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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료증을 들고 기념 사진
ⓒ 구은희
1년에 4번씩이나 있는 행사지만 언제나 한 학기를 마치고 종업식을 하기 전에는 설렘이 있다. 특별히 각자 가져온 음식들을 펼쳐 놓으면 뷔페가 따로 없다.

본래는 한국 음식을 한 가지씩 가져오기로 하였지만, 자신의 편의에 따라 직접 중국 음식을 만들어 오기도 하고, 필리핀 전통 디저트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게 음식이 있어서 더욱 잔치 기분이 나곤 한다.

지난 번까지는 음식을 먼저 나눈 후에 종업식을 갖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좀 산만해지기도 하고, 준비해 온 발표 내용을 잊어버릴까봐 음식을 먹지 않는 일까지 생겨 이번에는 각자 배운 것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 발표를 마치면 수료증을 수여하는 방법으로 식을 진행했다.

전보다 좀 더 달라진 것이 있다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파워포인트나 다른 컴퓨터 파일들을 준비해 왔고, 자신보다 낮은 레벨의 학생들을 위해서 자신들의 발표 내용을 한국어와 영어로 모두 적어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중급반 학생들이 한국어로 발표를 할 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조금은 지루해 하던 전과는 달리, 영어로 된 내용을 읽으면서 한국어 발표를 들을 수 있어서 새로운 말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가수 사진들을 붙여서 만든 포스터를 들고 있는 강만석 씨
ⓒ 구은희
저는 oo을/를 좋아해요

난생 처음 한국어를 배운 초급 1반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 국적을 비롯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다. 브라질 학생 강만석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 사진들을 모두 붙이고 위에는 '저는'을 크게 쓰고, 맨 밑에는 '좋아해요'를 써서, '저는 oo을/를 좋아해요'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한국인 약혼녀와 함께 참석한 김대영씨는 초급 1반보다 훨씬 수준 높은 단어들을 찾아와서는 오히려 발표 당시에 그 단어들이 기억나지 않아서 당황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아리랑 아저씨 왕중화씨는 발표 끝에 '아리랑' 노래를 다시 한 번 불러서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아리랑'을 부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저희 가족은요...

초급 2반 학생들은 자기 가족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숫자를 배운 초급 2반 학생들은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년월일과 나이 등을 소개했다. 이 중 아버지가 외동 아들이시고, 자신이 외동딸인 필리핀 학생 김정미씨가 7명의 이모 가족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여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 파워포인트로 자신의 발표를 준비한 김정미 씨
ⓒ 구은희
초급 1반 종업식 때, 떨려서 밥도 못 먹던 중국인 남편을 둔 백인 학생 배승희씨는 이번에는 두 번째라서인지 하나도 떨지 않고, 자기 가족들의 음력 생일까지 발표 내용에 넣어서 참가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유럽에 출장가면서도 부인이 준비하여 준 비디오 내용을 가지고 열심히 준비하여, 완벽하게 발표 내용을 외워 발표한 중국인 왕지원씨 역시 초급 2반의 위력을 보여줬다.

초급 1반을 거치지 않고 바로 초급 2반에 편입(?)한 터키 학생 김한기씨 역시 파워포인트로 자신의 아들과 자신이 살던 터키의 지도를 보여주며, 대화 형식으로 발표를 하여 신선함을 주었고, 한국에 자주 가곤 했던 저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 터키 지도로 자신이 살던 곳을 알려주는 김한기 씨
ⓒ 구은희
저희 집부터 직장까지는 40분 걸려요

초급 3반은 직장에서 집까지의 지도를 보이며 길 안내를 하였는데, 언제나 유머가 넘치는 유대봉씨는 집부터 스타벅스까지의 안내와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신 후 직장 가는 길까지의 안내로 나눠서 발표했다.

꼼꼼한 성격의 유대인 학생 정성운씨는 자전거로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방법을 상세하게 발표하여 평소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였고, 회계사인 한국계 미국인 유진씨는 인터넷을 이용한 길 안내 내용으로 발표하였다.

어머니의 생신이 겹쳐서 참석하지 못 한 정윤경씨는 미리 준비된 영상으로 발표를 하기도 하였는데, 편집하지 않고 녹화 당시의 그 상황을 그대로 보여줘서 오히려 재미를 주었다. 아쉽게 참석하지는 못 했지만, 미리 영상 발표를 준비하는 성실한 태도를 보여서 다른 학생들의 귀감이 되기도 하였다.

농담부터 '희망사항'까지

마지막으로 중급반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발표하고 싶은 내용을 발표하였는데, 일본인 학생 케이코 요시다(한국 이름 유경호)가 변진섭의 노래 '희망사항'을 부르기도 하였다. 특히, 자신의 한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부분의 여성 파트를 부를 사람까지 데리고 와 '희망사항'을 제대로 불렀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을 한국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우성호씨는 미국 농담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어로 먼저 발표하고 후에 영어 번역 내용을 보여주며, 수수께끼 형식으로 발표를 하기도 하여, 웃음을 선사했다.

▲ 각자 가져온 음식을 서로 나누는 학생들과 가족, 친구들
ⓒ 구은희
한 사람씩 발표가 끝난 후에는 영어 이름과 한국 이름이 모두 적혀진 수료증을 받았고, 단체 기념 촬영을 한 후에, 준비해 온 음식으로 잔칫상을 차렸다. 모두들 배불리 맛있게 먹은 후에, 6월의 한국영화로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라디오 스타>를 상영하기도 하였다.

한 학기 한 학기가 지나면서 점점 실력이 향상되는 학생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다음 주에 다시 시작하는 여름 학기에는 또 어떤 새로운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본교를 찾을지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구은희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한국어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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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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