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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반발로 촛불시위가 일어난 지 벌써 40여일이 지났다. 이 긴 시간동안 촛불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으며,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반대라는 주제에서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인 국정에 대한 반발로 주제가 더 커졌다. 게다가 경찰들의 과잉진압, 보수단체들의 맞불 집회, 정부의 미온 대책 등으로 인하여 촛불은 더욱더 붉고 강하게 타오르고 있다.

 

촛불집회는 이른바 '3박 4일 국민엠티'라 불린 72시간 철야집회와 6·10대집회 등을 통하여 국민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촛불민심이 얼마나 매서운지를 직접 보여주었다. 외신들은 한국 상황을 속속 전했고, 촛불집회에 대한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촛불문화제와 촛불집회를 넘어 '촛불항쟁'으로 가는 수순으로 보인다.

 

이러한 촛불항쟁의 분기점은 6월 20일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6월  20일까지 정부에 재협상을 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를 행하지 않을 시 아예 '정권퇴진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화물연대는 생계형 파업을 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장기전으로 갈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 그리고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2008년 6월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런 2008년 5~6월의 대한민국과 비교해 볼 만한 재미있는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2005년에 나온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로 혁명을 주제로 한 영화다. 이 영화와 2008년의 대한민국을 비교해 보면 놀랄 만큼 비슷하다. 영화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 같아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청와대 직원들과 장관들을 불러놓고 상영하고 싶은 영화다.

 

<브이 포 벤데타>에선 왜 11월 5일을 강조하는가?

 

 

<브이 포 벤데타>의 시작은 한 여성의 해설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 5일의 화약음모사건을!"

 

본래 이 말을 한 사람은 주인공인 브이이다. 브이가 한 말을 에비가 옮겨서 말한 것이다. 여 주인공인 에비 해몬드는 통금시간에 길을 나서다 밀고자들에게 붙잡히게 되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이때 브이가 등장하여 그녀를 도와준 후,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곳은 자유의 여신상과 낡은 성벽이 보이는 곳. 이곳에서 브이는 오늘이 11월 5일이라고 하면서 위와 같이 말하였다.

 

화약음모사건(Gunpowder Plot). 이 영화를 즐기려면 이 사건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이 사건은 영국 제임스 1세 때 일어났다. 제임스 1세는 가톨릭을 박해했다. 그런 제임스 1세에 반대한 가이 포크스(Guy Fawkes) 등이 의회 개원일에 맞춰 의사당 아래에 폭약을 설치해 놓았다가 들킨 사건이다.

 

참고로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였던 인물로서 결국 귀족들의 반감을 사 암살당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이 화약음모사건을 기려 가이 포크스 데이라는 감사절을 보내며 불꽃놀이를 하고 가이 포크스 인형을 들고 다닌다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브이(V)는 바로 가이 포크스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수다스러우면서도, 무거운 분위기의 기존 영웅들과는 다른 느낌 활짝 웃는 얼굴의 마스크를 쓰면서도 미묘한 느낌을 주는 모습, 단검을 자유자재로 이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모습,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나오는 명대사들을 줄줄이 읊는 그의 모습은 기묘한 느낌마저도 준다.

 

정부 말만 방영하는 BTN, 그리고 정부의 대변인 조중동

 

 

<브이 포 벤데타>에서 이 11월 5일이라는 날짜는 굉장히 중요하다. 브이는 400여년 후의 영국에서 화약음모사건의 부활을 꿈꾼다. 그래서 그는 0시가 되는 시점 정의의 여신상과 성벽을 폭파하려고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BTN이라는 방송사를 장악하여, 이곳에서 자신의 모습과 육성이 담긴 CD를 영국 전체에 생중계한다. 그리고 그는 그 방송을 통해 현실을 비판한다.

 

“제 생각에 우린 오늘 11월 5일을 슬프게도 더 이상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잠깐 내 자리에 앉아 대화하지 않죠. 물론 이들은 우리가 이에 대해 말하길 원치 않습니다. 저들은 지금도 전화로 소리치며 총을 들고 이리로 오고 있는 중이겠죠. 왜일까요? 왜냐하면 대화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죠. 대화는 항상 저들의 권력을 약화시켰습니다. 대화는 항상 방법을 제시해주기 때문이죠. 들으려고 하는 이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방법을요. 그리고 진실은 이 나라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 전에 앞서 BTN은 브이가 파괴한 성벽은 이전부터 정부에서 철거할 계획이 있었다고 하며, 그 철거한 기술자들이 성벽과의 작별을 위해 성대하게 불꽃놀이를 하였다는 말도 안 되는 뉴스를 보낸다. 이른바 정부에 이용당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사람들은 이를 보며 엉터리임을 알면서도 순응한다.

 

이러한 모습은 왠지 낯설지 않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현실이 이와 다를까? 거대한 보수언론인 조중동은 왜곡된 정보를 말해주며 독자들에게 이를 믿으라고 한다. 단적인 예가 이번 쇠고기파동이다. 5월 3일자의 기사를 보면, 중앙일보는 '정부 "미국 쇠고기 안전"', 조선일보는 '수입 쇠고기, 美 국내용과 같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정부 "美쇠고기 괴담 근거없어"'라는 제목으로 정부입장을 대변하였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게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이며, 오히려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에게 좌익이라고, 그리고 또 빨갱이라고 한다. 특히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나 조중동을 즐겨보던 이들이 특히 그러하다. 아직도 조중동의 기존 보도를 그대로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언론에 당하는 시민들의 모습, 이는 단순히 영화 속의 모습만이 아니다.

 

브이는 방송을 통해 정부는 시민들 간의 대화를 막는다고 한다. 이른바 언로의 차단으로서 정부가 말하는 것 외에는 모두 거짓이고 꾸며낸 것, 그리고 반정부를 목표로 하는 배후세력들의 음모라 규정한다. 이러한 모습 또한 낯설지 않다.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의 모습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으며 인터넷이라는 언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정부는 부단히도 노력하였다. 헌법에 명기된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불법집회라는 이름으로 공권력을 휘두르며 탄압한다. 그리고 이들, 즉 영화의 영국정부와 오늘날의 한국정부가 말하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는 놀랍게도 똑같다. 바로 국가의 안정과 안보의 확립이 그것이다.

 

11월 5일, 그리고 대한민국의 6월 10일

 

 

브이는 그의 방송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400년 전 한 위대한 시민이 11월 5일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게끔 했죠. 그리고 그가 희망한 건 공정과 정의, 그리고 자유의 심오한 의미를 세상에 일깨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무것도 보시지 못한다면, 현 정부의 범죄가 여러분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11월 5일을 그냥 보내라고 제안 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걸 여러분도 보신다면, 제가 느끼는 대로 느끼신다면, 그리고 제가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시면, 제 옆에 함께 서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로부터 1년 뒤 의회 정문 밖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함께라면 우리는 11월 5일을 절대로 다시는 잊히는 일이 없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브이는 11월 5일을 이렇게 강조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 모두들 혁명의 깃발 아래에 동참할 것을 부르짖으면서 방송을 마친다. 이 방송은 영화 속 영국인들이 모두 보게 되고, 이들은 이를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11월 5일, 영국인들은 브이가 부탁한 말을 그대로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그냥 보내버릴까?

 

대한민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6월 10일, 하나의 큰 사건이 있었다. 21년 전 이 땅에 있던 정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짓밟았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은 이러한 국민들의 분노를 터트리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이 땅의 많은 국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항쟁을 벌여나갔고, 20여 일간 500여 만 명이 참여하여 독재 타도를 외쳤다. 결국 국민의 뜻은 그대로 관철되었고, 정부가 6.29선언을 하게 만들었다.

 

그 1987년으로부터 21년 째 되는 2008년의 6월 10일. 이 땅에서는 또다시 불길이 솟아올랐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6월 10일을 기해 100만 명이 참여하는 대집회를 열자고 하였으며, 네티즌들은 이에 동조하여 6월 10일에 모두들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자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정부와 정치권을 당혹시키게 만들었고, 과연 그들의 말대로 6월 10일, 대규모 집회가 일어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윽고 6월 10일. 이때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을 보게 되었다. 수십만이 넘는, 과연 그 수가 얼마나 되는가는 말이 많지만 70만 명으로 추산하기도 하는 대규모 집회가 거짓말처럼 열렸으며, 이들은 미국 쇠고기 반대와 대운하 반대, 교육제도에 대한 반대 등 이명박 정부의 모든 정책에 대하여 규탄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그동안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하였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고 하였으며, 또한 국민들의 말을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말 뿐이었다. 정부는 촛불시위대를 막기 위해 컨테이너를 쌓아 거대한 성벽을 만들었으며 그 속에 모래주머니를 채워놓고 용접을 함으로써 길을 막아버렸다. 국민들의 비판은 어디까지나 ‘아웃 오브 안중’일 뿐이었고, 오로지 청와대를 보호하는 것에만 급급하였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인물은 아담 서틀러. 그 또한 국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였고 온갖 밀고자들을 풀어 국민들을 감시하였다.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 쏟아부었다. 그리고 브이와 관련된 행동을 하는 이들은 모조리 처벌하도록 방침을 내렸다.

 

하지만 브이는 영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가이 포크스 가면을 보내게 된다. 즉 이를 쓰고 11월 5일 영국 의회로 나오라고 한 것이다. 한 어린 여자아이는 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면서 장난을 치고 브이를 흉내 내다가 밀고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이를 본 시민들은 흥분하여 그 밀고자를 죽인다. 그리고 비로소 제대로 깨닫게 된다. 정부가 얼마나 추악한지를...

 

가이 포크스가면과 촛불의 결정적인 차이점

 

 

이렇게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2008년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흡사한 면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꼭 흡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 혁명을 상징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 그리고 2008년 대한민국에서 항쟁을 상징하는 촛불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리고 둘 중에서 가치가 더 높은 것은 누가 뭐래도 촛불이라고 하겠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 브이는 시민들을 질타한다. 정부가 이렇게 잘못된 길로 오게 된 것은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바로 당신, 즉 시민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브이는 그러한 시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11월 5일, 브이의 열망대로 시민들은 ‘깨우쳐’ 거리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다르다. 대한민국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특정한 어느 누구라고 말하기 힘들다. 바로 국민들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또한 문제를 제기하였기 때문이다.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여당은 이번 촛불항쟁에 배후가 있다고 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은 친북 주사파들이 배후라고 지목하였다. 하지만 모두 아니었다. 이번 촛불항쟁은 정말 기이하게도 배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광우병국민대책회의도 배후라고 보기엔 문제가 많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영화에 나오는 영국 국민들, 즉 ‘깨우쳐진 시민’이 아닌, ‘깨우친 시민’이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기 판단 아래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였으며 어느 특정한 단체나 사람에게 선동된 것도 아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이들은 들고 일어났으며, 그리고 이들의 행동은 세상을 바꿔나가는 촛불이 되고 있다.

 

작은 촛불은 작은 빛만 비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촛불들이 모여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역사를 쓰고 있다. 20년 후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었던 일은 교과서에,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2008년 5월과 6월을 기점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동안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투쟁으로 얻은 민주주의였지만, 정작 그 얻은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비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이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국민이 깨닫고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부르고 있다. 그동안의 세계사와 한국사에서 보이는 혁명과 항쟁은 어디까지나 소수의 사람들,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끌었고, 국민들은 그들의 뒤를 따라 자유와 평등을 외쳤다.

 

<브이 포 벤데타>도 예외는 아니어서 브이라는 지식인으로 인하여 다수의 국민들이 깨우친 케이스이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 깨우쳐진 시민들, 그들의 상징은 가이 포크스 가면이다.

 

이에 반해 촛불은 스스로 깨우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나 정부의 시책에 강한 비판을 던지고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자문한다. 이러한 상황에 오게 된 것은 사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거꾸로 가는 시계추를 바로잡기 위하여 오늘 이 순간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게 바로 촛불과 가이 포크스 가면의 차이다. 이제 대한민국사람들의 가슴에는 이 말이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6월 10일 광주 촛불집회. 6만명이 참여했다고 한 광주의 촛불집회. 금남로를 꽉 채운 시민들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아직 촛불집회가 시작하기 전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 송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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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2008년의 대한민국을 상호 비교하면서 써 본 글입니다. 


태그:#브이 포 벤데타, #촛불문화제, #촛불항쟁, #가이 포크스, #6.10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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