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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1차 유엔총회에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연설도중 노엄 촘스키의 저서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20일 유엔 총회 석상에서 행한 돌출 연설이 예기치 않은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연설 단상에 오르자마자 들고 온 책을 치켜 들며 "미국민들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영화를 보느니 촘스키의 책을 읽으라"면서 "여러분들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말했다.

올해 77세인 노엄 촘스키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반전 언어학자이자 사상가. 차베스가 이날 소개한 노엄 촘스키의 책은 2003년에 출간된 <패권인가 생존인가: 세계지배를 향한 미국의 탐색(Hegemony or Survival: America's Quest for Global Dominance)>이었다.

그러나 그의 돌출 발언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차베스는 바로 전날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부시 대통령을 지칭하며 "어제 이 자리에 바로 '악마'가 왔었다"면서 "그에게서 유황냄새가 난다"고 비꼬았다. 차베스가 이같은 독설을 퍼부으며 기도하는 듯한 손짓과 함께 천정을 바라보자 일부에서 박수와 함께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차베스가 부시를 비난하려는 목적으로 행한 '필독' 권유는 의외의 반응을 일으켰다. 우선 노엄 촘스키의 <패권인가 생존인가>는 차베스의 이 권유 덕분에 사흘만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19일만 하더라도 아마존 닷컴 판매부수 2만664위였다. 그러던 것이 21일 오후 톱10에 올라선데 이어 24일에는 1위로 올라섰다. 이 책의 공급사인 메트로폴리탄스는 22일 급히 2만5천부를 재인쇄 주문했다.

촘스키 "차베스 대통령 만나고 싶다"

또 하나의 파급효과는 노엄 촘스키가 차베스에게 보인 호의적인 반응이다.

차베스는 21일 기자들에게 촘스키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오해하고 "촘스키를 죽기 전에 만나보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촘스키는 "차베스를 만나고 싶다"고 응답했다. 차베스가 촘스키의 책을 필독서로 언급한 이후 촘스키는 무려 1만 통의 이메일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 노암 촘스키
ⓒ 촘스키 홈페이지
현재 매사추세츠주의 렉싱턴에 있는 자택에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촘스키는 22일 <뉴욕타임스>에 "차베스 대통령이 내 책을 좋아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이로 인해 우쭐해지지는 않았다"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눈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촘스키는 이어 "부시 행정부는 차베스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쿠데타를 지원했었다, 입장을 바꾸어 베네수엘라가 미국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쿠데타를 지원했다고 생각해 보라"면서 "차베스의 주장이 세계적으로 볼 때 다수의 견해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촘스키는 "차베스의 정책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보고 있으며 그들 중 많은 것들이 매우 건설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차베스가 여섯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베네수엘라 국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존 웨인 흉내" "알콜 중독자"... 계속되는 독설

한편 차베스는 21일 뉴욕 할렘가의 한 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부시를 가리켜 질환을 앓고 있는 병자이며 '알콜중독자'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존 웨인을 흉내내는 사람이라고 몰아 세웠다.

그는 "나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한다"면서 "머지 않아 미국민들이 죤 웨인 같은 사람이 아니라, 형제지간처럼 동등하게 함께 일하고 얼굴을 마주 대하고 얘기할 수 있는 대통령을 뽑기를 기도한다"면서 "부시는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아버지 덕분에 그 자리에 올랐다"고 공격했다.

그는 이어 베네수엘라의 국영 오일 회사인 PDVSA의 미국 방계회사인 '시트고'가 올겨울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가난한 가정들을 위해 난방용 가스의 공급량을 평소의 배 이상인 1억갤론으로 올릴 것이라고 발표해 부시를 다시 조롱했다.

한편 차베스의 연이은 반부시 행보에 대해 공화당은 물론 평소 부시를 싫어했던 의원들까지 차베스를 비난하고 부시 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섰다.

존 볼튼 유엔 대사는 "국제 문제를 만화 취급하는 짓"이라며 차베스의 연설을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양국관계 긴장... 베네수엘라 외무장관 공항서 구금되기도

또한 할렘지역 민주당 의원인 찰스 랭겔은 "차베스나 다른 나라 대통령들에게 분명히 해둘게 있다"면서 "미국민들이 대통령과 좋지 않은 관계에 있다하더라도 차베스는 물론 누군가가 우리의 국가 수반을 욕하는 것을 불쾌해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윌리암 브라운필드 주 베네수엘라 미국 대사는 25일 이번 차베스의 발언이 미국과 베네수엘라와의 관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양국 관계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논쟁을 유발시키는 그 같은 언급을 무시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으로 양국 관계는 한때 긴장 상태에 접어들기도 했다. 지난 23일 뉴욕 공항에서 미국 관리들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의 몸을 수색하고 손에 수갑을 채워 억류했다. 마두로의 억류 이유는 베네수엘라로 돌아가기 전 플로리다 마이애미행 비행기표를 사기위해 현찰을 사용해 의심을 샀다는 것.

마두로가 이에 강하게 반발하자 미국 정부는 마두로를 풀어주고 사과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정부측은 마두로의 구금을 국제법을 깨는 유치한 일이라며 유엔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차베스의 이번 유엔총회 연설을 비롯한 돌출행동은 이란의 핵개발로 인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방문에만 쏠려 있던 세계의 관심을 그에게 돌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차베스는 일정에 따라 22일 베네수엘라로 돌아갔다.

촘스키의 <패권인가 생존인가>, 어떤 책인가

차베스가 소개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촘스키의 저작 <패권인가 생존인가>는 제2차대전으로부터 이라크전 종전 이후의 미국의 재건 정책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포괄적인 분석을 가한 책이다.

이 책은 미국의 역대 행정부가 정치, 군사, 경제적 목적을 달성키 위해 어떻게 민주주의, 중동 평화정책, 자유무역, 인권 등을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촘스키는 이 책에서 최근의 미국의 침략전쟁으로부터 유럽의 정복전쟁의 제국주의적 특성과 이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프로파갠더, 중앙통제식 의사결정과정의 특성 등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촘스키는 책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완전한 지배 체제를 갖추려는 미국 정부의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해부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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