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무리 좋은 약 먹고, 신경 써서 식이요법 하면 뭐해요? 술, 담배를 끊지 않는 이상 당뇨 수치가 떨어지겠어요?”
“힘들어도 가족들이 함께 같이 해 볼 테니까 제발 술, 담배 좀 끊으세요.”

아버지의 당뇨수치가 일반인에 비해 갑자기 높아지면서 우리집에서는 매일같이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환갑을 앞둔 아버지께서 알아 듣지 못할 말도 아니다. 술,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건 초등학생 아이들도 아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안되는가 보다. 무엇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회의를 열고 아버지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술, 담배 안 끊으시면 저희들도 식이요법에 동참 안 할 겁니다. 매일 콩밥 먹는 것도 그렇고 싱겁고 맛없는 반찬도 먹기 싫어요.”
“알았다. 내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노력하마.”
“그래요. 그럼, 한 번에 끊기 어려우면 조금씩 줄여가면서 끊도록 노력해 보세요.”


아버지 당뇨 치료에 온 가족이 나서다

각종 성인병을 불러오는 비만과 함께 각종 합병증을 유발하며 사람의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무서운 병 당뇨. 아버지의 당뇨병 치료를 위해 온 가족이 뭉쳤다.

아버지는 가족들로부터 최후의 통첩을 받은 후로 그 좋아하던 술은 끊었지만 마약과도 같은 담배는 여전히 끊지 못한 채 당뇨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뇨에 좋다는 건 무엇이든 구해서 먹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시간만 나면 산으로 들로 나가 당뇨치료에 좋다는 게 있으면 구하려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아버지의 당뇨병 치료를 위해 가족들은 들로 나가 뽕잎이며, 옥수수수염이며, 논둑에 심어놓은 콩 등 계절을 구분하지 않고 구해와서 아버지가 항시 드실 수 있도록 집안에 비치해 두었다.
▲ 당뇨병 치료에 좋다는 식품들 아버지의 당뇨병 치료를 위해 가족들은 들로 나가 뽕잎이며, 옥수수수염이며, 논둑에 심어놓은 콩 등 계절을 구분하지 않고 구해와서 아버지가 항시 드실 수 있도록 집안에 비치해 두었다.
ⓒ 김동이

관련사진보기



특히, ‘마’를 구해 즙으로 갈아서 마실 수 있도록 항시 준비해놓았고, 차(茶)도 커피나 녹차보다는 ‘마차’를 부엌 한켠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여름만 되면 들로 나가 옥수수 수염과 뽕잎을 따서 말린 잎을 물에 끓여 마실 수 있도록 항시 냉장고에 비치해 두었으며, 가을이 되면 논둑에 심어두었던 콩을 뽑아 집으로 가져와서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콩을 까서 밥에 넣어 먹었다.

KBS 건강프로그램인 '비타민'이 선정한 [한국인이 꼭 먹어야 할 10대 밥상]. 10대 밥상에도 선정될 만큼 콩은 풍부한 식이섬유가 급격한 혈당상승을 억제함으로써 당뇨병 예방에 탁월한 식품으로 알려져있다.
▲ 한국인이 꼭 먹어야 할 10대 밥상 KBS 건강프로그램인 '비타민'이 선정한 [한국인이 꼭 먹어야 할 10대 밥상]. 10대 밥상에도 선정될 만큼 콩은 풍부한 식이섬유가 급격한 혈당상승을 억제함으로써 당뇨병 예방에 탁월한 식품으로 알려져있다.
ⓒ KBS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온 가족이 아버지의 당뇨병 탈출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던 그 시기에 누군가의 입에서 ‘누에로 만든 엑기스가 있다던데 당뇨에는 직빵(?)이랴. 쫌 비싸서 그렇지’하는 말이 마을에 나돌았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께서는 “그게 뭔디? 암만 비싸도 병만 나을 수 있다면야 뭘 못먹어”하시며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가서는 끝내 100만원이 넘는 비싼 약을 사오셨다.

“이게 그렇게 좋댜. 먹으면 바로 효과가 있다던데?”
“먹어서 바로 효과가 있는 약이 어딨어요? 그럼 세상에 당뇨병 있는 사람 아무도 없게요?”
“100만원도 넘는 약인데 한번 믿어봐야지.”
“지금도 수치가 많이 떨어졌는데 괜한 일 하신 거 아네요?”

이런 가족들의 걱정도 직접 사온 비싼 약에만 온 신경이 가 있던 아버지에게는 우이독경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그 약을 먹으면 마치 당뇨병이 다 나을 것 같다는 믿음 때문이었는지 석달치 약을 한번에 사오셨다. 큰 상자로 두 상자쯤 되어 보였다.

한달 후 병원 찾았지만 수치는 변함없고...

돈은 상관없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약을 구입해 오신 아버지. 그 후 매일같이 꼬박꼬박 약을 복용하셨다. ‘당뇨병 완전 탈출’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고….

약을 복용한 지 한달여 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자주 다니시던 병원에서 ‘진료예약이 되어 있으니 ○일 ○시에 병원을 방문하라’는 휴대전화 문자가 날아왔다.

“잘 됐네. 이 기회에 당뇨수치도 한번 재보고 수술한 데도 이상 없는지 확인해 봐야 되겠다.”

아버지는 5년 전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심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 한두 달에 한번씩 병원을 찾아 정기검진을 받고 있었다.

마침내 병원에 검진가는 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수술한 곳도 걱정이 었지만 그동안 당뇨병 치료를 위해 복용한 약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도 매우 궁금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예약시간이 다 돼 담당의사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하던 의사선생님은 한참 진료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심장 수술한 데는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술, 담배 계속 하시나 봐요? 당뇨수치도 그 전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고….”

이게 무슨 말인가! 당뇨수치가 변함이 없다니…. 그 비싼 약을 먹었는데도 효과가 없어?
속으로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진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아버지께 말했다.

“그 약, 효과 없네요. 오히려 전에 저희가 돌아당기면서 따서 끓여 먹었던 옥수수 수염하고 뽕잎이 더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요?”

내 물음에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말은 안 했지만 아마도 아버지에게는 그 당시 허탈함과 함께 약을 팔았던 사람에 대한 원망이 교차했을 것이다.

나중에야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는 당뇨수치가 많이 떨어졌다면 당시 복용하던 약에 대해 물어보려 했는데 별 차이가 없다는 말에 접으셨다고 한다.

“석달치 지었으니까 좀 더 지켜보죠. 약이라는 게 그렇게 금방 효과가 나타나겠어요? 좀 더 드셔보시고 그 때도 효과 없으면 그 때 약 판 사람한테 가서 따지든가요.”
“그려, 그래도 지난번하고 수치가 비슷하지만 쫌 떨어지긴 했으니까 더 먹어보자.”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로 아버지 마음을 풀어주려 했지만 분위기만 더 썰렁해졌다.

비싼 약 먹어서 다 나으면 재벌들은 안 죽겠네?

집에 도착하니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치 많이 떨어졌디?”

동생이 마치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이 새침하게 물었다.

“떨어졌지. 지난번보다…쬐끔….”
“비싸다고 다 좋은 약이 아니라니께. 비싸다고 다 잘 들면 재벌들은 죽는 사람 없겄다.”
“아버지도 속상해 하니까 아버지한테는 그런 말 하지마. 내가 아까 충분히 말했으니까.”

그 사건(?) 이후로 아버지께서는 더 악착같이 약을 꼬박꼬박 챙겨 드셨고 석달치를 모두 드신 후 다시 병원에 가서 수치를 쟀는데… 과연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결과는 대실망. 당뇨수치가 조금 내려가기는 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석달치를 다 복용하고도 효과가 없자 그 후 아버지는 약을 팔았던 사람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약을 먹으면서 술, 담배 계속 하셨죠? 그러니 당연히 효과가 없죠.'

“억울하고 괘씸했지만 뭐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구만.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약을 먹고 식이요법을 해도 술, 담배 허면 '말짱 도루묵' 되는 거라니께요. 그러니까 끊으세요.”
“그래야 되겄다. 아무래도.”


10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사기당한 것처럼 날려버렸지만 그래도 그 사건(?)이 끝나고 나서 아버지께서는 석달이 넘는 기간 동안 담배도 많이 줄이시고, 술은 아예 끊으셨다. 한마디로 생활에 일대 변화가 생겨 약보다 더 큰 효과(?)를 보게 되었다.

지난 가을에 비싸게 주고 구입한 당뇨병약 소동은 이렇게 끝났다. 이후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식이요법과 운동, 갈아만든 마즙과 옥수수 수염, 뽕잎으로 달여서 만든 약을 계속해서 복용했다. 그 효과인지 지금은 일반인과 비슷한 당뇨수치를 보일 정도로 호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만병의 근원이자 합병증을 유발하는 무서운 성인병인 당뇨병!

당뇨병 퇴치를 위해서는 비싼 약보다는 병을 극복하려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와 온 가족이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정성과 희생이 필요하다.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아버지! 당뇨병이 완전히 물러나는 그날까지 언제나 가족들이 함께 할 테니까 힘내시고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 '성인병 탈출' 응모기사



태그:#당뇨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