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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6월 4일자 김대중 칼럼 제목이 '6개월 반만 참자'였다. 제목 한번 기가 막히게 붙였다. 내용을 읽지 않아도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올 연말의 대통령 선거일까지만 참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는 확신이다. 박근혜 이명박 둘 중 하나는 될테니까.

4년 6개월 동안 김대중 칼럼의 주요 의제는 '노무현 죽이기'였으며, 그 목적은 언론권력의 권좌를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리라. 따라서 '6개월 반만 참자'는 다짐은 단순히 노무현 정권의 마감 차원을 넘어 한나라당 정권의 등장을 고대하는 심정을 피력하는 것이다.

6월 19일자 칼럼 '야당의 일차 시험대'는 '한나라당 후보 지지 선언'이다. "대통령으로부터 여당의원들과 친노세력에 이르기까지 야당 후보들에 대한 공격은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면서 야당 후보들을 감싸는 한편으로 "야당 후보들끼리 하는 공방도 피아(彼我)를 구별할 수 없다. 이래 가지고는 한나라당 후보가 경선의 결과로 단일화된대도 하나로 뭉쳐 본선에 임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라며 걱정한다.

그리고 박근혜 이명박 "두 후보가 승복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8월 20일 이후 단일화된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에 적극 나설 것을 국민 앞에 서약하는 이벤트를 마련하라"고 주문한다. 그리해서 한나라당이 새 대통령을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 정당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작심하고 쓴 명백한 선거운동이다. 선거법은 공무원뿐 아니라 언론매체(보도기관)의 선거운동도 금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할 것 같다.

7월 2일자 칼럼 '대통령의 종횡, 사회의 침묵'도 그 연장선에 있다. 대통령이 천방지축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데도 사회의 지성들과 정치권, 시민사회가 활력과 동력을 잃고 안이하고 무기력하게 안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집권세력과 20여명의 대권 '이무기'들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별다른 질책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야당 후보들에게는 애정의 훈수를 하면서 그 밖의 소위 범여권 후보들은 '이무기'로 깎아내리고 있다.

이에 앞서 5월 7일자 칼럼 '이명박·박근혜도 막판 단일화로 가자'는 더 심하다. "두 사람이 도(度)를 넘어 인신공격을 하고 감정적으로 대결하는 모습이 멈춰지지 않으면 경선시기를 대선에 임박해 늦추거나 아예 경선을 없애 끝까지 경쟁하도록 한 후 선거 막판에 가서 자신의 지지도에 대한 객관적 자료와 냉엄한 평가를 토대로 한 사람이 용기 있게 사퇴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건의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가 모델이다.

김대중 칼럼의 주제는 크게 세 부류다.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규정해 민심을 이반시키는 일, 한나라당에 대한 애정 어린 훈수, 북한에 대한 증오 등이다. 이 세 부류는 하나의 뿌리를 갖는다. 반공주의다. 세상에 아직도 반공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다니. 불행하게도 사실이다. 김대중은 수습기자 시절부터 반공주의로 굳게 무장돼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역사는 이미 반공주의를 잊어가는데. 김대중의 반공주의는, 김정일의 하수인 격인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고 우파정권을 세우자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 퇴행적인 논리가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수구신문들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저항의 몸짓이고 권력의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 올곧은 비판의 정신이다."

"근대화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부정을 응징하며 권력 남용을 용서하지 않는 정신을 스스로 닦아왔다."

"식민지시대부터 우리 정신운동의 토양을 이루었던 비판과 저항은 산업화시대, 군부 탄압시대에도 굴하지 않고 이어져왔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다. 위 7월 2일자 칼럼에 등장하는 김대중의 사자후(獅子吼)다. 우리는 이렇게 눈 한번 깜빡거리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역겨운 궤변을 언제까지 귀 아프게 들어야 할까? 5개월 반만 참으면 될까?

태그:#김대중칼럼, #조선일보, #노무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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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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