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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 모항보건진료소를 찾은 주민이 진료를 받고 있는 모습.
 태안군 모항보건진료소를 찾은 주민이 진료를 받고 있는 모습.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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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후 서해안 복구 작업에 나섰던 사람들의 정신·육체적 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러한 적신호의 1차 대상은 물론 피해 지역 주민이지만, 태안을 찾아 기름 제거 작업을 한 자원봉사자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더해 정부가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엉터리' 작업복을 나눠주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 그동안 정부가 지급한 20만여 벌 중 7만여 벌이 원유 흡수를 막는 방제복이 아니라 먼지를 제거할 때 착용하는 방진복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지난달 21일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볼모로 잡힌 것은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의 건강이다.

프랑스도 1999년 12월 토탈사의 유조선 에리카호 침몰 사고 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방제 작업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 중 일부가 암과 피부병에 걸렸던 것.

얼마 전 에리카호 소송에서 승소한 101개 단체 중 하나에 속한 환경운동가 안느-로르 뒤기에씨를 인터뷰할 때도 이 이야기를 들었던 기자는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에리카 자원봉사자 협회'(아래 협회)의 로사노 퓔피노 회장을 지난달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건강 이상 30여명, 5~6명은 피부암... 작업 연관성은 아직 확인 안돼"

이 협회는 에리카호 사고 후 방제 작업 자원봉사자들의 건강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회원은 350여 명이다.

퓔피노씨는 방제 작업 참여자 중 "30여명"이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며, "이 중 5~6명이 피부암에 걸렸고 나머지는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제 작업 초기부터 이미 두통과 구토증 등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고, 원유를 직접 손으로 제거했던 이들 중엔 기절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며 "8년이 지난 지금도 피부병·습진·가려움증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발병이 방제 작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유출된 원유의 정확한 성분 규명 등에 관한 "조사를 8년 전 정부에 요청했는데도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

로사노 퓔피토씨.
 로사노 퓔피토씨.
ⓒ 에리카 자원봉사자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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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퓔피노씨는 "에리카호가 운반하고 있던 화물이 중유뿐이라는 토탈의 발표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추정했다. 기름으로 오염된 해안에 서식하는 어패류를 조사한 결과, 유류산업 폐기물 성분도 포함돼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그 근거다. 퓔피노씨는 중유 자체도 다량의 발암 물질을 함유하고 있지만, 유류산업 폐기물은 그보다 인체에 더 해롭다고 지적했다.

퓔피노씨는 사고 지역의 원유가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음을 알았으면서도 국민에게 숨겼다며 프랑스 정부를 강도 높게 질타했다. 적지 않은 자원봉사자들이 초기에는 방제복과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기름을 제거했던 것도 정부에서 작업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퓔피노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협회는 언제, 어떤 목적으로 결성됐는가.
"2000년 3월 9일에 결성됐다. 에리카호 침몰(1999년 12월) 사고가 발생한 지 3개월 정도 후이다. 원유가 인체에 유해하고 암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처음으로 발표한 한 과학기관의 충격적인 발표를 듣고 나서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단지 오염된 해안을 살리겠다는 착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방제작업에 참여했던 모든 자원봉사자들(벨기에인·아일랜드인·독일인·프랑스인 등 국적에 상관없이)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 협회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자원봉사자들 중에서 건강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을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몇 명이 건강 문제를 호소하고 있는가.
"30여명이다. 이 중에서 5~6명이 피부암에 걸렸고 나머지는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은 사람들도 차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 자원봉사자들의 건강 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된 것은 언제인가.
"2007년 1월 26일 '프랑스 3' 국영 TV의 <증거 자료>라는 방송에서 에리카호 사건 관련 내용을 1시간 30분에 걸쳐 방영했다. '에리카 화물선의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에리카호가 사고 당시 운송하던 물질이 토탈사의 발표와 달리 원유보다 더 위험한 유류산업 폐기물이라는 설을 비중있게 소개했다.

이 방송 직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던 여러 증상들이 방제 작업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방송 이후 자원봉사자들의 건강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됐고 한동안 많은 언론이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협회에 이들의 건강문제가 집중적으로 접수된 것도 이때부터다."

"'원유=발암 물질'임을 정부에서 숨겨"... 유류산업 폐기물 운반설도

'에리카 자원봉사자 협회' 홈페이지 첫 화면 이미지. 에리카호 사고의 여파가 해양 오염을 넘어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풍자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리카 자원봉사자 협회' 홈페이지 첫 화면 이미지. 에리카호 사고의 여파가 해양 오염을 넘어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풍자하는 것으로 보인다.
ⓒ 에리카 자원봉사자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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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카호가 운송한 물질이 유류산업 폐기물이라는 설은 어떤 내용인가.
"토탈사는 에리카호가 중유(oil heavy NO.2)를 운송하고 있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엄청난 양의 유황과 중금속 등을 함유해 인체에 유해하고 17가지 암 유발 성분까지 들어 있는 발암 물질이다.

그런데 '툴루즈 농학 상급 공립학교(Ensa)' 독물학 교수 레스코비치는 에리카호가 운송했던 물질에서 중유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성분, 즉 유류산업 폐기물(DIS, Dechets Industriels Speciaux) 성분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DIS는 중유보다 인체에 더 해롭고 암 유발 우려도 훨씬 높다.

레스코비치 교수는 에리카호 침몰로 오염된 프랑스 서해안에서 홍합과 여러 물고기의 세포를 채취, 1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그 세포들의 DNA가 변형돼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레스코비치 교수는 이러한 DNA 변형은 암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사람의 폐와 간에서 채취한 세포에 해당 오염 지역의 물질을 투입해본 결과 홍합이나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DNA 변형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레스코비치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증거 자료>가 방영된 2007년 1월, 영국 과학 잡지 <Environmental Toxicology and Phamacology>에 실리는 등 유럽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중 있게 논의됐다. - 기자 주)

우리 협회는 토탈의 발표와 달리 에리카호가 중유 뿐만 아니라 폐기물도 운송하고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에 정확한 조사를 요청했지만 거의 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구체적인 결과를 알려주지 않아, 에리카호 침몰로 오염된 지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채취한 물질이 어떤 성분으로 이뤄진 것인지는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 에리카호에 실렸다고 토탈사에서 밝힌 중유가 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
"이는 법적으로도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항이다. 탄화수소가 포함된 원유가 발암물질이라는 것은 토탈 쪽에서도 알고 있다. 2000년 초에 정부기관인 DASS(사회건강문제운영기관)가 도지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원유가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을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비밀로 한 사실이 드러났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우리 협회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이것이다. 정부가 우리에게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아무도 방제작업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 해안을 오염시킨 물질이 자원봉사자들의 건강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방제 작업 초기부터 이미 두통과 구토증 등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고, 원유를 직접 손으로 제거했던 이들 중엔 기절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2001년에 낭트에서 자원봉사자 2천여 명을 대상으로 간단한 연구가 이뤄지긴 했으나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피부병·습진·가려움증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고 있다."

- 이들의 건강 이상 문제가 방제 작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는가.
"조금 전 이야기한 것처럼, 이에 관한 조사를 8년 전 정부에 요청했는데도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결과가 나와야만 정확하게 답할 수 있다.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특정한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방제작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현재로서는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어 유감이다.

사실 이는 석면 문제와 같다고 본다. 일부 의사들은 1930년대부터 석면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석면으로 인한 건강 이상 문제가 대두된 건 1980년대이지만, 정부가 국민에게 석면의 유해성을 고백한 건 그로부터 1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1996~1997년 경이었다. 사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에리카호 사고 이후 자원봉사자들의 방제 모습.
 에리카호 사고 이후 자원봉사자들의 방제 모습.
ⓒ 에리카 자원봉사자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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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방제 작업, 자원봉사자에게 맡기는 대신 정부에서 주도해야"

- 한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정부에서 방제작업복과 마스크를 나누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결함은 없었나.
"처음 몇 주일 동안에는 작업복 없이 맨손으로 작업했다. 일회용 작업복이 지급된 시기는 방제 장소에 따라 다른데, 내가 방제작업을 했던 2000년 2월에는 작업복이 준비돼 있었다. 그런데 방제작업복을 입고 작업해도 원유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 에리카호 침몰 후 해안 복구 작업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수는 어느 정도인가.
"대략 2만 명이 참여했다. 사고 발생 시점부터 1년이 지난 후까지도 방제 작업이 지속됐다. 작업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루 몇 시간만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달 동안 한 사람도 있다."

- 현재 병에 걸린 사람들은 방제 작업을 오래 한 사람들인가.
"그건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원유를 뒤집어쓴 조류를 대상으로 맨손으로 방제 작업을 한 낭트 수의학교 학생들이 많이 병에 걸렸다는 점이다. 깃털 등에 묻어 있던 기름을 맨손으로 닦아내던 이들을 새가 부리로 쪼거나 발톱으로 할퀴는 일이 자주 발생했는데, 그 상처로 원유가 직접 침투해서 그런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 이번과 같은 자원봉사자의 건강 이상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국가가 사전에 안전 조치를 충분히 취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방제 작업을 자원봉사자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부 차원에서 방제 작업 요원을 선별하고 교육시켜야 한다. 지금까지는 유조선이 침몰할 때마다 자원봉사자들이 방제 작업을 해왔고, 에리카호 침몰 이후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 협회는 자원봉사자들이 방제 작업을 맡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기름에 파묻힌 새를 구하고 있는 구조대.
 기름에 파묻힌 새를 구하고 있는 구조대.
ⓒ Vincent Mun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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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지났는데도 건강 이상-원유 관계 밝히지 않는 정부... "소송 중"

- 법적인 차원에서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당연히 국가에 소송을 걸어야 한다. 우리도 현재 소송 중이다. 권리를 찾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시민단체의 힘으로 법원에서 토탈 측에 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려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

- 정부를 상대로 어떤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가.
"우리는 원유의 성격 규명에 관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에리카호가 싣고 있던 원유의 성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것이 자원봉사자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다.

첫 번째 사항의 경우 여러 언론까지 우리 쪽에 가담해 구체적인 결과를 거의 얻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토탈 쪽에서 우리가 추출한 원유는 에리카호가 실제로 운송한 것이 아니라며 방해해 지금은 답보 상태다. 두 번째 문제는 지금 소송이 진행 중이므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더 기다려봐야 한다."  

- '에리카 자원봉사자 협회'가 101개 단체와 함께한 '에리카 소송'에 기여한 점은 무엇인가.
"파리형사법원에 에리카호에 실려 있던 원유의 정확한 성분 규정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는 것, 자원봉사자들의 건강 이상과 에리카호 사고의 연관성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협회는 '에리카 소송'에 참여한 101개 단체의 하나로서 환경에 관한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에리카 소송'이 침몰 상황 및 그 결과에 지나치게 주력하는 바람에 우리 제안이 소홀히 다루어진 점이 있다. 그리고 병에 걸린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배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현재 이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새로운 소송을 생각 중이다.

아울러 우리 협회가 자체적으로 에리카호의 원유 샘플을 채취해 검사하려 하자, 이 사실을 안 토탈 쪽에서 '그것은 불법'이라며 우리 샘플을 앗아가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우리 손을 들어줬고, 샘플 검사는 이뤄질 수 있었다. 또한 법원은 토탈 쪽에서 소송 비용 전체를 부담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건 아주 작은 일이지만, 우리처럼 작은 협회가 거대 기업인 토탈에 이겼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에리카 자원봉사자 협회 http://erika.benevoles.free.fr



태그:#기름유출, #에리카, #허베이 스피리트, #자원봉사, #토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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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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