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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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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마음 맞는 사람과의 동행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천 길도 단걸음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과 함께 걷는 걸음은 힘들지 않고 피곤하지 않으며 발걸음도 경쾌하고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혹 마음 무거운 일 있어도 좋은 동행이 있어 그 무거움마저도 잊는다. 그와 걷는 길은 심한 갈증이 날 때 만난 시원한 한 모금의 물맛 같다. 마음이 나뉜 동행은 마음도 몸도 발걸음도 무겁기 마련이다. 좋은 풍경은 빛을 잃고 등에 진 가벼운 짐조차 천근만근 무겁다. 지척도 멀디 먼 천리 길이다.

 

범어사 올라가는 길은 일방통행 길이다. 범어사 주차장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예상했던 대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는가 하면 관광버스, 회사마크가 붙은 버스, 자동차들과 버스, 택시 등으로 북적거렸다. 범어사를 바로 통과해 올라가면 유료인데다가 범어사 주차장을 이용하려면 역시 하루 이용료가 들기 때문에 우리는 범어사 주차장을 지나 상마마을 제일 끝집인 손씨집 앞 공터에 차를 세운다.

 

이곳 상마마을은 거의 음식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직 따지 않은 익은 감알들이 등불처럼 가을 하늘에 붙어 있다. 막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오늘 아침에 새로 산 디카 건전지가 불량이 아닌가. 사진 없는 여행, 맥 빠지는 일이다. 근처엔 가게가 없다.

 

하는 수없이 차를 타고 다시 가까운 시내로 내려가야 한다. 건전지를 사고 처음 출발했던 범어사 가는 일방통행로로 빙 둘러 다시 손씨집 앞에 차를 세우고 등산로 앞에 섰다. 함께 한 사람이 나를 배려해주지 않았다면 사진 없는 산행이 되었을 것이다. 조금 귀찮긴 했겠지만 덕분에 오늘 사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배려가 있어 동행이 즐겁다.


오늘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따라 금정산(801m)을 오르기로 했다. 상마마을 손씨집 위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10시 20분이었다. 산행 길엔 우리들 외에도 혼자 혹은 두 사람, 혹은 여럿이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다.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와서일까. 함께 걷는 길 위에서 작은 것에도 함께 감동하고, 이마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 대신 깃털처럼 가벼운 설렘이 묻어난다.

 

나무들은 옷을 벗고 산길은 마른 낙엽들로 덮여 있다.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리는 4망루쪽을 택했다. 4망루 600m 지점에서 옹달샘 같은 약수터를 만났다. 얼마나 더 올라갔을까. 또 다른 약수터가 나타났다. 부산의 가장 큰 산 금정산은 그 넉넉한 산새와 더불어 곳곳마다 약수터가 있어 목마름 그대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금정산성 산성길 주변에는 성벽을 따라 억새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파도치고 있다. 억새 산행을 몇 번 했건만 가까운 금정산에 가을 억새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산성 능선길을 따라 걷고 있다. 어디로부터 온 사람들일까. 나 홀로 산행하는 사람들, 친구 혹은 연인, 혹은 부부, 혹은 가족들, 혹은 단체로 온 사람들이 넓은 산성 길을 덮고 있다.

 

이들은 어떤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이곳을 걸어 올라오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어떻게 마음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고 시간을 맞추고 목적지를 맞추고 산에 올라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이 사람들의 산행(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쨍'하고 금이라도 갈 것 같은 푸른 하늘 아래 산성로를 따라 산보하듯 천천히 걷노라니 김남조 시인의 '산에게 나무에게'란 시가 문득 떠올랐다.


산은 내게 올 수 없어/ 내가 산을 찾아가네/ 나무도 내게 올 수 없어/내가 나무 곁에 서 있네/산과 나무들과 내가/친해진 이야기/ 산은 거기에 두고/내가 산을 내려 왔네/그들은 주인 자리에/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제4망루에 올라보니 부산 시내가 멀리 내려다 보인다. 4망루에서 마주 보이는 의상봉(640m)에 도착하니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로 붐볐다.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동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산성로다. 원효봉(687m)엔 초겨울 바람이 거칠다. 길은 계속 이어지고 북문에 이르러 금정산성 약수터에서 산에서 흘러나온 물을 마시고 또 병에 담았다. 12시 40분이었다.

 

북문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북문에서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 가는 길을 잠시 보류하고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미륵사로 향한다. 이 길은 호젓해서 좋다. 대부분 사람들은 북문에서 곧장 고당봉으로 향하고 있다.

 

미륵사에 도착하자 1시 정각이었다. 미륵사 뒤에 버티고 있는 넓고 큰 바위 위로 하늘에는 한 조각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금정산 산성마을, 위쪽 길로 가면 금정산 고당봉 가는 길이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저 아랫길로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고당봉으로 간다. 넓은 바위 위에 자리를 깔고 앉아 빼놓을 수 없는 산행의 또 다른 기쁨인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다시 출발, 이제 또 다시 길 위에 선다. 호젓한 길을 따라 걷노라니 이따금 길 주변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참 좋은 길동무들인 것 같다. 서너명의 중년 남자들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술병을 놓고 앉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적어도 몇 년은 함께 해 온 산행 친구들인 듯 보인다. 함께 있음이 아주 자연스럽다.


부부인 듯한 중년 남녀가 과일을 깎아 먹으며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이따금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서 한 호흡을 읽는다. 서로 마음을 안다는 것, 내가 그를, 그가 나를 읽는다는 것, 한 호흡으로 벗하며 동행한다는 것...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 아름다운 동행이다.


금정산 주봉 고당봉에 올라보니, 정상 표시석 앞에서 사진촬영하고 있는 사람들로 붐비는가 하면 바위 위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들이 보인다. 나 홀로 산행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마치 홀로 앉아 있는 것처럼 고즈넉한 얼굴을 하고 먼 산 바라기를 하고 있다. 올라올 땐 땀이 흠씬 배였건만 높은 고당봉에 앉으니 금방 한기가 파고 든다. 고당봉 표시석 뒤로 멀리 낙동강이 흐르고, 우리가 올라왔던 길이 실낱처럼 드러난다. 지난번에 올랐던 장군봉도 그 자리에 있다.


이곳까지 올라오기까지 사람들은 저 아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을까. 인생의 어느 길에서 만난 사람들일까. 오는 길, 길마다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며 온 것일까. 오늘, 지금 함께 동행한 이 사람과 거미줄처럼 사방팔방으로 나 있는 이 산을 어떤 길로 해서 갈 것인지 함께 결정하며 올라왔을 것이다. 마음을 맞추고, 걸음을 맞추고, 호흡을 함께 하면서 말이다. 그 마음 다 알려면 잠시 겪어보고 어찌 알까.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전한 동행이 있으랴.

 

너 댓살 쯤 됐을까. 총명해 보이는 남자 아이가 고당봉 바위 하나 깔고 앉아 마주 보이는 바위를 하얀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려 넣고 있다. 그 옆에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젊은 엄마가 있다. 참 아름다운 동행이다.

 

이 높은 산 바위꼭대기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 옆에서 아이 엄마는 그림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있다. 마음이 좀 급해졌을까.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조용히 말한다. "얼른 그림 그리고 내려가자." 참, 예쁜 동행이다.

 

아이는 엄마가 곁에 있기에 높은 산 바위 꼭대기에서도 안심하고 그림을 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할 때까지 누군가와 동행하며 살아간다. 높은 고당봉 아래 날아다니는 까마귀들조차도 혼자 날지 않고 둘이서 함께 날고 있다. 같은 방향, 같은 동작, 같은 호흡으로 하나 되어 날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제 '금샘'을 찾아 간다. 고당봉 동쪽에 있는 금샘은 금정산이라는 이름을 유래하게 한 샘이다. 물이 늘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이 있어 금색어가 다섯 색깔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다 해서 금정산이라고 일컫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정산 정상 고당봉 근처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다.

 

암벽을 타고 금샘을 찾아 가는 길에서 길을 몰라 잠시 멈추어 저 아래 인기척 있어 길을 묻는다. "이쪽으로 내려오면 됩니다. 물좀 채워놓고 와야 할 텐데, 물을 가지고 갑니까?" 하고 물었다. 물을 채워놓고 와야 하는 곳인가? 금샘 가는 길은 이정표가 잘 안내하고 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금샘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금샘 아래로 겨울로 치닫고 있는 금정산 자락이 넓디넓게 펼쳐져 있다.


금정산은 동서남북으로 길이 나 있으며 마치 거미줄처럼 산행길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다. 어디로 해서 가든지 고당봉으로 가고 길에서 길로 이어져 길은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 많은 길들 중에 어떤 길을 선택해서 오느냐에 따라 그 표정이 사뭇 다르다.

 

사람의 얼굴을 앞에서 바라볼 때와 옆에서 볼 때 그리고 뒤에서 보는 것이 다른 표정이듯이 산 또한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것이다' 생각해오던 것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산은 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에 따라 또 얼마나 많은 표정을 연출하는가.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로 금정산을 오른 이 하루, 여상하게 보아오던 그 산이 그 산이 아니다. 새로운 개척 산행을 한 것처럼 금정산은 또 다른 얼굴로 우리를 받아들인다. 과연 부산을 비롯한 그 주변 일대를 넉넉히 품고도 남을 만한 산이다.

 

그래, 가보지 않고서는 그 길을 다 알 수 없다. 산은 언제나 새로운 표정으로 우리를 반기고, 실망시키지 않는다. 익히 아는 산과 길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가지 않은 길을 따라 걸으며 새로운 금정산의 표정을 읽는 발견의 기쁨이 있어 산행이 즐겁다. 함께 걷는 동행이 있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원효봉을 지나 고인돌 같이 생긴 석문을 지나 상암마을로 가는 지름길을 따라 상암마을 손씨집 앞에 도착했다. 정각 5시였다. 해는 이미 지고,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음식점들은 불을 밝히고 있다. 나 홀로 산행한 중년 남자가 저녁 어스름 속에 멀어지고 있다. 당신은 오늘, 누구와 함께 동행 하는가. 이지상 작사 '동행'을 함께 나누며 오늘 당신과 함께, 그리고 나와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당신의 지친 어깨 위/포근히 내려앉는 이슬처럼/당신의 어둔 마음에/한줄기 빛이 되고 싶어 나는/당신의 작은 맘 속에/담겨진 예쁜 세상처럼/당신의 상한 마음을/어루만졌으면 좋겠어 나는/황홀한 꿈을 꾸었던/아무도 없는 이 빈자리에/그대와 나의 마른 입술로/느낄 수 있는 사랑/당신의 젖은 두 눈에/숨겨진 푸른 눈동자처럼/당신의 바쁜 걸음에/빈틈없는 동행이 되고 싶어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입니다


태그:#금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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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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