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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는 "이상한, 기묘한, 낯선"이라는 뜻으로, 과잉면역반응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어린이 4명 중 1명이 아토피를 앓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과 공동으로 '아토피 Zero 세상을 열자'라는 제목의 심층 기획보도를 진행하면서 아토피를 줄여나갈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생태지평 연구소는 이 기간동안 '아토피 Zero 센터 건립' 등의 사업을 벌입니다. 많은 후원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원민자씨가 체험담을 보내와 전재합니다. [편집자말]
‘제 4차 산사학교’ 수업 중 가려움증을 참고 있는 한길
 ‘제 4차 산사학교’ 수업 중 가려움증을 참고 있는 한길
ⓒ 불교환경연대 장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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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가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상처를 갖고 사는 것이라고 한다. 7년 동안 한길이는 몸에 그리고 우리 부부는 가슴 속에 '아토피'라는 병을 앓고 있다.

몇 년 전이었던가 3살 된 딸아이의 아토피를 낮게 하기 위해 무속인에게 데려가 치료를 받던 중 아이가 숨졌다는 뉴스, 또 올 여름 생후 7개월 된 아토피 아이에게 과일즙만 먹이다가 하늘나라로 보냈다는 엄마가 세간의 큰 뉴스거리로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그리 무지할 수가 있느냐는 질타가 쏟아졌지만, 아토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 엄마의 마음과 같이 통곡했을 것이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아토피 피부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6살 무렵 한길이가 팔 다리를 긁기 시작하여 살펴보니 붉은 돌기가 올라와 있었다. 피부과 병원을 찾았더니 아토피 피부염이라고 했다.

생소한 피부병이었지만 내가 잘 모르는 의학용어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상태도 심해보이지 않아 병원에서 처방해준 연고를 바르기 시작했다. 깨끗해진 피부가 다시 재발하면 또 바르고…. 3년동안 이를 반복했다. 그동안 무지했던 엄마가 아이의 아토피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스테로이드 연고에 대한 위험성을 알려주면서부터 일체 약을 바르지 않았다. 그러자 아토피 증상이 몸에서 얼굴과 목까지 퍼지기 시작했고, 하얀 각질들이 끊임없이 떨어지는 어린 한길이의 피부는 쪼글쪼글 할아버지처럼 변해갔다.

덜컥 겁이 나서 이번에는 한방병원을 찾았다. 1~2년 치료하면 낫는다고 했다. 마음이 놓였다.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한약과 한방치료를 받았다.

6개월 쯤 되었던가 아이의 모습이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과 등·배가 화상환자처럼 붉게 부풀어 올랐고, 가려움도 극심해져 밤잠을 자지 못했다. 몽롱한 상태로 학교를 가야만 하는 날이 시작되었다. 벌써 4년째다.

아토피 엄마는 잠들 권리가 없다고 한다

‘제 4차 산사학교’ 죽염수로 코를 소독하고 있는 한길
 ‘제 4차 산사학교’ 죽염수로 코를 소독하고 있는 한길
ⓒ 불교환경연대 장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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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 없이 온 가족이 하루 밤을 잘 수 있다면….

보통 가정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이 어떤 가정에서는 간절한 소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몸에 보습을 해주고 잠자리에 들 때면 늘 한길이 손에 두꺼운 벙어리장갑을 끼우고 끈으로 묶어준다.

'엄마 꽉 묶어야지, 안 벗겨지게….' 행여 피가 안 통할세라 약간이라도 여유를 둘라치면 한길이가 걱정하는 말이다. 한길이에게 이런 방법밖에 해줄 수 없는가 하는 죄책감에 너무나 서럽다.  

잠든 지 2시간 가량 지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벅벅 대패질 소리에 눈을 뜬다. 그렇게 꽉 묶어둔 끈도 소용없다. 어느덧 손톱으로 살갗을 파가며 온 몸을 비틀고 있는 한길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긁던 손을 꼭 붙잡고, 엄마 아빠가 교대로 3~4시간 정도 쓸어주어 겨우 1~2시간씩 재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잠깐이라도 손에 힘이 빠지거나 멈출라치면 온 몸을 비틀어대며 괴성을 지르는 한길이 옆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소리죽여 흐느끼는 일 뿐이다. 내 몸이 대신 가려울 수만 있다면 하는 무력함에 가슴이 타들어간다.

긁는 모습에 화를 내는 엄마를 피해 벽장 속에 숨어 긁는 아이의 얘기를 들었다. 도대체 우리 아이들에게 왜 이런 형벌이 내려져야 하나. 아침이면 옷과 이불에 수북한 각질과 핏자국들. 왜 하필 우리 아이에게, 우리 가정에 아토피라는 것이 생겼을까? 환경이 오염되어 그렇다고 한다. 문득 문득 세상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겨우 잠든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깨워야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휴학을 시켜볼까 고민도 했었지만, 한길이가 계속 다니겠다고 한다. 그래도 밝고 의젓한 모습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엄마, 피자 냄새가 너무 황홀했어요"

학교 친구들이 "한길아 네 얼굴 왜 그래?"라고 자주 묻는 것 같다. 다행히 창피해하지 않고 그동안 아토피에 대해 인터넷도 찾아보고, 공부도 했던 내용을 모아서 잘 설명을 해주면 친구들이 모두 이해를 해준단다. 그런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가려움 다음으로 참기 힘든 것은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 대부분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친구 생일날 초대받아 즐거워하는 한길이에게 간식을 싸서 보냈다.

"엄마~피자, 통닭냄새가 너무 황홀했어요. 하지만 난 참고 먹지 않았어요."

대견하다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러나 가슴은 쓰렸다.   

며칠 전 한길이 고모가 집에 왔었다.

"한길이, 아직도 엄마, 아빠와 함께 자니?"

그런데 갑자기 한길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 가려운 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고모가 알아?"

어른에게 버릇없이 군다고 야단을 쳤지만, 가슴이 너무 아팠다. 사랑스런 얼굴로 조리있는 말로 늘 엄마에게 힘을 주었던 우리 한길이 가슴 속에도 큰 상처가 있었구나. 엄마가 더 강해져야 한다고 결심했다.

아토피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환경주의자가 된다고 한다

‘제 4차 산사학교’ 전나무 숲길 산책 중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한길이.
 ‘제 4차 산사학교’ 전나무 숲길 산책 중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한길이.
ⓒ 생태지평 장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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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유해한 음식과 생활용품들이 환경오염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에서 나오는 먹을거리를 찾게 되고, 무엇을 살 때도 성분이나 재질을 꼼꼼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파트가 많이 생기는 것도, 산들이 파헤져지는 것도, 강물이 오염되는 것도, 공기가 오염되는 것도 걱정이다.

환경에 관한 뉴스나 방송이 나오면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우리 한길이 아토피가 나으려면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어야 할 텐데, 우리 가족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안 될 텐데. 새로운 것들을 알아갈 수록 걱정도 늘어간다.

언젠가 아토피의 고통을 국가에 알리기 위해 국정감사에 아토피 엄마가 참고인 진술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뒤로 아토피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고통을 책으로 써 냈고, 아토피를 고치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난 그 책을 읽으면서 한없이 울었다. 누군가 내 얘기를 대신 써 놓은 것만 같았다. 왜 우리 아이들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누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 그러나 답답해진다. 그 엄마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토피의 고통을 알리기 위한 15분 동안…. 나는 국정감사장에서의 그 냉랭한 반응에 잠시 말을 더듬기도 했다. 뜻밖의 반응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질의서에만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고 당연히 아무런 질문도 없었다.

국정감사실을 나오는데 한 국회의원이 따라나와 '의료보험 혜택은 보건복지부에 가서 해야지, 아토피는 엄마 태중에 생긴 문제이니 이민을 갈 게 아니라 아토피 엄마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며 치료를 해야지, 아토피가 환경병이면 같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아토피에 걸려야지 왜 소수만 아토피냐?'고….

내 속에서는 '아토피 아이 한명 키워보시면 과연 그런 말씀이 나올까요' 하는 메아리가 쳤지만 난 언젠가부터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알아버렸다. 아무리 미운 사람에게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얼마나 무서운 말이지 말이다. 과연 이것이 국가가 아토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함이 이를 데 없었다."


아토피와의 싸움이 길고 길어질 것 같다

올 겨울, 여름방학 한길이는 아토피 제로 캠프에 다녀온 뒤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먹는 것을 가려야 할 때도, 힘겨운 목욕을 할 때도 더욱 의젓해진 것 같다. 더욱 기쁜 일은 한길이가 잠드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간다는 것이다. 희망이 생긴다.

그런 한길이를 보며 나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아토피 캠프에서 만난 엄마들 모임이 생겼다는 소식에 나도 열심히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엄마의 무지로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실수로 아이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일은 결코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마가 더 이상 없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알리러 다닐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웃는 그 날을 위해!


태그:#아토피 ZERO, #원민자, #아토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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