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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시마 섬 집회
 이와이시마 섬 집회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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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가 내렸던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기차와 배를 갈아타며 2시간 남짓 가면 야마구치현(山口縣) 가미노세키정(上關町) 이와이시마(祝島)라는 작은 섬이 나온다.

주민이라고는 570명에 불과한 이 작은 섬에서 1000번째 집회가 지난 6월 14일 열렸다. 매일 같이 열려도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데, 1주일에 한 번씩 월요집회로 1000번째를 맞았다. 지난 27년 동안 섬에 초상이 나거나 폭우가 내릴 때를 빼고는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82년 6월 일본 정부와 중국전력(中國電力)은 가미노세키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현재 일본은 55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고, 13기의 건설을 추진 중이다. 그중 2기의 신규 발전소를 계획하고 있는 예정 부지가 바로 이와이시마에서 불과 4km 떨어진, 마주보고 있는 섬, 나가시마(長島)이다. 여기에 137만kW급의 가미노세키 원자력발전소 1, 2호기를 짓겠다는 것이다.

주민들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와도 같았다. 섬 주민들은 어협(어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중앙 정부는 '낙도 진흥책'을 구실로 한편으로는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추진파인 가미노세키정장(上關町長)을 통하여 압력을 넣었다. 환경 영향 조사가 시작되면서 어업보상금의 절반이 지급되었지만, 어민들은 당당히 거부하였다. 지금 이 돈은 법무부에 공탁금으로 들어가 있는데, 이 중 '환경영향평가 피해 보상금' 2200만 엔은 국가에 귀속 조치되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어협 통합을 앞두고 이와이시마 어협이 지고 있던 부채 2700만 엔을 갚는 데 쓰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약점을 잡히지 말자"는 주민들의 결정으로 포기하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던가?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전국에서 성금이 쇄도했고, 그렇게 모인 정성으로 빚을 갚을 수 있었다.

27년에 걸친 반대 운동으로 이 자그마한 섬은 일본 '반핵 반원전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나 남은 일정이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전력회사는 환경 영향 조사와 지자체의 동의를 거쳐 '원전개발 기본계획'을 발표하였고, 이에 따라 2005년부터 2번이나 연기하면서 현재까지 상세 조사를 하고 있다. 이것이 끝나면 안전 심사와 원자로 설치 허가 심사 등의 일정이 남아 있다.

처음 반대 운동을 시작할 당시, 섬 주민은 1300여 명이었다. 27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인구도 570여 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70~80대의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이 섬은 '쓰나메리'라 불리는 작은 고래와 천연기념물인 매 '하야부사'로 유명하다. 특히 비파차(枇杷茶)는 섬을 대표하는 특산물인데 일본 전체의 60%를 생산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 진시황이 불로초를 가져오도록 보낸 일행이 마침내 찾은 영생불멸의 명약이 바로 이 비파였는데, 돌아가려던 차에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 섬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그런 비파를 아이러니하게도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라고 한다. 속에 탈이 난다나?

주민들은 어업 보상금과 낙도 진흥책을 거부하는 대신, '핵발전소 교부금에 의존하지 않는 섬 부흥 운동'을 자체적으로 벌여 나가고 있다. 대형 어선과 그물을 금지하고 낚시와 작은 그물로 조업을 한정하여 어획량을 조절하고 섬 주변의 환경을 지켜나갔다. 덕분에 지금도 주민들은 멀리 나가지 않고도 섬 주위에서 충분한 고기를 잡고 있으며, 이 섬은 유명한 바다낚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와이시마 섬 집회
 이와이시마 섬 집회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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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회칠을 한 아주 오래된 담장길(일종의 옛 골목길) 등 섬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비파 열매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와 조생 감자를 특산품으로 개발하기도 하였다. 8월에는 야마구치현(山口縣) 지정 무형민속문화재인 신무(神舞)라는 바다 제사를 개최하는 등 섬 주민들이 똘똘 뭉쳐, 지원금에 고향을 팔아버리거나 외부에 의존하기보다 이 섬만의 깨끗한 환경과 자원을 개발하여 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섬 주민 150여 명과 각지에서 모인 200여 명이 함께한 1000번째 반대 집회 인사말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이와이시마 주민의 모임' 야마토 사다오(山戶貞夫) 대표는 "섬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은 염원과 원자력 발전소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대 운동을 하겠다"고 하였다. 집회가 끝나고 할머니들을 선두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행진이 진행됐다. 가만히 보니 집회에 참석한 주민의 80%가 할머니들이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 운동처럼 '고향에 대한 애정과 미래세대 후손에 대한 책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어머니, 특히 할머니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감동시킨다.  

주민들이 싫다는 것을 강요하고, '결정은 정부가 내릴 테니 주민들은 순종하라'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이 있다. 할머니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타향을 떠도는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고향,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연 환경,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등이 바로 그러하다. 

핵 발전소 건설은 계속 추진되고 있지만, 27년 동안 계속 이어진 반대 집회 그 자체만으로도 이와이시마 주민들은 이미 승리했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은 채, 고향과 환경을 지켜나가겠다는 신념, 돈보다는 지금처럼 이웃과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는 삶을 선택한 이와이시마 부흥 운동 앞에서 핵발전소 추진은 허깨비에 불과할 뿐이다.

"바람이 불어 아름다운 섬이여, 다랑이 밭은 하늘로 향하고 부지런한 섬 사람들... 작은 항구에서 배는 나가고... 계속 속이려 하지만 원자불꽃에는 더 이상 안 속을 거야... 어디선가 잃어버린 것을 지금도 잊지 않고 전하고 있네, 손을 흔들며 대답해 주는 사람들... (이와이시마 찬가 중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삶의 터전으로부터 내몰리고 있는 계화도 어민들. 영광 원자력 발전소의 온배수로 시작되어 새만금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어버린, 부안 방폐장 추진으로 극심한 갈등과 고통을 겪은 위도의 주민들에게 정부도, 지자체도 대안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도 정반대의 선택을 한 일본 어민들의 인사를 뒤로한 채 떠나오는 길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이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현민 기자는 부안시민발전소 소장입니다.



태그:#이와이시마 섬, #반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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