다. '가 끝에'라고 불렀던 높은 바위, 기암절벽들이 있는 깊은 바다, 마을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아간다. 저 멀리 수평선 끝에 가덕도가 보이고 가덕도와 거제도를 이을 가거대교 밑뿌리가 지척인 듯 보인다. 이곳엔 참 오랜만에 와 본다. 이곳 또한 수도 없이 왔던 시간의 흔적, 추억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높은 바위 위에 올라 깊고 푸른 바다 속으로 다이빙하기도 했고, 고동이나 홍합을 따느라 잠수를 하면서, 혹은 더 멀리 깊은 바다로 헤엄쳐 나가기도 했던 곳이다. 바다 쪽으로 내뻗은 높은 바위를 마주하고 있는 기암절벽은 깎아지른 듯 바다를 굽어보며 내리뻗고 있다. 그 아래 맑은 물, 물 아래 자갈돌과 물고기조차 환히 보이는 이곳은 깊이 파인 어두컴컴한 굴속까지 바닷물이 깊이 드나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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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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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다만 세월에 풍화된 바위들이 더 많은 세월의 흔적을 지니고 있을 뿐. 물안경을 번갈아 끼기도 하고, 튜브를 번갈아 타기도 하면서 고동도 잡고 수영도 하는 남편과 남동생의 모습은 마치 세상 근심이라곤 없던 유년시절의 해맑은 아이들 같다. 남편은 우리보다 먼저 와서 수영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어 물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물과 친밀해져 있다.

어쩌다 큰 고동을 잡았다고 좋아하고, 물 속 바위 사이로 지나가던 꽃게를 잡았다고 좋아 소리치는 모습이 천상 아이 같다. 문어가 나타났다고 좋아하다가 어느새 깊은 바위 속으로 쏘옥 들어 가버려 놓치자 안타까워하는 모습까지, 그리고 예전에 수영장에서 물놀이하며 배웠던 수영실력으로 마음껏 헤엄치며 놀고, 튜브를 타고 놀며 좋아한다. 처음 생각과 달리 많이 잡진 못했지만, 고동, 해삼, 성게, 꽃게 등 다양한 거리들을 잡고선 좋아서 양쪽 입 끝이 귀밑에 걸린다.

쪽빛 바다에서 헤엄치며 좋아하고 있는...
▲ 나의 바다 쪽빛 바다에서 헤엄치며 좋아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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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도 맑아라~
▲ 나의 바다 물빛도 맑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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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부터인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바다를 나는 물에 뛰어들어 맘껏 헤엄치며 놀기보다는 그저 바라만 보거나 발 담그고 관망하는 것으로 족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릴 땐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맘껏 얕은 바다에서 깊은 바다까지 첨벙거리며 뛰어들었고 바닷물에서 바닷물과 서로 몸을 섞으며 놀았건만, 그렇게 바다가 좋아 바다에 살다시피 했건만, 점점 철이 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닷물이 무서워졌다고나 할까.

어릴 때 마음껏 재롱부리며 바닷물과 친밀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자라면서 부모한테 부리던 재롱을 점점 부리지 않게 되고, 데면데면해 보이지만 그 깊은 속정은 여전하듯이, 지금은 바다를 바라보거나 바닷물에 발을 담그거나 바다의 노래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 어린 시절, 그렇게 즐겨하던 그 물놀이를 남편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맘껏 헤엄치고 바다가 주는 고동을 잡으면서 작열하는 여름태양 아래 섬 아이처럼 좋아하고 있다.

바다와 첫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어도 집에 갈 생각을 않는다. ‘여보~조금만 더~’하면서. 세 시간이 넘도록 바다와 놀아도 아쉬움이 남는 남편, 우리보다 먼저 와서 수영하던 아이들과 젊은이가 먼저 가 버렸다. 처남도 가고 없어 갑자기 바다가 텅 빈 듯하니 혼자 바닷물 속에 있기가 더럭 겁이 났나보다. 하는 수없이 아쉬워하며 집으로 향한다.

바다로 향해 내뻗은 넓고 높은 바위 끝, 저 멀리 가덕도와 가거대교 연결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 나의 바다 바다로 향해 내뻗은 넓고 높은 바위 끝, 저 멀리 가덕도와 가거대교 연결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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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밭으로 향한다. 부모님이 봄부터 여름까지 키운 작물들이 가득한 보배로운 땅으로 걸음 한다. 부모님은 오후 내내 밭에서 콩을 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에야 밭에 도착한 우리는 옥수수를 따고, 깻잎을 따고 고구마 줄기랑 고추 등을 딴다. 저녁엔 아버지가 배를 타고 나가 어망에 걸린 생선 과 문어 등 그물에 걸린 것으로 저녁상에 올리고, 또 오늘 낮에 잡은 고동을 삶아 고동 반찬도 하여 맛나게 함께 먹는다.

바다와 사랑에 빠진 남편은 내 고향의 바다와 나누었던 밀애를 아마도 추억으로만 남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하고 아늑한 내 고향 쪽빛 바다와 나누었던 거부할 수 없었던 사랑,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처럼 맘껏 바다와 친밀하고 내밀한 기쁨을 공유했던 시간들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계절이 가고 다시 여름이 돌아오면 내 고향의 바다와 재회를 꿈꾸며 또 바다와 재회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나의 바다, 내 고향 바다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바다와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바다와 가까이 있게 될 것이고, 이 바다를 만날 때까지 그리워 할 것이다. 그리고 담담한 물빛 사랑을 배워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 고향바다를 함께 생각하며, 함께 추억하며 또 그리워하면서 계절이 바뀌고 다시 여름이 찾아오면 또 그렇게 나의 바다를 만나러 달려 갈 것이다.

나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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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덧붙이는 글 | 거제시 장목면 관포 앞바다입니다. 이곳 인근에는 농소해수욕장, 흥남해수욕장, 김영삼 전대통령 생가 등 이 있습니다.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글 입니다.



태그:#여름피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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