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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시인 강태열 님을 모시고 열었던 시읽는 잔치.
▲ 시읽는 잔치 할배 시인 강태열 님을 모시고 열었던 시읽는 잔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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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2월 29일,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에서 ‘시읽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이곳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은, 이 헌책방골목에서 헌책 하나 사고 팔며 살아온 <아벨서점> 아주머니가 손수 나무질을 하고 못질을 하면서 꾸며낸 ‘시집 전시관’이면서 ‘시 다락방’이고, ‘동네 문화 사랑방’입니다. 서른 해 넘는 세월을 온몸을 내맡겨 책을 부대껴 오다 보니, 지금 우리들한테 가장 모자란 책은 다름아닌 시모음이요, 이 시모음 하나에 담긴 너비와 깊이를 누구보다도 당신이 고이 느끼고 싶어서 방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자리는 2005년부터 얻어 놓았지만, 새로운 책 사들이랴 가게 돌보랴 또 배다리 골목집을 꿰뚫으려는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일로 주민대책회의에 나가랴 바쁘다 보니 2007년 가을께 되어야 겨우 문을 열었습니다.

이리하여 2007년 11월에 처음으로 ‘시읽는 잔치’를 열어서, 지역 시인인 랑승만 님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12월에는 강태열 시인을 모셨고, 다가오는 1월 26일에는 김학균 시인을 모시며 시 하나 함께 읽고 시쓰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강태열 님도 어느덧 나이를 한 살 두 살 잡숫는 가운데 할배 시인이 되었습니다.
▲ 할배 시인 강태열 님도 어느덧 나이를 한 살 두 살 잡숫는 가운데 할배 시인이 되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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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열 시인 - 천상병>


 강태열 시인처럼
내게 고맙게 해준 시인도 드물다.


 우리 내외가
처음 2, 3년은
돈 때문에 무척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고생 중에
난데없이 강태열 시인이


 돈 삼백만 원을 빌려주면서
천상병에게 술을 끊이지 말라고
아내에게 당부했다는 것이다.


 현명한 아내는
그 돈으로 인사동 가까운 관훈동에
<귀천>이라는 카페를 내어
이제는 부유하게 살게 되었다.


 그 삼백만 원은 이젠 갚았지만
그 뜻이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늘 강태열 시인의 그 고마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이제는 할배 시인이 된 강태열 님은 1932년 7월 27일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52년에 박봉우, 윤삼하, 주명영 님들하고 공동시집 <상록집>을 펴냅니다. 시 추천은 1959년에 <사상계>에서 '뒷창4'와 '음악'과 '벽화'가 실리며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신 이름으로 된 시모음은 200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두 권을 냅니다. 그나마 이 시모음들도 판이 끊어져서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만나볼 수 있는 시라면, 2006년에 나온 <자연바다>(작가들)라는 ‘열일곱 사람 시를 모은 책’에 실린 작품 몇 가지들.

<기러기 - 강태열>

 전쟁을 알 리 없는 눈이
내리다가.


 눈 개인
하늘이 빈다.


 장독대엔
흰 옷 입는 옹기들뿐.


 끼륵끼륵 끼륵끼륵
하늘 나는 기러기…….


 전쟁을 알 리 없는 눈이
싸인다.


1952년 어느 겨울날 전쟁통에 쓴 시 '기러기'입니다. 이 시를 읊은 뒤, “한국전쟁은, 고향에서 형제들끼리 찔러죽이고 쏘아죽이고 우리 역사에서 이런 전쟁은 없었지요. …… 전쟁 뒤로 5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가슴에 한없이 품고 우리 자손들한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를 주고, 널리 가르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 가운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유럽에서도 프랑스는 실존주의라는 게 나타나며 스스로 반성하니까 그 나라를 좀더 크게 커 나가고, 우리는 얼마나 전쟁으로 인한 책임을 질 줄 아는가? 남북이 서로 미루기만 하지. 여태껏 갖추지 못한 미래지향 가치관을 앞으로는 가져야 할 텐데 ……” 하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시읽는 잔치에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가 시를 또박또박 읽습니다.
▲ 시 읽기 시읽는 잔치에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가 시를 또박또박 읽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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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헤아려 보니 할배 시인 말씀 그대로입니다. 남녘도 북녘도 전쟁 때 서로를 죽이고 괴롭힌 일을 사과하거나 가슴 아파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고, 원한 맺힌 사람은 있어도 원한 풀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2008년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은 전쟁을 모두 이겨내거나 딛고 일어섰을까요. 어쩌면 전쟁보다 더 끔찍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따라서 돈과 이름과 힘을 혼자만 얻으려고 이웃과 동무 하나 없이 앞으로만 치닫고 있지 않을까요.

<콩의 사상 - 강태열>

 발바닥이 일해서 얻은 사상을
오늘은 시청 앞 광장의 비둘기들에게
나눠 줘야지. 콩 속에 담긴 평화를
행렬의 발자취에서 얻은 다음
자선하면서 검은 열차로 떠나가는 그에게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말해야지.
기름지게 콩밭에 맺힌 노동과
그날의 연정이 다음해에 또 푸른 잎으로
빛나는 여로에서 하늘거리는 응답을
뛰어가는 발로써 증명하고
웃어야지. 검은 열차가 넘어가는 지평선을
하동이 외치는 하얀 만세 소리를
시청 앞 비둘기로 날게 하는
열중하는 생활의 발판.
역사의 푸른 강가에서 거둔 콩을
오늘은 시청 앞 광장에서 뿌려 줘야지.


‘시읽는 잔치’에 모인 사람들이 한 편 두 편 읽고 난 뒤, 할배 시인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때 어느 분이 “앞으로 인천에 대한 불멸의 작품을 남겨 주세요” 하고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니 강태열 할배 시인은, “잘 살아가면 되지, 남겨 주면 뭘 남겨 줘요?” 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그래도 인천에 대한 것 뽑아서 모으면 없어서 섭섭해서 그래요. 한하운이 박팔양이 박인환이 하나씩 있는데 없단 말이에요” 하고 덧붙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듣기도 하고, 자기가 나와서 읽기도 합니다.
▲ 함께 시를 듣고 읽기 가만히 앉아서 듣기도 하고, 자기가 나와서 읽기도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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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 강태열 할배 시인이 사람들한테 한 마디를 합니다. “서구산업사회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물질주의가 들어오는 겁니다. 자본주의가 들어옵니다. 공산주의가 들어옵니다. 그것 다 물질주의예요 …… 인간에게는 무엇이겠습니까. 도덕성이에요 ……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물질만능주의인데 무엇을 얻겠어요?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전부 다 물질주의에 빠져가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이 발전하기보다 인성이 매몰되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종교인들이 도덕성을 회복하고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 시인은 그렇습니다. 돈이 안 돼요. 저 사람들(시인) 이슬 먹고 사는 사람인데 돈이 왜 필요하느냐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 시집을 내놓아도 시집을 사는 사람 없어요. (시집을 거저) 주면 읽는지 안 읽는지 모르지만 내팽개칩니다. 갈수록 메말라가는 가슴이 됩니다. 사람이 구원해야 합니다. 지구촌이 극락이 되느냐 지옥이 되느냐인데, 사람이 극락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

<배다리 - 강태열>

 배다리 건너
마을 어구에 들면
정겨움 겨워 넘치던 일


 물 건너
먼 강화섬 하늘
흰 학들 나는 모습 보던 일


 그 선경
그 선한 마음이
물살에 비친 지 엊그제던가


 지금은 도시화 바람이
닥치는 대로 뚫는 산업도로들에
인심마저 양극화한다
사막화한다


 아, 언제라도
배다리 건너는 마음은
물살에 비치듯 선하다
그 참한 문화가 짙푸르다


영화정보고등학교 국어교사 이성진 님이, 서울 <귀천>을 찾아가서 목순옥 님한테 이야기를 따와서 틀어 줍니다. 가지고 간 촬영기가 좋지 못해서, 삼십 분 넘게 녹화한 영상이 1분 남짓밖에 안 나옵니다. 이런.

시 다락방을 손수 나무질과 못질 들을 해서 꾸며낸 헌책방 <아벨서점> 곽현숙 아주머님이, 마무리말을 합니다.
▲ 시 다락방을 연 헌책방 아주머님 시 다락방을 손수 나무질과 못질 들을 해서 꾸며낸 헌책방 <아벨서점> 곽현숙 아주머님이, 마무리말을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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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강태열 할배 시인은 지난날 천상병 시인을 떠올리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낭창낭창 들려줍니다.

“천상병 시인과 50년대에 만났습니다. <문예>지가 있어요. 전쟁통에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폐간이 됐지요. 51년에, 아냐 아냐 55년에 그 뒤를 이어서 <현대문학>이 창간되었습니다. <문예> 시절에 천상병이를 만났는데 시도 좋고 시 평론도 제법 쓰기는 했어요. 그런데 몸가짐이라든지 옷 입는 거라든지 아주 데데해요. (웃음) 그때 고대를 다녔습니다. 꾀죄죄한데 일부러 꾸미고 다닌 거 같아요. 그런데 거기서 매력을 느끼거든요. 술도 좋아하고. 여러 가지 좋아하는데, 결국 꾀죄죄하다는 게, 산다는 게 그렇게 산다는 거죠. 이 집 저 친구 집에 유랑하며 산다는 거죠. 이제 생각하면, 전쟁시대에 그럴 수밖에 없죠. 아주 보배로운 사람이었다 싶어요.

천상병은 언제나 숫놈이에요. 만날 때마다 500원이나 1000원을 줍니다. 그것이 식사값이나 전철값이었습니다. 천상병 만나면 손부터 내밀고 옵니다. 돈 좀 달라고. 그 가운데 고생도 많이 했어요. 더구나 크게 고생한 게 동백림 사건, 거기 연루되어서 고생했는데, 나도 고생한 게, 그 사람은 손 벌리면 고생하던 때이니까 누구한테나 손 벌리고 살았는데, 그 ‘누구’ 가운데 연루되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연루된 거죠. 그 손 벌린 게 죄가 되느냐고 …… 없는 돈 가운데에도 술은 잘 사요. 밉지 않고 귀엽다고요.

또 목 여사가(목순옥 여사) 여사로 잘난 얼굴이 아닙니다. 천상병하고 비슷해요. 그런데 아주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이에요. 천재가 천재를 안다고, 그 사람이 천상병을 잘 알아요. 시 대필(불러 주면 써 주기)도 해 주고, 추고도 해 주는데 괜찮아요. 그런데 가난이 문제지요. 찻집에서 심부름해 주고 쥐꼬리만큼 벌어서 천상병하고 같이 살아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병원도 자주 들락거렸어요.

그러다가 내가 출판사 하나 열려고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런 장사치는 아닌가 봐요. 가슴이 아파요. 박봉으로 없이 살아도 천상병도 없이 살았고, 주변에 다 그래요. 그런데 나는 출판사 한다고 거들먹거리고. 나라에서도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요. 요새는 문예진흥기금이라 해서, 영화 볼 때 조금 떼어서, 가난한 문화예술인 나눠 주고, 그런 거라도 있는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어요. 천상 손 벌리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그때 시 하나에 2000∼3000원 했는데, 그때는 큰돈이었죠. 요새는 10만 원 준다고 해도 그때처럼 큰돈이 아니에요. 먹고 못 살아요…….

80년대에 뭘 하고 싶었냐면, 정부에서 못하는 예술인문인지원센터 만들어 가지고, 출판사에서 그거 해야겠다고, 문화사업 하며 배고픈 우리 문인 같이 먹고 살아야겠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박봉우한테 조금 쓰고 천상병 부인한테 주고, 술 떨어질 때 사 주고, 이거 좀 드리면서 부자 되라고 했어요. 그런 게 있었어요. 그거 가지고 천상병이가 고맙게 생각하고 …….”

▲ 목순옥 님 만나보기 서울 관훈동에 자리한 <귀천>을 꾸리는 목순옥 님 남편은 천상병 시인입니다. 강태열 시인과 얽힌 옛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몇 가지 안부인사를 띄웠습니다. 30분 넘게 찍었으나, 촬영기에 문제가 생겨서 1분 남짓밖에 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 이성진/배다리지키는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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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인 - 강태열>
: 광주의 마음 1


 남자가 여자와 동행한다
한낮의 끝에서 한낮의 끝으로 간다
서울에서 광주로 간다


 남자가 여자와 동침한다
광주 금남로 호텔이
한밤의 끝에서 한밤의 끝을 본다


 남자가 여자를 강간하는 것이다
그날의 광주가 흘린 피를 본다
저항하는 여자의 죽은 피를 본다


 여자가 남자와 동행한다
새벽의 끝에서 새벽의 끝으로 간다
광주에서 서울로 간다


‘시읽는 잔치’를 마칠 무렵, 배다리 골목길 한켠에 ‘시 다락방’을 연 헌책방 <아벨서점> 곽현숙 아주머님이 한 마디 붙입니다. “집 한 채가 갑자기 2∼3억이 뛰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시가 필요한 것 같아서, ‘시 다락방’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를 따라서 함께 나들이를 온 어린이가 부지런히 사진 찍기를 합니다.
▲ 사진 찍기 아버지를 따라서 함께 나들이를 온 어린이가 부지런히 사진 찍기를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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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 다락방 같은 곳에 나들이를 다니던 아이와, 패스트푸드점에만 나들이를 다니던 아이가, 나중에 똑같이 크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 부모 따라 온 어린이 어릴 적, 시 다락방 같은 곳에 나들이를 다니던 아이와, 패스트푸드점에만 나들이를 다니던 아이가, 나중에 똑같이 크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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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을 꾸리는 목순옥 님을 만나보고 찍은 동영상을 보는 모습입니다.
▲ 동영상 보기 <귀천>을 꾸리는 목순옥 님을 만나보고 찍은 동영상을 보는 모습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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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여자정보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이성진 님이 할배 시인 강태열 님을 소개합니다. 시 다락방에는 벽을 빙 둘러서 옛 시집을 차곡차곡 놓아 두며 전시관 노릇도 함께 합니다.
▲ 할배 시인 소개 영화여자정보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이성진 님이 할배 시인 강태열 님을 소개합니다. 시 다락방에는 벽을 빙 둘러서 옛 시집을 차곡차곡 놓아 두며 전시관 노릇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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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에서, <한미서점>과 <고원사진관>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시 다락방 앞모습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에서, <한미서점>과 <고원사진관>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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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달마다 마지막 주 토요일 두 시에 ‘시읽는 잔치’를 엽니다. 이번 1월 26일 14시에는 김학균 시인을 모시고 시잔치를 꾸립니다.

- 찾아오는 길을 물으실 때에는, 032) 777-9523 / http://cafe.naver.com/abelbook 으로.



태그:#골목길, #시, #강태열, #배다리,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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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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