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안도현의 <연어>
ⓒ 문학동네
안도현의 <연어>가 100쇄를 돌파했다는 뉴스를 어제 접했다.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100쇄면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요즘처럼 바쁜 현대인들에게, 시간은 곧 금인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주 딱 맞춤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의 두께가 아주 앏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용이 아주 가볍다(?)는 것이다. 사실 난 이 책을 아주 오래 전에 읽었고 서평 또한 모 기독교 매체에도 보냈었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100쇄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기쁜 소식으로 다가온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이 책을 꼭 소개하고픈 마음에 오래전에 적었던 그 서평을 찾아 몇 군데를 다듬어 소개한다.

당시 난 안도현의 <연어>를 꽤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서 '재미'는 그 만큼 곱씹을 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곱씹을 것이 많은 책, 그래서 난 주저 없이 주변에 이 책을 소개하곤 했다. 글 보다 그림이 더 많은 소설, 거기다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두께도 얇아 책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 주는 가벼운 책이다.

쉽게 말해 어른동화, 그러니까 우리식(?) <어린왕자>라고 할까?

줄거리는 이렇다. 은빛연어 한 마리가 연어 떼와 함께 모천으로 회귀하는 긴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와 사랑, 그리고 정체성을 배워나간다는 내용이다.

안도현은 이 단순하고 동화적인 평범한 연어들의 모천회귀를 통해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읽게 한다. 연어는 모천회귀성 물고기이다. 자신이 태어났던 모천을 떠나 바다로 갔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모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을 산란하고 죽는다.

이 긴 여행 중에 은빛연어는 누나연어를 잃기도 하고, 또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눈 맑은 연어, 그녀는 불곰에게서 은빛연어를 구하다 상처를 입게 되고 이로 인해 둘은 사랑을 하게 된다. 상처 입은 눈 맑은 연어가 고통스러움을 참으며 은빛연어에게 속삭인다.

"네가 아프지 않으면 나도 아프지 않는 거야."

그럼, 우리네들의 사랑은?, 안도현은 은근히 우리의 삶을 비튼다. 그러면서 어느 광고 문구처럼 묻는다.

'너희가 사랑을 알어?'

이처럼 <연어>는 불쑥 불쑥 우릴 당혹스럽게 한다. 이 당혹스러움은 우릴 몇 번이나 <연어>를 다시 곱씹게 한다. 천신만고 끝에 모천인 초록 강에 이른 연어 떼. 여기서 은빛연어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연어의 정체성!', 모천으로 향한 출발에서부터 끝임 없이 따라다녔던 의문이었다. 은빛연어의 얘기를 들어보자.

"우리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가 오직 알을 낳기 위해서 일까? 알을 낳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 그게 우리 삶의 전부라고 너는 생각하니, 아닐 거야. 연어에게는 연어만의 독특한 삶이 있을 거야, 우리가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을."

'연어만의 독특한 삶!', 그런데 은빛연어는 여행의 출발에서 전혀 다른 '연어의 정체성'을 말했었다.

"은빛연어는 과식을 하지 않는다… 자기 욕망의 크기만큼 먹을 줄 아는 물고기가 현명한 물고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어는 연어의 욕망의 크기가 있고… 고래가 연어의 욕망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고래가 아닌… 연어는 연어로 살아야 연어인 것이다."


연어의 연어다움을 자랑스러워했던 은빛연어가 갑자기 연어만의 독특한 삶을, 희망을 꿈꾼다는 것은 모순 아닌가? 여기서 안도현은 은빛연어의 연어다움을 넘어서려는 '자기부정'을 통해 인간의 '자기부정'의 욕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꼬집는다. 결국 우린 안도현에 의해 어류보다 못한(?) 존재로 하락한다.

▲ 100쇄출판 기념 콘서트
ⓒ 문학동네
이때 초록 강이 등장한다. 초록 강은 흐르는 강물을 통해 다시 연어다움이 무엇인지를 잔잔하게 일깨워준다. 초록 강이 말했다.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지 꿈이랄까? 희망같은거 말야.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란다."

은빛연어는 초록 강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하나 존재의 괴로움을 풀어나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알을 산란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류로 가는 길목에 폭포가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학자 연어의 조사에 따르면 이 폭포는 폭이 10미터 높이는 3미터이다. 이 폭포를 뛰어 오르기 위해서는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속력보다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속력을 과학자 연어는 알 수 없다.

연어 떼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지만 묘안이 없다. 이때 과학자 연어가 나타나 인간들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쉬운 길을 찾았다며 그 길로 가기를 제안한다. 연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은빛연어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쉬운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쉬운 길은 연어들의 길이 아니야. 알을 낳는 일은 매우 중요해. 하지만 알을 낳고 못 낳고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고 좋은 알을 낳는가 하는 것도 중요해. 우리가 폭포를 뛰어 넘는다면 그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우리 새끼들에게 고스란이 넘겨주지 않을까? 우리가 폭포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 뿐이야."

은빛연어는 누나를 잃고, 눈 맑은 연어를 만나고, 초록강을 만나고, 폭포를 만나면서 서서히 연어에게 알을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귀한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알을 낳는다는 것이 보잘 것 없는 일이 아니라 연어다운 가장 가치 있는 삶임을 모천회귀라는 긴 여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이다.

"맞아, 쉬운 길은 길이 아니야!!!"


연어들이 외쳤다. 하루하루 시류에 묻혀 흘러가는 우리들에게 '쉬운 길은 길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연어들의 외침에 화들짝 놀랐다면 이 책의 가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시대에, 감히 우리들을 향해 역류하라고 선동(?)하는 안도현의 <연어>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지침서가 된다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부딪치는 "폭 10미터 높이 3미터"의 거대한 담을 뛰어 넘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다음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연어 (특별판)

안도현 지음, 데버러 스미스 옮김, 문학동네(2017)


태그:#안도현, #연어, #100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