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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건강하시지요?

 

공항에서 어머니의 환송을 받은 뒤로부터, 짧게나마 어머니와 연락이 닿을 때면 늘상 버릇처럼 이 말을 되뇌이게 됩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고치지 못할 버릇일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모스크바의 겨울은 춥고도 깁니다. 지난 10월부터 이미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요즘은 오후 4시도 안 되어 해가 지곤 합니다. 찬바람을 잠깐이라도 맞으면 감기 기운에 어질어질해지곤 한다더군요. 또 햇볕을 자주 쬐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겹겹이 껴입은 이 곳 사람들은 그렇게 예쁜 얼굴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아픈 듯 우울함을 얼굴에 안고 살아갑니다.

 

저는 아직껏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말짱해요. 아, 또, 함께 교회에 다니는 분들도 제가 항상 밝은 표정이라고 좋아하십니다. 보세요, 이 아들 걱정 안 해도 괜찮겠죠?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많이 걱정됩니다.

 

작은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오늘도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에야 일이 끝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집에 들어가실 것입니다. 본디 작은 몸에 연약하신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한창 깨어나서 활동할 시간에도 깊은 잠으로 간신히 체력을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단란하게 우리 가족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버지께서 5년 전에 돌아가신 이후로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걱정되었습니다. 제가 찬바람을 맞을 때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도 찬바람을 맞으실 것 같아서였고, 해가 뉘엿뉘엿하면 제때에 햇볕을 보지 못하시는 어머니가 공연히 울적해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 마음만 같아서는 어머니를 떠나 이 먼 곳에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저에게 어머니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저희 세대에게 가지고 있는 희망 때문입니다. 바로 어머니의 희망 때문입니다.

 

어머니, 이제까지 저를 그 희망으로 키워주신 어머니가 참 감사합니다.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제게 심어주신 그 아름다운 희망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말씀하셨던, 거짓말을 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라, 높은 자리에 올라 있다고 교만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를 갖거라,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살거라, 이런 말들, 어머니의 그 말씀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씀들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보다는 거짓말을 해야만 돈을 더 잘 벌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손해일 뿐이라고,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할 수는 없다고…. 말씀은 차마 하지 못하셔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하지만 거짓말이 옳은 것인가요? 저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할까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손해니 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런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얼마나 끔찍할지, 저는 가늠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어머니, 안타깝게도, 수많은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을 먼 이국 땅에서나마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벌게 해줄 사람이 낫겠다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선택이 대한민국을 만들어갑니다’와 ‘당신의 한 표가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란 선거 문구를 보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만들어가는 대한민국은 어떤 대한민국입니까? 어머니의 표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나요?

 

어머니, 누구나 속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속이고서도 최소한의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머니께서 제가 어릴 적에 말씀하셨던,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어머니 아버지께 가장 크게 혼날 때가 언제였었나요? 저는 그것이, 제 거짓말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던 바로 그 어린날의 순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저를 가르쳤던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그런 어머니가 대한민국을 희망으로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가 변했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머니를 아프게 하더라도, 저를 가르쳤던 존경스런 어머니만은 지키고 싶습니다.

 

만약 온갖 불법과 부패를 저지르면서도,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어머니가 선택하신다면, 그것은 어머니께서 제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아, 그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 혹은 교회 장로요, 혹은 대통령인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도 ‘올바른’ 희망을 가지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존경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몸도 마음도.

 

존경하는 어머니께, 아들 국진 올림.


태그:#대선, #대통령, #희망, #양심,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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