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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니 얼굴 보니 이제 살겠다."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어루만지시는 시어머니. 5년 전 제가 유방암 수술을 받고부터 어머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셨습니다. 비밀은 없는 법이라 얼마 전 재발 소식에 병원도 안 가고 한방치료만 받는다니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여든을 바라보시는 시어머니께서 제 얼굴 보시려고 추석 명절에 맞춰 전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남편과 함께 어머님을 뵈러 마포 큰댁으로 갔습니다. 1년 새에 몸무게가 10kg나 빠졌지만 얼굴 살은 그대로 있어 그나마 안심이 됐습니다. 평소 안하던 화장도 살짝 했습니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아침 먹기 전에 온 몸을 주무르고 식사 후에는 1시간 정도 누워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맑은 가을 하늘, 시원한 도로, 상쾌한 기분. 그래도 30여분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말도 아끼고 최대한 편한 자세로 물도 자주 마셨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신심이 깊으신 불자이십니다. 결혼 25년 동안 어머니를 뵈어 왔지만 큰 소리 하시거나 화 내시는 모습을 못봤습니다. 늘 애썼다, 고생했다,  잘했다, 그 말씀뿐이십니다.

 

당신은 안 먹고 안 쓰시면서 손자손녀들에게 언제나 용돈을 두둑히 주셔서 존경 받는 할머니시죠. 저는 평생 김장을 담가보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이 해마다 택배로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김치뿐이 아닙니다. 온갖 무공해 양념류를 비롯해서 밑반찬, 떡은 물론이고 매실,석류까지 설탕에 재어 보내주십니다.

 

"이건 말이다……."

 

저를 구석으로 부르시더니 주섬주섬 조그만 보따리들을 내 앞에 내놓으십니다. 스웨터, 양말, 소화제, 각종 장아찌에 김부각, 누룽지랑 볶은 옥수수까지. 한두 해 겪는 일이 아니니 놀랄 일도 아닙니다.

 

"야, 이리 가까이 좀 와 봐라."

 

어머니가 목소리를 낮추시더니 제게 은밀히 말씀하십니다.

 

"네 가방에 돈 좀 넣어놨다. 봉투 2개는 경미, 승일이 용돈으로 주고 나머지는 너 써. 아플수록 돈이 있어야 돼. 남편한테도 말하지 마. 월급쟁이 남편한테 돈 타 쓰는 것도 눈치 보인다. "

 

절대 당신 아들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십니다. 당신 형편이 얼마나 고단하신지 잘 아는 며느리로서 시어머니께서 주는 큰 돈을 받고보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싶을 뿐 감사하단 말도 못했습니다.

 

며칠 전 친정 엄마와의 해프닝이 생각납니다. 3년 전부터 혼자 사시는 친정 어머니와 저희 4가족이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친정 어머니 또한 착하고 병약하여 세상살이가 버거워 보이는 제게 시어머니 못지 않은 사랑과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그런데 친정살이 6개월만에 병이 재발하고 나니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저는 저대로 화가 나고 속이 상했습니다.

 

수술도 할 수 없다는 말에 어머니는 저 몰래 많이 우셨습니다. 저는 두려움과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으로  삐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해 주는 음식, 맛도 없어. 제발 아무 것도 하지마. 수심에 찬 엄마 얼굴 보면 속이 뒤집혀. 도대체 엄만 왜 그렇게 내 말을 안 듣는 거야? 정말 징글징글하네. 아버지랑 평생 싸우며 산 이유를 알겠다. 엄마는 내 입에 넣을 음식에만 신경쓰지, 도대체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야~"

 

그렇게 엄마의 속을 후벼 파놓았건만 어머니는 추석 쇠러 아들네 집에 가시면서 연휴 동안 네 식구가 먹을 명절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정말 못 말리는 엄마가 미웠지만 참고 있었는데 집을 나서시며 봉투를 내미는 겁니다.

 

"얼마 안 된다. 맛있는 거 사 먹어라."

 

드디어 나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엄마~ 도대체 왜 그래? 왜 자꾸 나를 빚쟁이로 만들어~."

"내가 언제 너 돈 준 적 있냐?"

"병원에 있을 때 100만원, 제주도 갈 때 50만원, 약 값에 보태라고 50만원……. 그만 좀 해!"

 

불같이 화를 내는데도 점심이나 사 먹으라고 봉투를 내미십니다. "찢어 버린다~"했더니 옆에 섰던 남편이 엄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 저는 그 사랑이 늘 부담스러웠습니다. 늙으신 부모님께 효도는커녕 늘 받고 사는 게 자존심 상했습니다. 저도 때때로 두 분 어머니께 용돈이나 선물을 드리긴 했지만 번번히 훨씬 많은 것들이 돌아오곤 해서 기분이 상하곤 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두 분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당신들의 욕심이라 규정하고 한 목소리로 성토를 하곤 했지요.

 

시어머님의 선물을 잔뜩 안고 집으로 돌아와 생각하니 제가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25년간 철이 바뀔 때마다 보내 주셨던 그 사랑 꾸러미를 한 번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병원 신세를 질 때마다 친정 엄마에게 돈을 받으면서도 마음은 천근만근이었습니다. 나는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그 분들의 사랑을 받았더라면 지금처럼 더 큰 사랑을 필요로 하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텐데….

 

두 분 어머니의 사랑을 거부했기에 그 분들은 사력을 다해 나를 사랑하시려하는구나. 받는 것이 그 분들에게 기쁨인 것을 몰랐구나. 그래서 나도 자식에게 주려고만 했구나. 친정 어머니가 "지는 경미한테 나보다 더 하면서……"하시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가족들이 성묘 가고 텅빈 집에 혼자 남았어도 두 분 어머니를 가슴에 품을 수  있게 된  이 기쁨은 한가위의 풍성함을 독차지한 기분입니다. 얼씨구~좋다~


태그:#어머니의 사랑, #유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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