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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하는 일이 뭐 늘 이렇습니다."
"대한민국 평균이하가 펼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주 들려오는 이러한 말들은 언제부터인가 웃음 코드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배경에는,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이 큰 웃음을 짓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연예인들이 마치 오래된 친구 같이 만만한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점과 대본이 만들어낸 억지스러운 웃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이어야 한다는 최근 트렌드가 있다. 
 
실제로도 마음 맞는 친한 친구들끼리 만나서 유치하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함께 즐기며 노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러한 웃음을 위해 존재하는 연예인들의 자발적인 자기비하 모습과 그것을 캐릭터로 잡아 리얼한 웃음을 제공하는 연출방식은 MBC <무한도전>을 필두로 점차 영역을 확대해 나가며 동시에 재생산 되고 있다.
 
그 증거로 현재 주말 황금시간대나 평일 저녁시간에 방영되는 예능프로그램 출연자들의 면면을 볼라치면, 말쑥한 모습의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나 드레스를 황홀하게 둘러맨 숙녀의 화려함은 사라졌거나 과거에 비해 극히 축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신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이나 목욕 가운, 혹은 몸에 쫙 들러붙는 우스꽝스러운 옷이나 출연자들이 단체로 맞춰 입은 기성복 차림의 그들이 있다.
 
웃기고 싶으면, 자기비하를 해라?
 
시청자들이 혹할 만한 멋지고 당당한 모습, 혹은 귀엽고 예쁜 모습의 연예인은 온데간데없다. 단, 조그만 고양이의 움직임에도 겁내며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고 초등학교 수준의 간단한 퀴즈에도 쩔쩔매기 일쑤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 연예인들은 잘난 척, 예쁜 척, 약한 척은 절대 금물이라 말하며 자칫 치명적일 수도 있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비하도 서슴없이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과연 실제로도 그렇게 못난 존재들일까? 실제로도 그들은 대한민국 평균이하들일까? 과연 방송 밖에서도 방송처럼 당하고만 살고 아무것도 모르는 착하고 순박한 바보 같은 사람들일까?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시청자들 위에 군림하며 1년에 몇 십억을 버는 특급 연예인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나와 똑같은, 혹은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만 보일뿐이다. TV를 보는 그 몇 시간 동안은 그들이 TV밖에서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마저 망각의 저쪽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엔 웃음이 대신한다.
 
사람을 웃게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기본적인 하나는 바로 앞서 언급했듯 웃음을 주는 주체가 웃음을 행하는 객체에 비해 언제나 낮은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해서는 주체인 그들은 결코 '잘나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성립된다. 따라서 과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심형래, 이창훈의 연기에서 흔히 말하는 '바보 캐릭터'가 완성되었고, 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대세인 요즘에는 '평균이하 캐릭터'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캐릭터에 충실하여 망가짐을 피하지 아니하고, 외려 더 극대화시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과거에는 대본에 충실하여 바보를 연기했다면, 요즘엔 상황에 충실하여 즉흥적인 자기비하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대적 방식은 억지스러워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움, 즉 웃음의 리얼함을 생성한다.
 
연출이 주는, 실제보다 더 리얼한 리얼함
 
그러나 모두 다 인지하디시피 최근 이러한 캐릭터와 콘셉트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결코 대한민국 평균이하가 아니다. 사회적 지명도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볼라치면 외려 대한민국 평균이상이다.
 
그들은 단지 연출된 상황에서 대한민국 평균이하를 연기를 하는 연기자에 다름 아니며, 그러한 연기는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마감되어 그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자기 위치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방송을 하는 '프로'인 것이고, 이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기에 더 이상 논쟁에 여지가 없는 얘기이지만, 이러한 이중적 모습에 시청자들은 가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TV를 통해 접했던 그들의 모자란 웃음 뒤에, 인터넷을 통해 간간히 흘러나오는 연기자들에 실제 사회적 위치나 그들이 누리는 방송가에서의 권력, 혹은 그들 손목에 걸쳐져 있던 고급시계와 명품슈트 같은 사생활에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지금 화면에 비치는 그들의 평균이하의 모습까지도 다 연기란 것인가?'하는 의문과 함께 막연한 배신감도 든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TV속에서 시청자들이 언제나 진실이라고 느낄만한 리얼한 웃음을 전해주고 있다. 또 '리얼버라이어티'의 특징을 살려, '평균이하'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러한 모습은 때로는 앞서 언급한 배신감의 감정을 상쇄시키는 힘을 지니기도 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출이 주는 마법으로써 이러한 연출기법은 앞서 언급한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리얼한 웃음을 제공하게 해주는 기초가 된다.
 
연기자들 내면에 내제되어있는 실제의 모습도 그 연출 속에 상당부분 녹아있어야 이 모든 마법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출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말은 사실 무리일 테지만, 연출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같은 콘셉트로 제작되었더라도 프로그램의 성패는 각기 다르게 결정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연출의 힘은 연기자의 그것보다 강하다. 즉, 타고난 리얼 버라이어티 연출은 연기자의 50%의 리얼함을 TV 프로그램 내에서 100% 리얼함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TV속 그 모든 것을 '리얼'로 믿지 마라
 
결국 TV속에서 그들이 줄기차게 말하고 주장하는 대한민국 평균이하라는 자기비하와 캐릭터의 리얼화는 어디까지 연출된 콘셉트다. 연기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고유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면서 그곳에 연출자의 리얼한 연출이 가미되고, 아울려 극한까지 치닫는 상황에 캐릭터로 무장된 연기자들을 연출자가 내던짐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추구된 리얼함을 믿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100% 리얼함과는 엄연한 거리를 두고 있음은 물론이요, 때로는 시청자들에 주목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면에 내세워 지기도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최근 범람하는 쇼 오락프로그램들의 만들어진 리얼함과 그 내부의 자리 잡고 있는 자발적 자기비하로 인해서, TV의 인물과 현실의 인물을 동일하게 바라보거나 현실을 왜곡하여 인지하는 것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
 
실제적으로 이러한 과도한 동일시와 왜곡은 시청자로 하여금 여러 가지 쓸데없는 오해를 낳을 뿐만 아니라, 연기자에게는 외려 어떠한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최근 그들에 대한 몇몇 간접적인 비판의 기사에 대해 '불쌍한 우리 연기자들과 연출자들을 음해하는 무한도전 죽이기'라는 표현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러한 오해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의 극대화가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리얼함과 상충되었을 때인데, 이럴 때 시청자들은 실제의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극대화된 캐릭터와 연출된 상황으로 사람이나 현상을 인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결국 연출된 리얼함이 실제 리얼함을 뛰어 넘는 것이다.  
 
연출자는 이러한 오해를 막기 위해 극으로 치닫는 자기비하 캐릭터 극대화와 과장된 리얼함을 지양해야하며, 시청자는 이 모든 것은 100%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조리 거짓도 아니라는 방송의 특수성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배제된 상태로 무조건적으로 연출을 생성하고 또한 무조건 적으로 수용한다면 결과적으론 연출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비극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잊어선 곤란하다.

덧붙이는 글 | 정희웅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태그:#무한도전, #평균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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