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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의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2008년 봄,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만 일곱살 상은이는 외롭고 쓸쓸하다. 전국 100여 개 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일직남부초등학교(안동시 일직면 망호3리 819)의 올해 입학생은 상은이 단 한명뿐이기 때문이다. 

 

1961년 일직초등학교의 분교로 개교한 뒤, 1964년 일직남부초등학교가 된 이 학교는 그간 43회, 26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러나 2008년 이 학교 재학생은 고작 열네명이다. 2·3학년은 각각 넷, 4학년 셋, 5학년 둘, 6학년은 없는 이 학교에 인근 귀미1리에 사는 상은이가 1학년이 됐다. 조그만 야산을 등지고 선 교사는 살구빛 2층 슬레이트 건물이었다.

 

요즘 아이들 걸어서 학교 오기 싫어해요

 

한 때는 2층 교사의 모든 교실이 아이들로 꽉 차기도 했지만 이제 이 학교는 3학급, 교사 4명(교장 포함)의 초미니 학교다. 박용성(교무부장) 교사는 2008학년에는 복식 2학급(1·4학년, 2·5학년)과 단식(3학년) 1학급으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사실 학구로 보면 우리 학교에 취학할 학생이 서너 명 됩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학부모들이 걸어서 등하교하는 걸 꺼립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통학버스를 운행하는 더 먼 곳의 일직초등학교로 취학하지요. 예전과 달라서 학부모들의 선택을 강제할 수는 없으니 이를 수용할 수밖에요……."

 

상은이가 '나홀로 입학생'이 된 까닭이다. 세월이 그렇다.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춤에 묶고 줄달음을 치며 수십 리 길 등하교를 하던 60·70년대가 아닌 것이다. 집집마다 크고 작은 차를 갖춘 집도 늘었고 늘 적자로 면치 못하는 시골 버스는 가뭄에 콩 나듯 다닌다. 아이들을 한 길에 내놓고 종종걸음을 쳐야 하는 시골 학부모들을 나무랄 처지도 아닌 것이다.

 

아이들이 워낙 적으니까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신상을 훤히 꿰고 있다. 유일한 새내기 김상은(일직면 귀미리)에 대해 묻자 집안 사정을 일러주면서 상은이의 언니 둘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똑똑하고 공부도 잘한다고 했다.

 

아직 어리니까 시골에서 공부해도 괜찮아요

 

아주 상세히 일러주는 길로 귀미리 상은이의 집을 향했다. 일찌감치 어머니(양경희·35)와 통화해 두어서 어렵잖게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붉은빛 원피스를 입은 야무져 보이는 아이가 총알처럼 튀어나온다. 이 아이가 상은이다. 언니로 보이는 두 여자아이는 낯선 사람 앞에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버린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아버지(김정이·39)는 현재 경기도 쪽에서 일하고 있어 주말께나 한 번씩 다녀가고 어머니는 홀시아버지(61)와 병석의 시할머니(84)를 모시고 살고 있다.

 

"무슨 기사거리가 있다고……"하면서도 상은 어머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런저런 질문에 부지런히 답을 해 주었다. 학교에서 상은이네 집까지는 2㎞ 남짓. 초등학교 1학년이 걷기엔 다소 부담스런 거리다. 상은이를 굳이 '나홀로 입학'을 시킨 이유를 물었다.

 

"글쎄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까, 시골에서 공부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친구들이 없는 건 좀 그렇지만. 도시와는 달리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

 

- 통학버스가 있는 학교로 보낼 생각은 없었나요?

"학교 통폐합에 대해서 마을 사람들은 대체로 반대하지요. 제가 상은이를 이 학교로 보내지 않으면 신입생이 없어지니까, 그런 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아이들은 제가 태워다 주어야 해요. 아주 먼 편은 아니지만 찻길은 위험하니까요."

 

- 도시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나요?

"글쎄요, 언젠가는 나가겠지요. 지금은 집안 형편 때문에 들어와 사는데……. 남편이 어디 붙박이로 일을 하게 되면 그리로 옮길 수 있겠지만, 자주 옮겨가며 일을 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여기서 살 수밖에 없어요. … 시골이지만 괜찮아요, 재미있어요. 마을엔 또래도 없고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이 젊은 편이긴 하지만."

 

- 농사를 직접 지으시는지?

"아니요. 그러나 아버님이 과수(사과)·양파·고추 농사를 지으시는데 일꾼을 쓰시니 참이나 밥을 해대지요. 그것도 만만찮아요."

 

"언니하고 한반에서 공부해서 좋아요"

 

상은이는 2002년 2월 13일생. 만으로 꼭 일곱 살이다. 이목구비가 단정한 데다 구김살이 없다. 혼자서 공부하는데 괜찮으냐니까 씩씩하게 대답한다.

 

"좋아요. 언니하고 같이 공부해요."

 

큰언니 재희가 4학년, 작은언니 도희가 2학년이니 상은이는 큰언니와 복식 학급에서 같이 공부하는 것이다. 언니들을 불러서 물으니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같지 않게 젊잖다. 특히 맏이 재희는 10살짜리로 보이지 않을 만큼 의젓하다. 

 

"재희는 동생 상은이하고 같이 공부하게 되겠네. 잘 보살펴 주어야겠지?"

"예."

"학교도 손잡고 가겠네?"

"유치원도 같이 다녔어요."

 

그렇다. 상은이는 학교 병설 유치원을 3년을 다녔다. 그리고 이제 1학년에 입학하는 것이다. 당연히 학교는 익숙한 공간이다. 늘 다니던 학교에 이름을 바꾸어 가는 것일 뿐이다. 함께 공부하던 더 어린 친구들과 헤어져 이제 큰언니와 함께 공부하게 된 게 변화라면 변화다. 상은이에게서 '설렘'의 느낌을 굳이 찾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상은이, 글씨 읽을 수 있어?"

"있어요."

 

기세 좋게 대답을 했지만, 어머니는 '바나나' 같은 간단한 것만 겨우 이해한다고 했다. 따로 가르치지 않았다고 했다. 괜찮다. 그게 무어 대수인가. 상은이는 금방 한글을 깨치고 국어책을 술술 읽게 될 것이다.

 

"상은이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가수요."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야?"

"몰라요."

 

어머니가 그냥 그럴 뿐이지, 아직 제대로 가수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한때는 발레리나, 간호사를 꿈꾸었다는 상은이의 꿈은 날마다 달마다 새로워지리라. 장래 희망을 묻자 맏이 재희는 "잘 모르겠다"고 하고, 둘째 도희는 딱 부러지게 "선생님"이란다. 특히 1학년 때 선생님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라고 어머니가 덧붙인다.

 

상은이에게 남자 짝꿍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바람이 제법 찼다. 아이들과 함께 마당에 나와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상은이는 렌즈 앞에서 매우 예민하다. 사진기를 의식하는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춰 버린다. 붉은 벽돌 슬레이트집을 배경으로 선 네 모녀는 정겹고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과 작별하고 마을을 떠나면서 나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내가 상상한 밑그림은 어두운 것이었다. 면 단위의 시골 학교에 근무한 경험에 미루어 보면 시골 아이들의 반수 이상이 조손가정이거나 한부모 가정이기 십상이다. 피폐한 시골의 덩치만 커다란 학교에 마지막 잎새처럼 남은 아이들이 외롭지 않고 따뜻한 어른들의 보살핌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위로였다.

 

이제 상은이는 매일 아침 언니들 손을 붙잡고 학교로 갈 것이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한 교실에서 큰 언니와 함께 공부하면서 한글과 셈을 깨우칠 것이다. 나는 멀지 않은 어느 봄날, 시골로 돌아온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학교를 찾을 사내아이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상은이의 짝꿍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그:#나홀로 입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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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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