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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세계 시민기자 포럼의 통역 자원봉사자들.
ⓒ 한나영

제3회 세계시민기자 포럼 폐막을 두 시간 앞두고 <오마이뉴스>로부터 짧은 폐막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폐막사를 부탁한 김 아무개 차장은 안내데스크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큰딸에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가 폐막사 하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러자 딸아이가 이렇게 삐딱하게 대답했다지?

"그런 거 시키지 마세요. 자기가 엄청 잘난 줄 알거든요."
'얘야, 내가 나를 잘 아는데 무슨 그런 망발을….'

하여간 포럼 끝나는 날까지 우리 두 모녀의 관계는 이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따라서 청탁 받은 '모녀참관기'도 모녀간의 아기자기한 대화를 통한 아름다운 공조를 기대할 수 없고 그냥 내 쪽에서 보고 느낀 대로만 써보려고 한다.

통역 자원봉사 한 번 해 볼까

▲ 오연호 대표는 큰딸이 '안티'인 걸 알까?
ⓒ 한나영
한 달 전 쯤에 예고되었던 세계시민기자 포럼의 통역 자원봉사 공고를 보고 나는 딸에게 넌지시 권유를 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니 이참에 자원봉사 신청을 해보는 게 어때?"

큰딸은 호기심이 동했는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그런데 고등학생은 신원이 확실하지 않아서 어쩌면 뽑아주지 않을지도 모르니 한나영 딸이라고 말하는 게 어때? 그러면 확실할 것 같은데."
"미쳤어?"

딸아이의 버릇없는 한 마디에 우리 모녀의 대화는 그만 끝이 나고 말았다. 나 역시 딸이 뽑히든 말든 그건 전적으로 아이들 일이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자원봉사자로 합격(?)되었다는 소식이 이메일로 통보되었다. 두 딸은 자기들이 하고 싶어 했던 일이었던 만큼 기뻐했다. 한나영 딸인 것을 팔지(?) 않고도 너끈히 뽑힌 게 기특해서 신청할 때 뭐라고 썼냐고 물어보았다.

잡일(?)에서 안내, 통역까지 가능함. 뽑아주세요.

"그래,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추억이 될 테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가장 큰 소득이 될 거야."

진지한 충고를 건네는 나에게 딸아이의 날선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엄마, 이번 포럼에 엄마랑 같이 가게 된 게 영 맘에 걸리는데… 거기 가서는 절대로 아는 체 하지 마. 알았지?"

"한나영 딸이라고 말하는 게 어때?" "미쳤어?"

▲ 포럼에 열심히 참석한 작은딸. 혹시 언론인이 꿈?
ⓒ 한나영
험상궂은 표정으로 신신당부를 하는 딸아이를 보며 딸 소원대로 그렇게 해주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포럼 첫날부터 딸이 바라던 바는 이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두 모녀를 알고 있는 일부 참석자들이 '혈연관계'를 폭로(?)하기도 했고, 또 동영상에서 봤다고 아는 체를 해온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신분이 노출되어 두 딸들은 한나영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사소한 일에 목숨걸 만큼 두 딸이 한가롭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록 고급스럽고(?) 어려운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두 딸은 분주한 안내데스크에서 국내외 시민기자들의 신원을 확인해서 이름표를 나눠주기도 하고, 외국인들의 안내를 돕기도 하는 등 필요한 잡일(?)을 하면서 포럼을 도왔다.

▲ 안내데스크에 있는 오른쪽 두 소녀가 자원봉사자 두 딸이다.
ⓒ 남소연
특별히 이번 자원봉사 활동에서 두 딸을 행복하게 했던 것은 함께 자원봉사 활동을 한 언니, 오빠들과의 만남이었다. 아이들은 유창한 통역사 언니들을 보면서 유능한 커리어우먼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회성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결국 만남이다. 관계이고. 그런 점에서 두 딸들은 이번 포럼을 통해 귀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특히 막내라고 사랑을 듬뿍 받아서 늘 밝고 환한 표정이었는데, 많은 시민기자들로부터 '포럼의 마스코트'라는 과분한 칭찬을 받기도 했다.

사실 공학도를 꿈꾸는 큰딸은 이번 포럼의 주제가 지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과 지망생인 작은딸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차례 세션에 참석하여 진지한 경청을 했다. 하여간 이번 포럼에서의 자원봉사 활동은 두 딸에게 대단히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만남을 통해 얻는 아름다운 관계

안토니오 릭스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와 정반대 위치인 남반구의 브라질에서 온 시민기자다. 우리나라에 오기까지의 긴 여정을 그로부터 들었다.

△ 상파울로에서 페루까지 8시간 비행 (2시간 대기)
△ 페루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9시간 비행 (5시간 대기)
△ 로스엔젤레스에서 인천공항까지 12시간 비행
▲ 총 36시간 소요


무려 하루하고도 반 나절이 걸린 긴 여행이었다. 하지만 장성한 3남매를 둔 중년의 안토니오는 기운이 펄펄 넘치고 있었다. 난생 처음 찾은 아시아 대륙과 한국 방문이 그를 설레고 흥분되게 한다고 안토니오는 말했다.

사실 이번 포럼이 아니었다면 그도 한국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고 나 역시 그 먼 나라와 그 나라 사람에 대해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말에 나는 먼저 축구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는 축구를 싫어했다.

'에엥, 브라질 사람은 모두 축구 광팬인줄 알았는데.'

온 사방에 축구장이 널려 있는 브라질. 사람 머리가 축구공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브라질 사람들. 이런 열광 팬이 많은 브라질만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안토니오가 들려준 이야기는 의외였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에만 미쳐있는 거지?"

그래서 안토니오가 선택한 스포츠는 농구. 또한 브라질의 유명한 삼바 축제에 대해서도 안토니오는 관심이 없었다. 물론 그는 여느 브라질리언처럼 삼바춤의 기본 스텝은 밟을 줄 알았다. 내 앞에서 직접 시연을 해 보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안토니오는 '집단'이 광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살벌한 풍경이 싫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안토니오는 대단히 흥미로운 대화 상대이기도 했다.

▲ 브라질의 삼바춤 시연을 하는 안토니오 릭스.
ⓒ 한나영
브라질리언은 다 축구팬인 줄 알았다

안토니오 "뉴욕에 가봤어요?"
"예."
안토니오 "뉴욕에서 뭘 봤어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맨해튼, 자유의 여신상, 카네기홀, 9·11 현장, 기타 등등."
안토니오 "난 그런 곳 절대 안 가요."
"?"
안토니오 "그런 곳은 이미 TV나 책으로 다 봤잖아요. 굳이 눈으로 확인할 필요 없거든요."
"그럼, 안토니오는 어디를?"
안토니오 "저는 뉴욕의 할렘가나 관광객들이 외면하는 그런 곳을 주로 찾아가요. 그 곳에서 미국의, 뉴욕의 진면목을 볼 수 있거든요."
"아!"

새로운 만남을 통하여 내 눈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번에 열린 제3회 세계 시민기자포럼을 통하여 나는 각국의 시민기자들과 시민저널리즘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각 나라의 시민저널리즘 현황'과 '시민저널리즘을 통한 대중의 참여'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포럼을 통하여 시민저널리즘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새삼 시민저널리즘의 큰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딱딱한 주제 외에도 큰 소득이 있었다면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흉금을 터놓고 사는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주제는 결국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는이야기를 통하여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이번 포럼은 귀중한 자산 하나를 얻을 수 있었던 '체험,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 남산 한옥마을을 찾은 세계시민기자들.
ⓒ 윤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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