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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출입구에서 일하고 있는 학생.
ⓒ 홍성희
A대학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24·남)씨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섯 달째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요즘은 방학 중이라 낮 12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한다. 토요일에는 오전 9시에 나와 오후 1시까지 일한다. 김씨가 받는 돈은 시간당 4100원. 법정 최저 임금인 3480원에 약 600원을 더한 금액이다. 김씨는 이렇게 한 달 일해서 65~68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매달 김씨가 받는 돈은 '임금'이 아니라 '장학금'이다. 이른바 근로장학금. 대다수 대학들은 근로장학금이란 명목으로 학생들이 일한 대가를 장학금 예산에서 지급하고 있다. 김씨는 "일하고 받는 돈인데 학교가 마치 장학금을 주는 것처럼 생색낸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김씨와 같이 학교에서 일하는 학생들은 도처에 있다. 학교 도서관에서 각 단과대 행정실, 학생처, 식당, 학장 비서실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 이들이 하는 일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다. 대부분이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로 출퇴근 시간도 정규 직원들과 비슷한 경우가 많다.

같은 대학 도서관에서 1년 넘게 일했다는 대학생 정아무개(26·남)씨는 "사서 같이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몸으로 일하는 건 우리가 거의 한다"고 말했다.

정규직 대신 싼값에 학생 쓰는 '근로장학금'?

▲ 경희대 근로장학생 모집 공고. 도서관에서 예비군 연대본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 경희대 홈페이지
대다수 대학들은 근로장학금을 확충하는 추세다. 근로장학금은 해마다 대학들이 발표하는 장학금 총액에 포함돼 장학금으로 분류되고 있다.

교육부가 2005년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4년 전국 4년제 대학들의 장학금 가운데 근로장학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8%. 전체 장학생 가운데 근로장학생의 비율도 12%에 이른다.

고려대의 경우, 2003년도 현황을 보면 전체 교내 장학금 수혜자는 1만2583명이다. 여기서 근로장학생은 2558명으로 전체 장학생의 20.3%. 이들은 노동의 대가로 장학금을 받는 셈이다. 장학금이 늘었다고 해도 학생들이 체감하는 혜택이 여전히 미비한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A대학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생 박아무개(28·남)씨는 "일하고 받은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장학금 수혜 내역에 기록이 돼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B대학에 재학 중인 강아무개(22·여)씨는 "장학금은 등록금 중 일부를 학생들에게 환원하는 것인데, 일하고 돌려 받는 게 무슨 환원이냐"고 꼬집었다.

2005년 5월, 고려대에서는 근로장학금의 폐지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들은 학교가 장학금을 유용해 학생 비정규직의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며 근로장학금을 폐지하고 그 금액을 전액 면학장학금으로 돌릴 것을 주장했다. 또 학생 비정규직이 정규 직원들을 대체하고 있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등록금 올라도 시급은 그대로... 유급휴가·생리휴가도 없어

근로장학금은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시간당 4천원에서 5천원 수준. 등록금은 해마다 오르지만 근로장학금은 몇 년째 제자리다. 근로장학금이 등록금을 마련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시급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A대학 김아무개씨는 "근로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마련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숙을 하는 김씨는 하루에 7시간씩 도서관에서 일하지만, 하숙비와 생활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한 달 평균 15만 원 정도. 하지만 등록금은 300만 원이 넘는다. 한 달에 15만 원씩 저축을 해도 20개월이 넘는 시간이 필요한 셈. 김씨는 현재 일 주일에 세 번 과외를 병행하고 있다.

A대학 행정보조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송아무개(22)씨는 "보통 엑셀 작업이나 서류 정리를 한다"며 "밖에서 사무보조가 받는 임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으로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씨는 점심 값이 나오지 않는 것도 큰 불만이라고 했다.

근로장학금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하는 학생들은 실상 비정규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일하고 있지만, 학교 측은 이들을 '장학생'으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학교와 학생 사이에는 고용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기자가 만났던 근로장학생들 중에서 근로계약서를 쓴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유급휴가나 생리휴가, 노동시간, 그리고 시간 외 노동에 대한 추가수당에 대한 기준 역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도서관에서 일하는 박아무개씨는 1년 넘게 일했지만 지금까지 네 번의 휴가를 냈다. 박씨는 "정해진 휴가 일수가 없기 때문에 도서관에 정식근무하는 직원들의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2006년 11월 10일자 <고대신문> 독자투고에는 일하는 학생들의 어려움이 잘 드러나는 글이 실렸다. 글을 투고한 A씨는 작년 10월 교육대학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했었다. 당시 교육대학원은 입시철이었기 때문에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밤 9시 30분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근무했다. 하지만 야간근무와 주말근무에 대한 추가수당은 지급되지 않았다.

그러던 11월 5일 밤, A씨는 학사지원부로부터 '내일 출근을 안 하셔도 됩니다, 다른 학생으로 대체 예정'이란 문자를 받았다. A씨는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했다. A씨는 "근로장학금이라는 것은 명목뿐이고, 결국 학교의 일용직 근로자였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성차별적인 채용 기준도 문제다. C대학에 재학 중인 송아무개(23·여)씨는 도서관 자료실 근로장학생으로 있으면서 커피 타는 일까지 해야 했다. 송씨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커피를 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비서직의 경우 여성만 지원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태그:#근로장학생, #근로장학금, #비정규직, #장학생,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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