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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춘곤증과 숙취해소에 그만인 조기매운탕
▲ 조기매운탕 봄철 춘곤증과 숙취해소에 그만인 조기매운탕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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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잊지 못할 독특한 맛의 기억을 하나쯤 가지고 있다. 미식가든 아니든 우선 끼니를 떼우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먹다 보면 자신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음식이 몇 가지쯤 생기게 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손맛'혹은 '옛날 토속적인 맛'이란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어머니의 손맛, 토속적인 맛이란 어떤 맛일까. 이는 어릴 때부터 오래 길들여진 맛을 말하는 것일 게다. 까닭에 사람들은 어릴 때 자주 보았던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집, 어릴 때 자주 먹었던 그런 맛이 나는 음식이 입맛에 맞을 수밖에 없다. 물론 어릴 때 길들여진 음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음식이 혀를 한껏 희롱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운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 하더라도, 그 음식점 인테리어를 아무리 잘 꾸며놓았다 하더라도 어릴 때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그 음식 맛과 그 음식을 먹던 토속적인 분위기를 깡그리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주말이면 야외에 나가 시골스런(?) 분위기가 나는 집에서 향토음식을 찾는 것도, 미식가들이 전국의 맛있는 집을 찾아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어머니의 손맛이 나는 음식이 도심 밖에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도심 속에서도 자신의 입맛에 꼭 들어맞는 음식, 평소 자주 찾는 음식과 음식점이 있을 것이다. 오랜 벗이 오랜만에 찾아왔을 때 같이 가서 나눠먹고 싶은 음식, 춘곤증으로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울 때 힌트처럼 떠오르는 음식점 말이다.       

호남식당은 도화동 비탈길 골목에 있는 10평 남짓한 식당이다
▲ 마포 도화동 사람들의 음식 사랑방 호남식당은 도화동 비탈길 골목에 있는 10평 남짓한 식당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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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 묵은지, 멸치젓갈, 콩나물 등 푸짐하게 차려져 나오는 밑반찬
▲ 밑반찬 봄동, 묵은지, 멸치젓갈, 콩나물 등 푸짐하게 차려져 나오는 밑반찬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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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주머니들의 음식 사랑방

"뭘 먹을까?"
"글쎄요."
"마포에 가서 설렁탕이나 한 그릇 먹을까?"
"설렁탕보다는 얼큰하고 시원한 조기매운탕이 낫지 않을까요. 그 집 조기매운탕 먹으며 땀 한바가지 쏟고 나야 춘곤증이 도망칠 것 같은데요."

서울 마포구 도화동 우성아파트 비탈길 골목에 있는 10평 남짓한 호남식당. 이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여기저기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떠는 동네 아주머니들이다. 하지만 이 집 주인은 싫은 기색이 없다. 밑반찬이 떨어지는가 싶으면 얼른 다시 낸다. 그야말로 동네 아주머니들의 음식 사랑방이다.

그렇다고 이 집에 동네 아주머니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인 듯한 젊은 연인들부터 동네 아저씨,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차림표 또한 청국장, 우렁 된장찌개에서부터 갈치조림, 조기구이, 조기매운탕, 삼치구이 등 먹음직스런 음식들로 가득하다. 가격도 4천원부터 6천원까지, 그리 비싼 편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안한 것은 이 집 주인아주머니의 살가운 마음씨다. 전남 영암이 고향이라는 이 집 주인 박준임(47)씨는 두 명이 가서 음식 1인분을 시키며 밥 한 공기를 추가하면 오히려 2인 분량의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낸다. 그야말로 '음식 끝에 맘 상한다'는 투다.

음식을 다 먹은 뒤 후식으로 막걸리 한 병 시켜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반나절 이상 앉아 있어도 절대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밑반찬을 챙겨주며 "더 필요한 게 없느냐"고 물을 정도다. 게다가 이 집을 드나드는 손님들도 알아서 주인에게 예의를 차린다. 식사 때가 되어 손님이 몰리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싱싱한 봄맛을 전하는 봄동
▲ 봄동 싱싱한 봄맛을 전하는 봄동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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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료는 전남 영암에서 가져온당게

이 작고 허름한 식당은 지난해 여름 나그네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시인이자 언론인인 윤재걸(61) 선생과 함께 처음 들렀다. 그때 조기매운탕(5천원) 2인분에 막걸리 한 병을 시켰는데, 밑반찬과 조기매운탕을 어찌나 푸짐하게 내놓았던지 점심 때부터 저녁이 다가올 때까지 쉬어가며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나그네는 툭 하면 윤 선생과 함께 이 집을 찾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에 앉아 있으면 주인이 어찌나 살갑게 맞이하던지 마치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밥상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게다가 밥상 위에 오르는 멸치젓, 파김치, 촌된장, 얼가리나물, 묵은지, 콩나물, 제육볶음, 창포묵, 김, 봄동, 상추, 고추 등 밑반찬에서도 토속적인 고향 맛이 그대로 배어난다.  

"아니, 이렇게 푸짐하게 차려내면 남는 게 있어요?"
"여그 쓰는 모든 재료는 전남 영암에서 가져온당게. 그라고 밑반찬이 그 정도도 안 되가꼬는 밥을 제대로 못 먹제. 먹다 떨어지면 언제든지 말하씨요."
"아따, 매운탕에 빠진 조기가 팽이버섯만 물고 있는 게 아니라 참게다리에 우렁까지 물고 있구먼."

그렇게 그 집에 다니다 보니 나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하지 않으면 몸에 좀이 쑤실 정도였다. 특히 전날 밤 술을 많이 마셨거나 몸이 무거울 때면 그 집에서 끓여내는 얼큰하고 시원한 조기매운탕이 눈앞에 자꾸만 가물거리곤 했다. 봄동과 상추 위에 하얀 쌀밥을 올려 멸치젓갈에 싸먹고도 싶었고, 살짝 매운 풋고추를 촌된장에 푸욱 찍어 아삭아삭 씹고도 싶었다.
 
이 집 조기매운탕은 우렁, 참게다리, 새우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 조기매운탕 이 집 조기매운탕은 우렁, 참게다리, 새우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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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맛이 끝내주는 조기매운탕
▲ 조기매운탕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맛이 끝내주는 조기매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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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조기매운탕, 이게 최고여

지난 3월 중순, 그날은 는개 같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무렵이었다. 허기가 슬며시 지면서 갑자기 그 집이 번갯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 집에 가서 소주 한 잔에 조기매운탕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니 그저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킨 뒤 풋고추를 촌된장에 푸욱 찍어 먹고 싶었다. 

"어디 가서 저녁이나 하세. 어디가 좋을까?"
"그 집으로 가시죠? 봄비도 부슬부슬 내리는 데 고향집 같은 그 집에 앉아 조기매운탕에 소주 한 잔이 간절합니다."
"자네도 인제 전라도 맛에 포옥 빠졌구먼."

그날, 윤 선생과 나그네는 지하철을 타고 마포역에 내렸다. 그 집 앞에도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 집에 들어서자 주인이 "조기매운탕 드실 거죠?"라며 반갑게 맞이했다. 잠시 뒤 밑반찬과 함께 조기매운탕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1인분을 시켰는데 3인분은 족히 넘을 듯했다.       

이 집 조기매운탕의 특징은 다른 집 조기매운탕(팽이버섯, 두부, 쑥갓, 조기, 대파, 마늘, 콩나물, 무)과는 달리 참게다리와 바지락, 새우, 우렁 등을 덤으로 넣어 국물이 얼큰한 감칠맛이 맴돌면서도 술이 확 깰 정도로 시원한 게 일품이다. 소주 한 잔 마시며 조기를 발라먹는 달착지근한 맛도 그만이다. 국물 속에 든 바지락과 새우, 우렁, 참게다리를 건져먹는 맛은 보너스 중의 보너스다.

참게다리를 쪽쪽 빨아먹는 맛도 그만!
▲ 조기매운탕 속에 든 참게다리 참게다리를 쪽쪽 빨아먹는 맛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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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살은 입에 살살 녹는다
▲ 조기매운탕 조기살은 입에 살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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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 오늘은 막걸리 안 잡숴? 비오는 날은 막걸리가 제격인데…."
"아짐이 권하는 데 어찌 마다 하겠쑤. 두어 병 사다 주씨오. 대신 풋고추에 촌된장하고 봄동에 멸치젓갈이나 푸짐하게 주씨요."
"아따! 잘못하모 아제가 오늘 우리 집 기둥뿌리 뽑을랑가 싶소."

입맛이 떨어지고 온몸이 나른한 봄날에는 마포로 가자. 가서 누구나 살갑게 맞이하는 그 집 주인의 상쾌한 미소를 바라보며 숙취해소에 그만이라는 조기매운탕에 소주 한 잔 마셔보자. 그 집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으면 저만치 고향이 보이리라. 풋고추에 듬뿍 묻은 촌된장에서 어머니의 손맛이 가만가만 다가서리라.

나른한 봄철, 조기매운탕 먹으러 가세나
▲ 조기매운탕 나른한 봄철, 조기매운탕 먹으러 가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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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우리동네(학교) 맛집> 응모글



태그:#조기매운탕, #호남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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