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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사회의 'B형 차별'에 맞서 공연활동중인 'B형 센세이션'
ⓒ 오기현
7월 30일 밤 10시 홍익대학교 앞의 한 지하음악실. 비좁은 공간에서 의대생 다섯명이 공연 준비에 열중이다. 한창 의학서적을 뒤져야 할 이들이 키보드를 맞추며 연주연습을 하는 이유는 그들 그룹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B형 센세이션'. 우리 사회의 황당한 'B형 죽이기' 현상에 분노하다가, B형도 섬세한 예술적 기질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해 창단했다. 이미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혈액형 편견에 역부족을 느끼지만,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혈액형을 마케팅에 활용해 재미를 보는 사람도 있다. 온라인 의류업체 '더 걸스'는 혈액형별 코디법을 마케팅에 도입했다. 주로 20~30대 여성 중심으로 고객 층이 형성되어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

의정부시 호원동에 사는 서미옥(46)씨는 인테리어 가게를 하다가 최근 죽 전문점을 열었다.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성격의 A형은 죽 전문점이 더 어울린다는 창업컨설팅회사의 권고에 따라 업종 변경을 한 것. 결과적으로 적성에도 맞았고 수입도 늘었다.

네티즌의 절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혈액형 물어본다

▲ 온라인 쇼핑업체 '더 걸스'는 혈액형 코디로 매출을 20% 늘렸다.
ⓒ 오기현
이렇듯 혈액형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식을 줄 모르고 지속되고 있다.

'혈액형별 성격분류'를 긍정적으로 활용하거나 단순히 재미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혈액형이 인간의 성격을 규정한다는 일종의 '성격결정론'이 확산되고 또, 이 그릇된 믿음이 특정 혈액형에 대한 차별로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SBSi가 지난 7월 20일부터 28일까지 9일간 남녀 네티즌 152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전체 응답자의 50.9%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혈액형을 물어본다고 대답했다. 혈액형이 여전히 상대방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남녀 모두 좋아하는 혈액형은 O형(남 55.5%·여 43.2%)이었고, 싫어하는 혈액형은 B형(남 38.1%·여 31.9%)이었다. 단 여성은 AB형(32.5%)도 싫어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대로 정말 A형은 침착·소심하고, B형은 쾌활·제멋대로며, O형은 포용성·우유부단하고, AB형은 현실적·괴팍한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팀이 지난해 남녀 대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혈액형에 관심이 많은 젊은층이 대상이었지만 혈액형과 성격간에는 유의미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가 최근 부부 280쌍을 조사했는데 부부간의 행복과 혈액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혈액형이 부부간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혈액형과 성격]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제멋대로... 진짜?

그렇다면 혈액형과 성격간에 생물학적인 관련성은 있을까?

혈액형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면 먼저 성격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발견되어야 한다. 성격 유전자가 존재해야 혈액형 유전자와의 관련성이 입증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격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

게다가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물학적인 요인은 무수히 많다. 키가 큰가 작은가, 피부빛깔이 검은가 흰가, 왼손잡인가 아닌가, 눈이 큰가 작은가….

따라서, 설사 먼 미래에 성격유전자가 발견되고 그것이 혈액형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성격이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혈액형은 수많은 성격결정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격은 유전적인 영향보다는 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에 하나 혈액형에 의해 성격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더라도 나중에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결국 혈액형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되더라도 영향력이 아주 적은 한 가지 요인에 불과할 것이다.

[혈액형과 직업] 정치인과 운동선수 중에는 O형이 많다?

1983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지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1만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혈액형과 사회·경제적인 지위의 관련성을 분석한 것이었는데 상류층일수록 A형이 많고 O형이 적다는 내용이었다.

이듬해 통계 처리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흐지부지해졌지만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에 혈액형에 따라 개인의 능력이 결정된다는 내용이 실린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었다.

▲ '혈액형의 믿음'은 근거가 전혀없다는 일본 다카다 아키가즈 교수의 저서
ⓒ 오기현
혈액형이 개인의 성향과 능력을 결정하고 직업선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혈액형 성격학을 창시한 일본의 노미 마사히코는 예를 들어 O형에 정치인이 많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역대총리 55대 이시바시 단잔으로부터 87대 고이즈미 준이치로까지의 혈액형 중 O형으로 밝혀진 사람은 8명이고, A형은 3명, B형은 1명이라는 것이다. 또 1978년 당시 일본 중의원 중 O형이 35%로 일본인의 O형 평균치 31.5%보다 약간 많았다.

기사수정

애초 우리나라 역대대통령들의 혈액형과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O형, 노태우 전 대통령이 A형으로 보도했으나 사실과 다르다는 독자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국가기록원에 확인한 결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혈액형은 B형, 노태우 전 대통령은 AB형으로 확인 됐기에 바로 잡습니다. / 편집부
미국의 33대 트루먼 대통령부터 43대 부시 대통령까지의 혈액형 가운데에도 O형이 7명으로 가장 많고 A형 3명, AB형 1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현직 대통령 중에는 O형이 3명(이승만·윤보선·노무현), A형(박정희·최규하·김대중)이 3명, B형(전두환)은 1명, AB형(노태우·김영삼)은 2명이다.

그러나 2005년 일본의 중의원은 A형(36%)이 O형(26%)보다 월등히 많았다. 우리나라의 현직 국회의원 295명 중에서도 A형(35%)로 가장 많고, O형(29%)은 2위이다. 만약 기초자치단체의 장이나 의원까지 확인해 보면 또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노미 마사히코씨는 운동선수는 O형 혈액형이 많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K리그 축구선수 510명 중 O형이 177명으로 가장 많고 A형이 138명, B형이 124명, AB형이 45명이다. 그러나 독일월드컵 대표선수 중에는 O형은 7명이고 A형이 9명이다. 대학선수나 중·고등학교 등록선수까지 조사해 보면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 확실하다.

결국 혈액형과 직업과의 관계는 통계의 기준이나 범위에 따라서 들쭉날쭉 이지만 대체로 그 나라의 혈액형분포도(우리나라의 경우 A형 34%·O형 28%·B형 27%·AB형 11%)와 일치한다.

일본 하마마츠대학 명예교수인 다카다 아키가츠(71)교수는 표본집단이 적은 경우 우연히 특정 혈액형에 특정직업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표본집단이 많아지면 일반적인 혈액형분포도와 일치한다고 밝히고 있다.

조사의 범위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혈액형에 관해 다양한 통계가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는 자주 통계조사와 해석의 오류가 비과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마술을 발휘한다.

덧붙이는 글 | 오기현 기자는 < SBS 스페셜> 담당 PD로 '혈액의 진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현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취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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