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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2반 학생들 모습- 오른쪽부터 하순신 씨, 장나정 씨, 이재희 씨
▲ 발음과 유창성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는 학생들 모습1 초급 2반 학생들 모습- 오른쪽부터 하순신 씨, 장나정 씨, 이재희 씨
ⓒ 구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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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와 [비안합니다]

"[자전거]예요, [차전거]예요?"
"[자전거]예요.

"[미안함니다]예요? [비안함니다]예요?"
"[미안함니다]예요. 그렇지만 [차전거]나 [비안합니다] 라고 해도 한국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있어요. 발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의 유창성이에요".

한국 유학생들과 많이 어울리면서 한국어를 배운 하순신 씨가 묻는다. 하순신 씨는 '이순신 장군'이 좋아서 자신의 한국 이름을 '하순신'으로 정한 사람이다.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운 적은 이번 학기가 처음이지만 오랫동안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한국어를 배워서 보통 반말로 하고 생각지도 못 했던 질문을 던지곤 하는 사람이다.

'ㅈ'의 발음이 영어권 화자에게는 [j]와 [ch]의 중간 발음이기 때문에 'ㅈ'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ㅊ'으로 듣고 그렇게 쓰거나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한국 사람들의 '미안합니다'가 '비안합니다'로 들린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ㅁ'은 어쩌면 영어의 'm'과는 다른 발음일 수도 있다. 특히 'ㅁ'이 첫소리로 날 때에는 소리가 파열되기 때문에 'ㅂ'에 가깝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외국어를 모국어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며, 그렇게 모국어로 표기하는 것은 외국어 학습에 도움이 안 된다.

'오렌지'와 '어륀지'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

"'오렌지와 어륀지'의 발음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본래는 '오렌지'라고 했었는데, 한국 새 정부의 인수위원장이 '어륀지'로 해야한다고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이슈가 되었어요".
"선생님! '오렌지'가 더 알아듣기 쉬워요. 사실, 둘 다 이상하지만 그래도 '오렌지'가 더 나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영어에 가장 가깝게 하려면 '오렌즈'가 더 맞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어륀지'를 선호하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일 것이다. 영어 단어 'orange'의 [o]는 한국어의 'ㅗ'도  'ㅓ'도 아니고, 영어의 경우 자음 하나로 음절이 구성될 수 있는 것에 반해 한국어의 경우에는 'ㅈ' 한 글자만으로 한 음절을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오렌지'가 더 영어 발음에 가깝다는 의견에 동의하였다. [ㅓ] 발음을 힘들어 하는 학생들에게 [어륀지]는 읽기도 까다로운 이상한 발음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특히 강세가 중요한 영어 단어의 특성을 생각하면 [어륀지]라고 발음하면 각 음절에 강세가 주어지고 특히 마지막 [지] 발음까지 강세를 받게 되기 때문에 영어 모국어 화자의 'orange' 발음과는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미국 ESL 선생님의 견해

초급 2반 학생들 모습 - 가운데가 대학교 ESL 프로그램 강사로 재직중인 민백영 씨이고 맨 뒤가 대만인 학생 장영주 씨
▲ 발음과 유창성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는 학생들 모습2 초급 2반 학생들 모습 - 가운데가 대학교 ESL 프로그램 강사로 재직중인 민백영 씨이고 맨 뒤가 대만인 학생 장영주 씨
ⓒ 구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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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시종일관 웃음으로 토론을 지켜보던 ESL을 가르치는 영어 선생님인 민백영 씨가 거든다.

"한국에서 '영어몰입교육'을 하겠다고 한다고 들었어요".

"아, 그 얘기를 들으셨어요?"
"네, 그래서 영어 교사들을 많이 모집한다고 들었어요".

"그렇군요. 민백영 씨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조금 이해가 안 돼요".

"왜요?"
"한국에서 영어를 배울 때는 한국어를 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도 이중언어교육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한국에서 왜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돼요".

이 말을 듣던 중국계 벨기에 사람인 장나정 씨와 베트남 계 미국 사람 이재희 씨가 나선다.

"우리도 선생님이 영어를 못 하고 한국어만 하면 아주 힘들 거예요".
"저도 전에 한국어 배울 때, 그 선생님께서 영어를 못 하셔서 질문도 못 하고 아주 힘들었어요.

"그렇군요. 보통 학자들은 모국어를 쓰지 않고 대상 언어(target language)만을 쓰는 것을 권장하는데 정작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는 모양이군요".

한국에서 한국 선생님들이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영어로 가르친다는 발상이 놀랍다는 민백영 씨의 의견처럼 대부분 토론에 참석한 학생들이 한국의 '영어몰입교육'에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회사에 커피가 몇 잔 마셨어요?'와 '헤사에서 커피를 몇 찬 마셨어요?'

매주 학생들이 써 오는 저널 숙제가 있는데 대만 학생 장영주 씨의 저널에서 재미있는 문장을 발견했다.

'회사에 커피가 몇 잔 마셨어요?'라는 문장이었는데, 이것은 정말 잘못된 한국어 문장이다. 그래서 함께 '회사에서 커피를 몇 잔 마셨어요?'라는 문장으로 고친 후에 읽게 해 보았더니 영주 씨가 [헤사에서 커피를 몇 찬 마셨어요?] 라고 읽는다.

과연 한국 사람들은 이 두 가지 경우에 어떤 말을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어 발음이 좀 어눌하여도 얼마든지 잘 알아들을 수 있고, 오히려 귀엽게까지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할 때 조금씩 틀리는 발음 정도는 영어 모국어화자들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발음도 좋고 단어도 많이 알고, 문법도 정확한 외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이 중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가장 덜 중요한 것을 찾으라고 한다면 '발음'이라고 하겠다. 특별히 발음의 경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언어의 모국어 화자의 발음과 같아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구은희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어륀지, #한대상국어, #영어몰입교육, #어드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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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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