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Usdaw노조대표들에게 연설을 하고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이틀 뒤 벌어진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의 지지율은 92년 이후 최악으로 떨어졌다.
ⓒ AP/연합뉴스
지난 4일 지방선거 이후, 영국 정가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블레어 수상의 진퇴 문제가 불거져 나온데다가 영국 노동당의 지지율은 92년 이후 최악으로 떨어졌다.

영국의 언론들은 안개 속에 휩싸여 있는 듯한 정가 분위기와 각 정당들의 반응들을 연일 주요 기사로 쏟아내면서 생생하게 중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집권 노동당의 대패로 끝난 2006 지방선거

36%라는 저조한 투표율(2004년에는 40%, 2002년에는 33%)로 막을 내린 금번 영국 시의원 선거 결과는 놀라웠다. 전체 의석 4360석 중에 보수당이 1830석으로 1위, 노동당이 1439석으로 2위, 자유민주당이 909석으로 3위의 위치를 차지했다. 보수당은 316석을 새로 얻었으며, 노동당은 319석을 잃었다. 자유민주당은 2석을 더 얻는데 그쳤다.

정당별 전체득표율을 보면 더 놀랍다. 보수당이 40%로 1위, 자유민주당이 27%로 2위, 노동당이 26%로 3위를 차지했고, 기타가 7%였다. 비록 실제 당선 숫자와 연결되지 않는 전체득표율이라고는 하지만, 자유민주당과 노동당이 근소한 차로 역전되었다는 사실은 영국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한편, 화제를 모았던 영국국민당(BNP)은 25%라는 예상에는 어림도 없었지만 크게 약진했는데, 27석을 더 얻어 총 32석이 되었다. 지난 총선에서는 지지율 8위에 불과했던 영국국민당은 이제 군소정당 중에선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정당으로 부상했다. 지난 총선에서 지지율 4위였던 또 다른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은 1석에 머물렀다.

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약간 밀리기는 했으나 보수당에 400여석 차이로 승리했었고, 2004년 지방선거에서는 500여석 차이로 거의 완승을 거두었다. 따라서 노동당이 이번에 400석 차이로 패배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큰 셈이다. 상당수 영국인들의 마음이 이미 노동당에서 떠나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기 때문.

예상됐던 노동당의 패배

▲ 9일 BBC 홈페이지. 프레스콧 부수상은 노동당의 의원들에게 파를 갈라 싸우는 것은 당의 미래를 위해 좋지 않다고 경고했다.
이번 노동당의 패배를 예상하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신노동당파가 주류인 노동당은 지난 2005년 총선에서 가까스로 과반수 의석을 넘기며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블레어 수상의 3기 집권 문제점을 지적하는 분위기도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여기에 연달아 터져나오는 노동당 간판 정치인들의 스캔들은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블레어 수상의 측근 중 하나였던 시각장애인 노동연금부 장관 데이빗 블렁킷은 의원 신분으로 회사에서 돈을 받고 일해준 게 문제가 되어 작년 11월에 일찌감치 내각에서 짐을 쌌다. 얼마전 내무장관 찰스 클라크는 외국인 범죄자들에 대한 관리 소홀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으며, 부수상 죤 프레스콧은 여비서와의 스캔들 문제로 지금까지도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이에 5일 블레어는 전면 개각을 발표했다. 사임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클라크 내무장관은 경질되었으며, 프레스콧 부수상은 경고를 받았다. 이와 더불어 이란 공격 문제를 성급하게 언급했던 잭 스트로 외무장관은 하원담당관으로 강등되었다.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등 노동당의 실세들은 계속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8일에는 노동당 일부 의원들이 블레어 수상의 퇴진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섰다. 약 50여명의 노동당 의원들이 연대해서 블레어가 언제 브라운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인지를 공개적으로 질문하겠다고 나섰다. 블레어(53)는 2010년경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은퇴할 것이며, 3기 동안은 계속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화살은 블레어에게... 보수당 캐머런은 '뜨는 별'

▲ '좌파들의 블레어 축출 계획'이란 제목의 <더 타임즈> 머릿기사. 노동당 내에서 현재 블레어가 어떤 위치인지를 잘 시사하고 있다.
<더 타임즈> 8일자는 1면 머릿기사로 여당 노동당의 추락을 심층 보도했다. 자체 조사 결과 노동당은 92년 이후 최악의 지지율인 30%로 떨어졌다. 반면, 제1야당인 보수당은 38%, 제2야당인 자유민주당은 20%을 기록하고 있다. 이미 지지율면에선 지난 총선 때와 완전히 역전된 상황이다.

블레어가 3기 내내 계속 수상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지지율은 42%에서 31%로 무려 10%나 떨어졌다. 블레어가 올 12월에는 권력을 이양하는 편이 더 좋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 노동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의 반 수 이상이 노동당의 최대 문제점은 블레어라는데 동의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보수당의 새 대표 데이빗 캐머런의 역할도 컸다. 좌파 정책의 일부분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개혁적 성향을 과시해온 보수당의 젊은 대표 캐머런(39)은 최근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노동당 블레어와 보수당 캐머런의 지지율은 30% 대 38%로 캐머런이 훨씬 높다.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장차 블레어의 권력을 승계해서 노동당의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55)도 현재 캐머런에게 완전히 밀리고 있다. 현재 노동당 브라운과 보수당 캐머런의 지지율은 31% 대 41%로, 캐머런이 10%나 앞선다. 차기 선거에서 보수당이 집권할 가능성을 묻는 <더 타임즈>의 조사에서는 65%가 보수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절대적으로 노동당이 밀리고 있는 현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7일 저녁 블레어는 사적으로 브라운과 만났다. 아직까지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제3당 자유민주당은 '권토중래' 꿈꿔

▲ 자유민주당의 공식 웹사이트. 사회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자유민주당은 노동당의 ID카드 도입 계획, 이라크 참전 등 정책들 상당 부분을 반대하고 있다. 당의 상징은 노란색이다.
노동당의 급락과 보수당의 상승 속에서 3당인 자유민주당은 어느 정도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현재 자유민주당에게 아주 크게 유리한 면은 없지만, 희망이 점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노동당의 패퇴로 인해 자유민주당 지지자들은 자유민주당이 노동당을 밀어내고 언젠가는 다시 2당으로 올라설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원래 자유민주당은 우파였던 전통의 자유당(휘그)과 좌파였던 사회민주당이 1988년에 결합되어 만들어진 정당이다. 자유민주당은 좌-우파의 정책과 노선을 상황에 따라 모두 받아들이는 중도 정당이지만, 신자유주의 같은 극단적 자본주의와 혁명 중심 이론의 극단적 좌파이념을 모두 거부하는 '사회자유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이후론 좌파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영국 내 정치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이다. 영국 내 3개 주요 정당 중 자유민주당만이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다. 2005년 총선에서 당의 전 대표 찰스 케네디는 블레어에게 "자유는 강요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라크 참전 문제를 추궁했다. 또 세금은 더 올리고 복지정책을 더 강화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찰스 케네디는 과음 문제로 지난 1월에 당 대표를 사퇴했고, 지금은 관록의 맨지스 캠벨(64)경이 당을 이끌고 있다. 대안정당임을 대내외에 표방해 왔던 자유민주당은 편차가 크지 않게 꾸준한 지지를 계속 받고 있다. 다만 현재 자유민주당도 다른 두 당들처럼 비밀 자금 문제가 불거져나와 그렇게 편치는 않은 상황.

9일 BBC 뉴스를 통해 프레스콧 부수상은 노동당이 내전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블레어 퇴진 문제가 전면으로 부각될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보수당은 이번 승리를 자축하며 더욱 지지율을 높여갈 태세며, 자유민주당은 이 사이에서 새로운 전기를 노리고 있다. 최근 영국 정가 상황은 마치 삼국지처럼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