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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원-최현아씨 부부.
ⓒ 구은희
"최현아씨는 무슨 일 해요?"
"저는 학생이에요."
"최성원씨는 무슨 일 해요?"
"저는 변호사예요."
"구은희씨는 무슨 일 해요?"
"저는 선생님이에요."


초급 2반에서 지난 학기에 배운 '무슨 일 해요?'를 복습하고 있는데, 이번 학기에 새로 등록한 백인 학생 최성원씨가 "'선생님'이 부산 사투리로 뭔 지 아세요?"라고 갑자기 영어로 묻는다. 아마도 '선상님'을 생각하는 듯 해서 "'선상님'이요?"라고 되물었더니 "아니요, '샘'이요"라고 하였다.

요즘 한국에서는 '선생님'을 '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최성원씨의 입에서 '선생님'은 '샘'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사실, 요즘은 모두 줄여서 써서 새로운 언어가 생겨난 듯하다. 한국에서는 모두 '김 샘', '박 샘' 등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최성원씨는 '샘'이 '선생님'의 부산 사투리인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말줄임은 기본형은 유지하면서

어느 나라나 좀 더 짧고 단순하게 단어를 축약하고자 하는 '언어경제법칙'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영어에서도 'I am'의 축약형인 'I'm'이 있는 것이고, 한국어에도 '저의'의 축약형인 '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어를 축약할 때에는 반드시 그 축약형을 통해서 본래 형태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말줄이는 경향을 보면 기본형까지 무시한 상태에서 앞 글자만 따서 축약을 하기 때문에, 따로 암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제3의 언어처럼 된다. 또한, 그 형태가 단어의 축약을 넘어서 문장을 단어화시키는 그런 행태까지 나타나 이제 정말 한국 사람들끼리도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가 되었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도 '안습'이니 '악플'이니 하는 등의 근거 없는 말들이 범람하고 있고, 또 두 개의 명사로 이루어진 말은 그 자리에서 무조건 앞 글자만 따서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하루에도 몇 개 정도의 그러한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우리 말들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러한 아픔 조차 생각도 못 하고, 그냥 재미로 그 일에 동참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4년간 영어를 가르쳤던 최성원, 최현아씨 부부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등록한 최성원, 최현아씨 부부는 4년 동안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원어민 영어 교사였다. 사실, 최성원씨는 변호사인데 영어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부인을 따라서 한국에 덩달아 영어 교사로 자원해서 4년 동안 학교에서 재직했다고 했다.

그렇게 4년을 살았음에도, 아는 한국어라고는 음식 하고 관계된 말이나 택시를 탈 때 쓰는 말밖에는 모른다고 했다. 다행히 서툴지만 한글 자모는 읽을 줄 알아서 초급 2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이 부부가 '샘'이라는 말을 '선생님'의 사투리로 알 정도이니 한국에서의 말줄임 행태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샘'이 아니라 '선생님'으로, '변'이 아니라 '변호사'로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어 책이나 한국어 수업에서는 '선생님'이나 '변호사'로 배웠는데, 한국에 가서는 '샘'이나 '변'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혼동이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구은희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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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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