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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맘때였다. 당시 나는 프로덕션에서 보조 작가로 일을 하다가 그만둔 상태였다. 잠시만 쉴 요량이었는데 예상치 않게 '방콕'이 길어지자, 조급한 마음에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지게 되었고, 그때 발견한 것이 '선거 사무원'이었다. 하는 일을 보니 '총선 예비 후보자 홈페이지 관리 및 홍보 문구 작성'이어서 글쓰기에 나름 자신이 있었던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지원했다.

며칠 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노원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고 하며,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라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사무실 위치를 알려주었다.

선거사무실이라고 해서 북적거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사무실에 사람 좋아 보이는 노신사 한분만 있었다. '아무개님을 찾아왔다'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세 번째 도전이라고 하시더니 나이가 드셨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사를 했다.

면접이 시작되었다. "대학을 두 군데 졸업하셨구먼." 나의 이력서를 훑어보며 그분이 물었다.

나는 96년 M대학을 졸업하고, S대학에 편입을 해서 2000년 졸업했다. 대학 순위표에 따르자면, M대학은 중하위권에, S대학은 중상위권에 속하는 대학이다. 3학년으로 편입한 S대학은 2년 동안 휴학을 해서 4년 만에 마쳤는데 이게 문제였다. 이력서에 S대학 편입학 사실을 표기하지 않으면 수능을 봐서 입학한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이력서를 제출할 때 나는 이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학력란에 '몇 년 M대 입학'이라고 표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S대도 편입학 사실을 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S대학은 다시 시험 봐서 들어간 건가?" 애매한 물음이었지만, 나는 그분이 무엇에 관해 묻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입학이냐, 편입학이냐를 묻는 것이겠지. "예." 나는 핑계를 댔다.

'다시 시험 봐서'라는 말은 '다시 수능을 봐서' 외에도, '다시 편입시험을 봐서'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고. 내심 '다시 수능을 봐서?'라고 묻는다면, 그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추가 질문은 없었다.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분이 면접비라는 글자가 써진 봉투를 내밀며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순간 내 양심에서 삐거덕 소리가 났다. 하마터면 그분의 손을 잡고 "저 사실은 편입학한 거거든요!"라고 소리칠 뻔했다.

목구멍까지 넘어온 말을 삼키며, 봉투를 받았다. 일부러 태연하게 '거짓말한 것도 아니니 이 정도는 괜찮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약간의 죄책감도 가져선 안 되는 거였다. 그건 내가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므로.

며칠 후 연락이 왔다. 내일부터 출근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기뻤지만, 불안했다. 그날 밤에 꿈을 꿨다. TV에서 개표 방송을 하고 있다. 아나운서가 국회의원 당선자를 호명하고 환호성이 터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에워싸고 그분의 손에는 꽃다발이 잔뜩 들려있다. 뚜벅뚜벅 그분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그리고는 내 앞에서 멈춰 서더니 한동안 나를 말끄러미 쳐다본다. 마치 '너 혹시 나 속인 것 없니?'라고 묻고 있는 것처럼.

다음날 출근을 하면서 몇 번이나 다짐했다. 오늘 말하는 거다. 지금이라면 가볍게 끝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얼굴을 보자,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난감해졌다.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아참, 면접날 저한테 물어보신 것 말인데요……"라고 할 수도 없고.

망설이다가 하루가 지났다. 나는 조금 구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은 벌써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혼자 똥줄이 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고. 어차피 아르바이트라 몇 개월이면 끝날 텐데 쓸데없이 까발려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지 않으냐는 얄팍한 계산과 함께.

처음 며칠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면서 불안감도 옅어졌다. 사무실 식구들이 늘어나고 선거준비가 본격화되면서 그분은 항상 바빴으며, 얘기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선거사무실에는 원래 지역의 시·구의원들, 자원 봉사를 하려는 지역주민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들에게 그분이 나를 꼭 소개하는 거였다. "이 친구가 M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시험을 봐서 S대학을 졸업했다. 그래서 대학을 8년이나 다녔다. 가방끈이 아주 긴 친구다" 등의 말과 함께.

그때부터였다.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가 몰아쳤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S대학 입학생'이라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게 되면, 그분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고해성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내가 했던 모든 일들에 대한 진정성마저도 의심받게 될 것이다.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더 이상의 침묵은 나를 믿고 있는 사람에 대한 기만이며, 배신일 것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그분에게 사실을 밝혔다. 털어내고 나자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내 고백을 듣고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학력보다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입학을 했건 편입학을 했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안 그래?"

그날 나는 펑펑 울었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누군가로 포장하면서까지 무엇이 되고 싶어했던, 무엇을 하고 싶어했던 내가 나를 너무나 서럽게 했다. 왜 나는 나 자신만으로는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없는 것일까. 왜 처음부터 사실을 밝힐 용기를 갖지 못했던 것일까. 찰나의 자존심 때문에 나는 왜 거짓말쟁이가 돼서 '사실은 어쩌고저쩌고' 구차한 변명들을 늘어놓아야 하는 것일까.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을 했지만, 나는 그 거짓말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았다.

거짓은 진실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활개를 치는 것 같다. 만약 그분의 인격이 덜 훌륭했다면, 그분의 성정이 더 고약했다면 나는 그런 이유로 계속 침묵했을지도 모른다. 또 그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회의 편견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든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댔을지도 모른다.

학력은 외모나 말투처럼 나를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거기에는 룰이 있다. 스스로 거짓된 학력을 말하지 않을 것. 신정아씨나 이창하씨가 오랜 시간 남을 속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나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이끌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마련이다. 백지상태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속이는 것은 쉬울지 모른다. 그들은 뒤돌아서면 잊힐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서로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이가 되면, 그들은 내게 친구, 동료, 선배, 직장상사 등의 '의미'가 된다. 그런 관계들이 생기면서 나는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다. 나는 순식간에 퍼져버린 거짓말로 인해 뼈아픈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거짓말로 쌓아올린 지위는 그 거짓말이 폭로되는 순간 모두 거짓이 되어버리고 말 테니까.

살다 보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나를 높이고 싶을 때가 있다. 대학을 나왔건 안 나왔건, 그 대학이 명문대학이든 아니든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학력보다는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는 과연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거짓말로 남을 속일 수는 있지만,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내 것이 확실한 것을 가지고 페어플레이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내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학력 콤플렉스> 응모글


태그:#거짓말쟁이, #학력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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