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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0일 날씨 아주 좋음. 보증금을 돌려받으려고 의자에 앉아 숙소직원을 기다렸다. 보증금 20위안 가지고 혹 곤히 자고 있을지도 모를 직원을 깨울 수는 없는 일. 숙소로비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려산하면 그래도 도연명, 이태백 같은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놀다 간곳 아닌가? 거 동네 인심 좀 야박하다고 짐 싸 나오는 것이 잘한 일일까.

호계삼소(虎溪三笑)로 유명한 곳이 또 려산아니던가? 산문 밖으로 잘나가지 않은 혜원법사가 유학자 도연명, 도사 육수정과 얘기를 나누다 호계까지 이르러 서로 보고 웃었다는 고사도 있지 않았던가? 뭐 물론 세 사람 활동시기가 안 맞아 후대에 만든 얘기라는 설도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산은 유, 불, 선(도교) 종교적 관용으로 넘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호계는 어디 있노?

려산은 중학교 때인가 한문시간에 배운 구절 때문에 온 건데.

여산폭포를 보며 (望廬山瀑布)
日照香爐生紫煙 (일조향로생자연) 향로봉에 해드리우니 자주안개서리고
遙看瀑布掛長川 (요간폭포괘장천) 멀리보니 폭포는 긴 내를 건듯
飛流直下三千尺 (비류직하삼천척) 삼천척 날아내린 물줄기
疑是銀河落九天 (의시은하락구천)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나


물론 그때 배운 문장은 아래 두 구절뿐이었지만 벽암록(碧巖錄)에 보면 앙산 혜적(仰山慧寂, 807~883)얘기가 나온다.

앙산 화상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최근 어디서 왔는고?' 스님은 대답했다.
'여산에서 왔습니다!'

앙산 화상이 물었다.
'오노봉(五老峯)도 가 보았는가?'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앙산 화상이 말했다.
'그대는 아직 산놀이를 하지 못했군!'


삼첩천도, 이백폭포도, 오로봉도, 향로봉도 안 보고 가니 나야말로 '산놀이 못한' 어리석은 배나온 중생일 뿐! 불가에 들었으면 불법꼭대기까지는 못 올라가더라도 구경은 해봐야 하는 것이고, 여행을 하려고 했으면 오로봉 꼭대기는 못 올라가더라도 산자락구경은 해야 되는 것인데. 흠! 볼까?

직원은 단체손님들의 성화에 잠을 자다 인질로 잡힌 미국인마냥 파자마 바람에 등장. 보증금 받고 가려는데 제법 시끄러워진다. 친척지간인 듯한 여자아이들과 중국 아주머니들인데

"뜨거운 물(開水, 开水, kāishuǐ, kai1shui3, 마시는 물)도 없어!"
"뜨거운 물(熱水, 热水, rèshuǐ, re4shui3, 뜨거운 샤워)도 없어!"
"변기가 시꺼멓다."


내가 과거 8년여간 중국숙소에서 묵으면서 겪었던 일들을 한꺼번에 쏟아 붓는다. '여직원을 불렀으면 될 일인데!'라는 남직원의 변명은 내가 봐도 설득력 빵점이다. 가득이나 마땅치 않은 '려산'에 대한 인상에 다시 감점 추가! 에잇! 그냥 가자!

어제 10시 30분에 있다고 들은 '남창'행 버스는 9시에 있단다(35위안). 관광안내소 안 버스터미널, 정확하게는 매표소에서 무료하게 있다가 옆의 신사가 자꾸 말을 거는 바람에 얼떨결에 려산 운무차 구입(10위안) 파는 아줌마 말로는 원래는 40위안짜리라고... 믿어! 말어! 하여간 려산차 좋다고 말거든 중년신사와 잠시 한담.

"려산 인상 어때요?"
"문제가 좀..."
"무슨 문제?"
"방값은 중국최고수준, 밥도 맛없고, 비싸기만 하고, 교통도 불편하고..."
"택시타면 되는데..."
"어제 2km 가는데 15위안, 15위안, 30위안 부르더군요."
"여기 기본은 10위안이에요. 거리에 따라 15위안도 되고."
"2킬로에... 한국보다 한참 비싼 겁니다."
"어느 나라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 이해하세요!"
"그런 뜻이 아니라 여기 교통이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며칠이나 있다 가시나요?"
"원래는 4일 묶으려고 왔는데 하루만 보고 갑니다."
"삼첩천은 보셨나요?"
"아니요. 보고싶은 생각이 사라져서..."
"려산은 정말 볼 것 많은데..."

나름대로 려산 사람인 듯 려산 변호에 열심이다. 자기 집에 며칠 묵어가란다. 여행 중에 만난 중국사람 중에 이런 사람 많다. 자기 집에 며칠 묵어가라고 하는... 흠! 내가 한국에서 중국사람 만나면 과연 우리 집에 며칠 묵어가라고 할 수 있을까? 려산에 대한 인상이 조금 좋아졌다. 풍경이 아무리 천하절경이라도 사람한테 치이면 그 풍경은 안 들어오고 나쁜 인상만 남는다. 어디를 가나. 어느 나라건, 어느 관광지건 바가지는 있기 마련이지만, 려산은 중국 내에서도 정도가 좀 심하다.

하여간 세설신어(世說新語)에도 나오지 않던가? 왕휘지(王徽之)가 한밤중 눈이 오는 걸 보니 흥취가 일어, 술 한 잔 한 김에 친구 대규(戴逵)를 만나러 밤새 배를 저어 갔는데 대규문앞에까지 가고는 그냥 돌아오니 밤새 팔뚝 빠지게 노를 저었을 뱃사공이 묻는다. 물론 성질도 좀 났을 테고, "왜 그냥 오나요?"하고 물으니 이렇게 말한다.

"내 본디 흥에 겨워 왔지만 이제 흥이 삭으러 졌으니 돌아가는 것이다. 하필 대규를 봐야할 까닭이 있겠는가?"

굳이 고인흉내를 내자면 흥에 겨워 려산에 왔고, 흥이 져서 떠난다. 이런! 이런! 말이 많은 건 미련이 많아서인데... 하여간 남창 가는 버스승객은 나 혼자다. 당연히 기사랑 친해져서, 뭐 둘 다 심심했던 탓도 있지만, 이런저런 얘기.

나야 의례 중국경제발달에 대해 칭찬. 등소평, 강택민까지 칭찬해주면 중국중년들을 다 좋아한다. 이 중년기사는 주롱지(朱鎔基, 주용기)도 괜찮았다고. 흠! 집에 가면 주롱지 전총리에 대해 공부 좀 해야겠군. 알아야 칭찬해주지!

갑자기 중국 정치, 경제의 '부패'에 대해 강력히 성토한다. 부패라면 한국 사람인 나와 아주 친한 종목 아니던가. 아! 물론 내가 부패했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도 부패많어!'라고 위로해줬다. 물론 이 중년기사가 성토하는 '부패'는 대한민국 민주시대 견제 받는 부패가 아니라 독재정권 시 대통령부터 열심히 해먹은 총체적 부패에 대한 거다. 현재 중국주석이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권력층 부패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이다. 내가 만난 '정치'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눈 내 나이 또래의 중년들은 부패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분노를 너무 쉽게 외국인에게 보여준다.

어느 정치체제건 견제가 없는, 권력분산이 없는 체제는 부패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일부 '언론'이 그 대표적 부패세력이라 더 큰 문제지만, '권력에 야합'했던 언론이 이제 스스로 권력이 됐다.

대화는 내 짧은 중국어탓에 갈팡질팡. 남창에 들어서니 남창얘기를 한다. 8.1대교를 만들 때 장쩌민(江澤民, 강택민) 주석이 왔었는데 당시 성(省)서기가 안내했는데 중국표준어인 보통화를 거의 못했다고. 8.1대교 앞 두 마리 사자상보고 장쩌민주석이 뒤편에는 뭐 만들 거냐고 물었는데 성서기가 사투리로 그랬단다.

'헤이먀오(还(還)没有, háiméiyǒu, 아직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오! 헤이마오(黑猫 hēimāo, 검은고양이)! 좋은 생각입니다.'

이래서 8.1대교 뒤편에는 검은 고양와 흰고양이가 들어서게 됐다고. 뭐 실용주의 개방주의자 등소평주석의 정치적 적자라고 할 수 있는 강주석 귀에는 당연히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의 검은고양이로 들린 건 당연지사. 용케 알아듣고 웃었는데 또 다른 사투리에 관한 농담을 들려준다. 이번에는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 문제의 그 고양이동상 ^^
ⓒ 최광식
전화 한 통 받더니 친구가 공항에 온다고, 마중가야 된다며 나를 대충 내려준다. 박물관에 가깝다고. 지도를 사서 보니 아까 8.1 대교 지나서 내려줘야 맞는데. 흠! 깊게 생각말자.

숙소부터 잡으려고 남창역으로. 삐끼 아줌마에 30위안에 에어컨 나온다고 얼른 따라갔는데 괜찮은 가격이다. 에어컨 나오면서 이 가격대는 독방인데 이 가격은 중국에서도 드문 가격인데 분위기가 좀 별로다.

땀을 많이 흘려 잠깐 샤워하고 짐 풀고 나가려는데 노크도 안하고 들어와서는 '샤오지에(아가씨)', '안모어(안마)' 이런다. 바쁘다고 하니 '겨우 몇 십 위안이면 되는데' 이런다. 필요 없다고 등 떠밀어내고 여기서 자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주인아줌마가 역시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 방 바꾸란다. 50위안짜리로... 30위안이면 바꾼다니까 비품창고 비슷한 데를 보여준다. 짐 싸들고 나왔다. 이런 데라고 다 위험한 건 아니지만, 외국인한테는 위험도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나야 이런 곳에 경험이 많은 것이 아니라, 경험담만 많이 아는 사람이라 내 짐의 안전, 내 몸의 안전, 내 돈의 안전을 위해 대낮의 끈끈한 유혹에서 탈출.

비위생과 무성의로 넘치는 역 앞 쾌찬에서 점심. 중국 역 앞 쾌찬 중 제일 맛없게 먹었다. 성박물관을 보고 6시쯤 나와서 저녁 먹고 조명 들어온 강남 3대 누각인 등왕각(南昌 滕王閣)을 보기로 결정! 하여간 배낭 짊어지고 출발! 성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니 불길한 예감이 든다. 도로변에 웬 잡초가, 설마? 또? 다행히 문을 열려있다. 자연박물관보고, 역사박물관. 예상대로 관람객이 나 혼자다.

느긋하게 문 닫을 때까지 즐겨야지 하고 있는데 경비원인지 직원인지 와서 그런다. 앞으로 한 시간이면 퇴근시간이라고 문 닫는단다. 잉? 지금이 몇 시인데? 디지털 카메라에 달린 시계를 보니 3:22분이다. 뭐냐 이건? 4시 30분이 퇴근이란다. 아~ 무슨 박물관을 4시 30분에 문을 닫냐고!

▲ 오후 4:30에 문닫는 다는.. 강서성 박물관
ⓒ 최광식
어쩌라.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라고, 가득이나 박물관 운 없기로 소문난 사람이니 문 연 것 만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보자! 한 시간안에 3층짜리 박물관을 봐야 되는 경우는 또 뭐냐! 단축 마라톤도 아니고 투덜투덜!

의외로 짜임새 있고, 강서성 특색에 맞게 잘 구성되어 있다. 동급인 성급 박물관중에서도 구색 잘 갖춘 편에 들어간다.

1층은 석기시대부터 명청대까지 유물전시(도자기가 주종인). 내가 좋아하는 팔대산인(八大山人)그림이 한 폭 걸려있어 진본인가 하고 봤는데 복제품이다. 실망! 대실망!

▲ 팔대산인 조는새(小鳥, 小鸟)
ⓒ 최광식
(*‘팔대산인’ 출처. 중국화감상법..대원사 p 114,115)

팔대산인은 무엇보다 필력이 탁월한데 핵심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배경을 따로 그리지 않고 대상물만을 그리고 있는데 그가 즐겨 그린 '조는 새'나 '성난 물고기'는 그의 특기이며 아울러 오리나 연잎, 산수도 즐겨 그렸다.

이러한 새로운 소재들을 통해 대개 자신의 적인 만주족이 세운 청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였는데 조는 새는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성난 물고기는 자신의 심정을 각각 그려 내어 모두 저항 정신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팔대산인의 작품은 정치적, 사회적 의미뿐 아니라 뛰어나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주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절제되어 있고 번지기 묵법과 날카로운 필법은 흉내 내기 어려운 수준이다.

꽃잎 하나만 그린 것에서도 탁월한 먹 처리로 수묵의 미를 한껏 높이고 있으며 아울러 새로운 회화미를 선보이고 있다. 전통을 의식하지 않는 팔대산인의 작화태도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새로운 소재 발굴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그림은 중국회화(http://www.guxiang.com/painting/qing/zhuda/index.htm)에서 참고)

2층은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인 '객가(客家)'에 대한 전시와 요즘 중국도예가들이 만든 도자기 전시. 우리 도자기들은 너무 전통에만 매달려... 하여간 중국 도자기들은 정말 많은 실험을 한다. 성공도 많고 실패도 많지만 저 대담한 실험들이 폭이 깊어지면 따라가기 힘들 텐데.

▲ 객가소개
ⓒ 최광식
▲ 객가의 흐름
ⓒ 최광식
3층은 강서성에 있던 도요, 관요 도자기들을 연대순으로 나열해놨다.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아 짧은 관람시간이 더욱 원망스럽기만 그렇다고 내일 또 와서 보기도 좀 그렇고 대만국립고궁박물관이라면 백번도 더 가보겠지만.

▲ 청(淸)대 도자기
ⓒ 최광식
너무 일찍 나와서 할 일이 없다. 등왕강이 보이니 강변에서 헤엄치는 중국인들 구경. 손녀나 손자와 나온 듯한 노인네들이 눈에 띈다. 해가 대충 뉘엿뉘엿해져서 등왕각을 보러 갔는데 입장료가 50위안이나 한다. 안 봐! 비싼 거야, 그렇다 치고 신축건물이라, 물론 과거 그림대로 복원한듯하지만, 별로...

▲ 등왕각 표받는 곳 창살틈으로.. ㅡㅜ
ⓒ 최광식
왕발(王勃)도 입장료가 있었으면(*등왕각서(滕王閣序)를 쓰지 못했을지도...(자티주: 등왕각서는 http://bk.tistory.com/18를 참조하시길)... 8.1 교가 보이기에 아까 들은 고양이 사진 찍으러가다 여관발견. 드디어 배낭을 풀었다. 아이고 어깨야!

<7월 20일 사용경비 내역>

* 계산 편의를 위해 사사오입

ㅇ 이동비 : 35위안
- 려산 > 남창 (버스, 35위안)

ㅇ 교통비 : 2위안
- 장소불명 > 남창역(시내버스, 1위안), 남창역 > 등왕각(시내버스, 1위안)

ㅇ 숙박비 : 30위안 (TV, 선풍기있음, 독방)

ㅇ 식 비 : 15 위안
-아침 : 건너뜀
-점심 : 남창역앞 쾌찬(5위안)
-저녁 : 쾌찬(9.5위안, 맥주2병 포함)

ㅇ 관람비 : 20위안
- 강서성 박물관(20위안)

ㅇ 잡 비 : 38 위안
려산 운무차(10위안), 남창지도(4위안), 강서성박물관(20위안, 안내책자), 물 3통(3.5위안)

ㅇ 총 계 : 140 위안

덧붙이는 글 | ㅇ이 기사는 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여행나라(http://ichina21.hani.co.kr/)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ㅇ 중국어 발음과 해석은 네이버사전(http://cndic.naver.com/), 인물은 네이버백과사전를 참조했습니다. 

ㅇ 중국 1위안(元)은 2006년 8월기준으로 약 120~130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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